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화 확대ㆍ미주가 대폭락 등 계기 ... 사전에 안정적 국제통화 체제 구축해야

미국 달러화의 독주시대다. 세계의 자금이 미국으로 몰려들고 각국의 외환보유고가 달러화로 채워져 있다. 일본 유럽의 경기는 좋지 않은데 미국만이 「인플레없는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달러화는 그러나 보면 볼수록 「벌거벗은 임금님」이란 동화를 떠올리게 한다. 달러라는 통화의 형태로 자금이 집중되고 달러시세가 전반적으로 강세를 띠는 것이 결코 미국 경제의 힘에 기초하고 있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막대한 경상적자와 사상 최저수준의 저축률 등을 토대로 해서 세워진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모든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말로는 미국 경제가 순항하고 있으며 따라서 미국이 임금님이라고 한다. 이제 누군가가 「임금님은 벌거숭이」라고 소리치면 일거에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질 것이다. 미국은 이를 두려워한다. 「벌거…」라는 말만 꺼내도 가만두지 않을 태세로 신경질을 부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미 달러화의 기축 통화 체제는 한계에 달해 있다. 달러로의 집중과 달러의 독주는 지금이 최고점에 달해 있다. 이제부터 어떤 경로를 걷게 될 것인가는 차치하고라도 달러는 점차 힘을 잃는 통화가 될 것이다.◆ 미국 주가 고수준 유지 한계지난해 가을 미 달러화에 대한 불안심리가 고조된 적이 있다. 달러표시자산을 엔화자산으로 돌려놓은 투자자들이 속출했다. 당연히 엔화강세-달러약세의 흐름이 한동안 이어졌다. 지금에 와서 잠시 그같은 우려는 사라지고 표면적으로는 국제금융권이 평온한 듯이 보인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구조적인 문제들이 변한 것은 아니다.최근 수년동안의 달러 강세(95년4월 달러당 80엔에서 98년8월 1백44엔까지)는 미국 경제의 실상을 반영한 것이 아니었다. 일본내의 금리가 역사상 유례가 없는 초저금리를 보이면서 일본 자금이 미국으로 흘러들어가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엔화약세 달러화강세가 진행되면서 자금은 「블랙홀」에 비유되던 미국금융권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로인해 미국의 다우존스지수는 상승해 왔다. 다우지수는 지난주 역사적인 1만포인트시대를 열었다.(그래프참조)그러나 더 이상 이같은 구조는 유지되기 어렵다. 유럽단일통화 유로(Euro)가 올초에 역사적인 출발을 보였으며 미국 주가의 고수준을 유지하는데에도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자연히 달러화의 지위도 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달러가치와 주가 수준은 어느 쪽이 먼저 하락하든 연쇄적으로 상대를 끌어내리는 부(負)의 순환고리를 보일 것이다.유로의 탄생은 달러 이외의 유력한 대체통화가 등장했음을 의미한다. 달러화에서 유로화로의 전환이 일어나는 것을 어렵지 않게 예상하게 된다. 그 액수는 많게는 1조달러에 달할 것이다. 이같은 자금이동은 초기단계에는 완만하게 이뤄지겠지만 일정 시점에 이르면 정치권력의 개입에 의해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가속도가 붙을 가능성마저 있다. 이럴 경우 단숨에 달러화의 대유로시세가 폭락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이어서 달러화는 엔화에 대해서도 약세를 보일 것이다. 이쯤되면 「1달러=1백엔」을 넘는 엔화 강세는 전혀 이상한게 아닌 것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미국 주가의 대폭락이 계기가 될 수도 있다. 87년의 블랙먼데이 때는 주요 경제선진국가의 정책당국이 협조를 통해 미국 주가를 떠받쳤다. 그러나 지금은 일본에도 더 이상 금리를 낮출 여지가 남아 있지 않다. 유럽도 단일통화를 탄생시키면서 생긴 부담들을 뒤치다꺼리하는데 힘이 부치는 상황이다. 미국에 도움의 손길을 줄 수 있는 나라가 눈에 띄지 않는다.지금은 달러화에 지나친 집중을 보이지 않도록 하는 안정적인 국제통화체제를 구축해야 할 때이다. 그러나 논의는 늘 훗날로 미뤄지기만 한다. 그같은 논의 자체가 「미국은 벌거벗은 임금님」이라는 인식을 확산시킬 것이며 달러화의 지위 하락으로 이어질 것을 미국이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도저히 어쩔 수 없는 궁지에 몰리기 전까지 자신들에게 유리한 달러에 의한 단일기축 통화 체제를 포기하려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상이 있는 체제는 언젠가 어디에선가 반드시 종말을 맞게 될 것이다. 문제를 파악, 하루 빨리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미국이 일본은행에 일본의 국채를 사도록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같은 행동이야말로 미국의 위기감과 동시에 오만함을 보여주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일본의 장기금리가 상승 기미를 보이는 것은 자연스런 움직임이다. 금리가 상승해서 미일간의 금리차가 축소되면 이미 저조한 상태인 미국으로의 자금 유입도 한층 적어질 것이다. 다시 금리차의 축소가 미국 금리의 인상 압력으로 반영되는 수순을 보일 것이다.그러나 일본 은행이 미국의 요구대로 국채를 거둬들인다면 일본의 재정은 마지막 보루마저 잃는게 된다. 미국으로의 파급이 두려워 일본에 초법규적인 정책을 펴도록 밀어붙인다면 이는 또다시 미국의 문제를 일본에 전가시키는 것이다.◆ 금리 인하 강요로 일본 경기 버블 자초「머니전쟁」에서의 참패는 엔화가 달러화에 계속 농락당해 왔기에 피할 수 없는 결과였다. 80년대후반 들면서 미국은 전주(錢主)인 일본에 대해 책임과 부담을 지우면서 자국으로의 자금 유입을 유도해왔다. 일본은 거액의 환차손 피해를 입었다. 또 국제 협조라는 미명으로 금리 인하를 거듭하도록 강요받아 결국 버블 경기를 자초하고 말았다. 버블 붕괴가 분명해지면서 이제는 금융기관의 부담을 경감시키고 내수경기를 회복시켜야 한다는 명분으로 다시 이해할 수 없을만치 이상한 초저금리가 진행되고 있다.이는 미국으로의 자금 유입이 지속되도록 했으며 결국에는 미국 경제마저 버블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호황은 이렇게 보면 일본의 희생 위에 성립된 것이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이같은 구조가 유지되는 이상, 달러화가 폭락한다면 제2의 「머니전쟁」에서도 일본은 백패(百敗)하게 돼 있다. 일본이 해외채권의 대부분을 달러로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달러화의 단일기축 통화 체제가 붕괴한다는 것은 일본이 보유한 자산가치가 크게 쪼그라들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이미 달러의 하락은 피할 수 없다. 달러의 기축 통화 체제에서 이탈하는 것만이 일본의 국익이다. 다만 엔화를 유로화와 연동하도록 해 둘 필요가 있다. 달러가 유로에 대해서 하락할 때 달러가 엔에 대해서도 하락함으로써 그같은 진행이 유로 강세가 아니라 달러 약세라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이로써 달러가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잃어갈 때 유로와 엔이 아시아시장을 중심으로 달러의 완만한 가치 하락을 유도해야 한다. 만약 일본이 채권국으로 있는 동안에 이같은 기반을 정비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일본의 국익과 세계 경제의 안정은 없다.닛케이 비즈니스 최근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