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통한 시너지 효과 창출에 역점 ... 방해 요인도 만만치 않아

방크나쇼날드파리은행(BNP)이 소시에테제네랄과 파리바, 두 라이벌 은행을 대상으로 적대적 인수합병을 시도하겠다고 선언한 이후, 유럽 은행업계의 통합 움직임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BNP의 미셀 페버로 행장은 3월초, 유럽최대은행을 만들기 위해 두 은행과의 합병에 합의했다며 의기양양해했다. BNP가 밝힌 계약 규모가 3백70억달러로 이게 사실이라면 유럽최대의 거대 은행이 탄생하는 게 틀림없다. 또 유럽 11개 나라가 단일통화권을 출범시킨 이래 유럽 은행들간에는 상호통합시도가 성행한다는 소문도 계속 나오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계획들이 실현될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우선 페버로의 제안에 대해 당사자인 소시에테제네랄과 파리바가 내켜하지 않고 당국의 반응도 소극적이다. 그러나 페버로는 이것이 경영권 탈취가 아니고 파트너십을 맺는 것이라고 강변한다. 합병을 하면 채권수익률은 지난해 11.8%에서 2002년에는 16%로 오르고 은행의 국내예금 유치비율도 현재 7%에서 두배로 늘어나는데다 유로시대의 은행간 합병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오히려 기선을 제압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BNP의 계획을 계기로 유럽 은행업계에 통합필요성에 대한 이해는 상당히 커지고 있다. 해외진출을 노리는 네덜란드 거대은행 ABN암로는 적대적 통합에 관심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BNP 때문에 계산을 달리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ABN암로는 최근 외국자본 유치에 적극적인 이탈리아에 진출, 반디카 디로마 은행의 지분 8.8%를 인수해 독일 코메르츠방크 등과 공동주주가 됐다. 스페인 포르투갈 아일랜드 등 EU 중위권 국가들의 큰 은행들도 외국으로부터 합병제의를 받거나 스스로 통합을 고려 중이다.특히 유로 단일화의 출범으로 경쟁이 더욱 치열해져 타국 은행들과의 통합이 늘어날 것이란 기대도 크다. 이탈리아와 포르투갈 은행들은 타국 은행들보다 기업대출에서 큰 마진을 남겼는데 이제는 기업들이 보다 더 좋은 조건을 갖춘 외국 전주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소국의 주요은행들은 유로 때문에 큰 나라의 경쟁업체들에 잡아먹히지 않을까 우려한다.◆ 유로화 츨범으로 경쟁 치열그러나 유럽 은행들이 진정으로 통합을 원하는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다. 이론적으로 유럽은 이미 단일 은행시장을 갖고 있다. 은행들은 역내 어떤 국가에서든 본국과 똑같이 영업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좀 다르다. 도이체방크는 프랑스의 SG와 크레디리옹에 관심을 보이다가 프랑스 당국으로부터 퇴짜를 맞았다. 정치인이나 노동자 심지어 은행장들도 외국은행들과의 통합에 저항하는 형편이다.통합을 추진하려는 은행들의 목적은 간단하다. 사업이 장기적인 사양추세이기 때문이다. 보다 많은 배당을 요구하는 주주, 외국자본으로부터의 공격, 뮤추얼펀드나 보험사들과의 경쟁 등에 시달리면서 이익이 점점 줄어드는 마당에 비용절감 없이는 경쟁에서 살아 남을 수 없다. 영국에서는 슈퍼마켓이나 보험사 소비자금고 등이 금융업에 뛰어들면서 몇몇 은행들을 퇴출시켰다.이런 상황을 타개하려면 서로 힘을 합치는 수밖에 없다. 합치면 중복되는 여러 업무의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서류상으로 보면 은행들은 합병 2∼3년 내에 20∼30%의 비용절감을 할 수 있다. 