은행은 과연 어떤 기업을 블루칩으로 볼까. 블루칩이란 기업내용이 우량하면서 주가가치가 높은 기업을 말한다. 주식시장에 쓰이는 이 「블루칩」이란 개념을 은행 입장에서 해석한다면…. 은행들은 뭐니뭐니해도 부도 위험이 적은 기업을 우량한 기업으로 본다.신한은행이 이 기준에 따라 「블루칩」 리스트를 내놓아 화제다. 신한은행은 이들 기업이 발행한 어음에 대해서는 부도가 나더라도 할인업체에 어음을 대신 갚도록 요구하지 않기로 했다. 이른바 「채무면제 할인어음(무담보배서)」제도를 이들 38개 기업(표 참조)을 대상으로 이번주부터 시행키로 했다. 이들 기업을 그만큼 믿고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부도날 일이 거의 없을 것으로 본 것이다.38개 기업들은 △현금흐름 △부채비율 △금융이용 부담률 등의 지표로 봤을 때 모두 「우량」기준을 충족하는 회사라는게 신한은행의 설명이다. 부채비율만 놓고 보면 대부분 2백~3백% 수준이다.그러나 이들 기업의 분포도는 그리 넓지 않다. 몇개 재벌그룹 계열사로 국한돼 있다. 현대와 롯데계열사가 7개씩으로 가장 많다. 삼성과 SK 계열사는 각각 6개다. LG 계열사 4개도 포함됐다. 이 가운데 롯데계열사가 7개에 이르는게 의외라면 의외다. 또 눈길을 끄는 기업으로는 농심 태광산업 금강 제일제당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들 기업내용을 아는 은행원들은 누구나 고개를 끄떡인다. 그만한 대접을 받을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것.반면 대우 한진 한화 쌍용 금호 등 내로라하는 재벌 계열사는 눈씻고 봐도 없다. 신한은행측은 이들 그룹 계열사의 경우 주요 지표상 「초우량」기업에 속하지 않아 제외됐다고 말했다. 해당 재벌로선 수치요 불명예지만 현재로선 「우량기업」으로의 발돋움을 위해 와신상담할 수밖에 없다.어쨌든 38개 기업이 발행한 어음을 받은 협력업체들은 어음을 은행에서 할인받은 후 어음발행 기업이 부도나더라도 채무를 대신 갚아야할 책임이 없다. 새로 시행하는 무담보배서 제도 덕분이다. 무담보배서란 어음할인업체가 배서를 하면서 「이 어음상의 책임을 지지 않겠다」고 기재하는 걸 말한다.사실 대기업 하청업체나 협력업체들은 어음배서 때문에 이제껏 이만저만한 곤욕을 치른게 아니다. 배서를 한다는 것은 어음발행 업체가 부도났을 때 모든 책임을 떠안겠다고 각서를 쓰는 것이나 같다. 그래서 배서는 하청업체의 주요한 부도 원인이 돼 왔던 것이다. 업체간 연쇄부도도 배서 때문에 생겼다. 한보철강때도 그랬고 기아 때도 그랬다.그러나 앞으로는 적어도 38개 기업과 거래하는 업체들은 이같은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어음할인 업체들이 보는 혜택은 비단 이것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작년 12월 기업회계기준이 변경된데 따라 무담보배서 할인어음은 차입금계정에 계상되지 않는다. 현재는 은행에서 어음을 할인하는게 어음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것이다. 공식적으론 할인어음대출이라고 한다.그러나 무담보배서를 하게 되면 대출로 분류되지 않는다. 이에따라 할인업체는 부채비율을 줄일 수 있게 된다. 신한은행은 『할인어음 보유가 많은 기업의 경우 기업재무구조가 획기적으로 건실화될 뿐 아니라 기업평가 때 현금흐름을 중시하는 상황에서 기업체에 대한 평가가 향상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같은 혜택을 보는 업체는 수천개에 달할 것으로 신한은행은 분석했다. 이 은행은 앞으로 추가적으로 우량업체를 선정,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일부 기업들은 벌써 「우리도 우량기업으로 선정해달라」며 신한은행에 조르고 있다고 한다.은행은 이 제도 시행으로 인해 거래업체를 유치하는 효과를 보게 된다. 우량 38개 기업에서 어음을 받은 업체들은 무담보배서 제도가 없는 다른 은행보다 신한은행에 먼저 가려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