유럽 은행업계는 오래전부터 이런 통합에 대비해 왔다. 유럽에는 너무 많은 은행이 있고 지점망도 과도하게 많다. 스페인은 미국보다 국민 1인당 은행지점수가 4배나 많다. 독일에서는 3천개가 넘는 은행이 미국의 1인당 지점수보다 두배나 많은 지점을 갖고 있어 5대 은행이 국내 시장의 17%밖에 차지하지 못한다.많은 나라들에서 은행간 합병시도가 완강한 어려움에 부딪혀 있다. 그 주된 원인으로 기득권 논리, 은행 소유개념에 대한 경직성, 특이한 시장구조 등을 꼽을 수 있다. 통합노력은 엄격한 노동관련 법률과 호전적인 노조, 대량실업을 두려워하는 정치가들 때문에 무산됐다. 91년부터 7년간 프랑스와 독일의 은행지점과 임원 수는 은행들이 많이 합병됐는데도 별로 줄지 않았고, 이탈리아에서는 줄어든 수보다 새로 생긴 지점이 오히려 더 많았다.효율적 합병에 대한 또다른 장애는 유럽대륙의 금융산업구조다. 민간부문 은행들은 구색일 뿐 나머지는 소유관계가 불투명한 수천개의 공공부문 은행, 협동조합, 예금취급소들로 이뤄져 있다. 이들 대부분은 합병으로부터 보호받으며 경쟁에서도 유리한 혜택을 받는다.독일에서는 금융산업의 3/4이 공공부문의 예금취급업체와 협동조합으로 구성돼 있으면서도 이들 상호간이나 민간부문과의 합병은 거의 없었고 앞으로도 별로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프랑스와 스페인에서도 세제 및 법적인 혜택을 누리며 경쟁을 왜곡시키는 특수은행들이 정치인들의 지원을 등에 업고 합병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는다.민간부문 내부에서조차도 합병을 가로막는 요인이 있다. 우선 은행과 은행, 보험사, 기업 등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호지분보유를 들 수 있다. 이런 현상은 독일과 프랑스에서 두드러진다. 이 상황에서는 정말 필요한 합병계획도 지분지키기에 급급한 지배 주주들에 의해 무산되는 수가 많다. 드레스너뱅크 지분의 21%를 보유한 독일의 거대보험사 알리앙스는 경쟁사인 도이체방크와의 합병을 일관되게 방해하고 있다.◆ 각국 이해관계로 통합 쉽지 않아은행소유자들도 지배주주들과 마찬가지로 방해요인이다. 유럽은행장들은 은행을 개인 소유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스페인의 BBV와 아르겐탈리아 간의 합병계획은 경영권을 놓칠 위기에 처한 한쪽 경영자 집단의 거부로 지지부진하다. 이런 교착상태에서는 BNP처럼 적대적인 통합시도가 먹혀들 여지가 없다. 실제로 유럽 거대은행들간에 적대적 인수시도가 성공한 경우는 전혀 없다.타국 은행들간의 통합이 미진한 것은 유럽에 아직 진정한 단일 시장경제가 형성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통합을 가로막는 더 큰 장애물은 아직도 일부 국가에서 득세하고 있는 경제내셔널리즘이다. 프랑스는 외국자본을 유치하는 데도 할리우드 영화를 받아들이던 것과 비슷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벨기에도 비슷한 실정이다. 네덜란드의 ABN암로는 지난해 벨기에 최대은행 제네랄을 인수하려 했지만 은행을 자국인의 손에 두려는 정치가 은행가, 심지어 왕족들까지 나서 벌인 맹렬한 로비 때문에 무산되고 말았다.영업이익의 불균형도 문제다. 영국에서 큰 돈을 버는 은행들은 대륙은행들과의 합병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대륙은행들은 영국만큼의 이윤은 말할 것도 없고 좀처럼 두자리수 이윤을 올리지 못한다. 또 대륙에 일정규모의 네트웍을 갖춘 영국은행이 하나도 없어 합병해 봐야 비용절감 효과가 거의 없다.유럽은행들이 통합의 당위성에 공감하면서도 막상 그 실현을 잘 이루지 못하는 것은 이와 같은 여러 상황 때문이라는 것이 지배적인 의견이다.「Easier said than done」 Mar. 13th 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