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만한 확대 등 붕괴 불러 ... 르노 자금 수혈 부족, 구조 재구축이 과제

일본 2위이자 세계 6위인 닛산자동차. 자동차산업 육성을 위한 자동차제조사업법에 따라 도요타와 함께 지난 36년에 태어났다. 58년에 「닷산」승용차 4백66대를 처음으로 미국에 수출했다. 66년 대중차「서니」판매에 이어 프린스자동차를 흡수 합병, 숙명의 라이벌인 도요타자동차를 제치고 67년에 정상을 정복했다.전후 일본산업 육성을 주도한 통산성 니혼고교(일본흥업)은행과 밀착, 「국책회사」로서의 역할을 떠맡기도 했다. 80년대 전반에는 이시하라사장의 국제화프로젝트로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매스컴들로부터 GM포드 도요타 폴크스바겐과 더불어 단독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5대 메이커의 하나로 평가받기도 했다. 80년대 말까지 도요타와 함께 「2강시대」를 연 일본 자동차의 간판의 하나였다.그러한 닛산이 자본 제휴를 통해 세계9위인 프랑스 르노에 사실상 편입되고 말았다. 외자에 회사의 운명을 맡겨 버린 것이다. 닛산의 위기는 한마디로 심각했다. 3월10일 다임러 크라이슬러와의 제휴교섭이 깨짐과 동시에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는 닛산의 장기채 등급을 투자 부적격으로 떨어뜨렸다. 사채등급 하락, 주가 폭락으로 이어지는 붕괴의 악몽에서 헤어나질 못했다.닛산이 구세주인 외자를 물색하고 나선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하나와 요시카즈사장은 96년 14대 사장에 취임하자마자 경영 재건이라는 십자가를 짊어져야 했다. 연결 결산으로 당기 적자가 이어졌다. 판매 금융까지 포함, 유이자부채가 97년 3월결산기부터 이듬해 결산기까지만 5천억엔으로 불어났다. 98년1월 하나와사장은 닛산디젤의 사이토사장과 함께 독일 다임러벤츠본사를 찾았다. 벤츠의 슈렌프사장은 출자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5월에 벤츠가 미국의 크라이슬러와 합병을 합의하면서 닛산 벤츠간 제휴 협상은 깨지고 말았다.◆ 플라자합의로 ‘닛산 시대’ 브레이크바로 이때 르노와 포드가 닛산에 접근해왔다. 그러나 파트너 선정 1순위는 여전히 다임러 크라이슬러였다. 올 1월22일 공동회장인 슈렌프씨와 이튼씨가 일본을 찾았다. 모기업 닛산에 대한 출자교섭이 속도를 더해갔다. 그 와중에도 닛산의 경영은 더 나빠졌다. 3월에 들어서면서 닛산은 다임러 크라이슬러의 자회사로 살아남는 길을 사실상 확정했다. 다임러 크라이슬러에 지분 51%를 넘겨주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계약서가 9일께 완성됐다. 그 다음주에 정식으로 발표할 예정이었다.이러한 상황에서도 르노는 닛산에 「러브콜」을 계속 보냈다. 전체판매의 80%이상을 유럽에 의존하고 있는 르노로서는 국제화가 최대의 과제였다. 국제화의 파트너로 닛산을 점찍은 것이다.이러한 상황에서 다임러의 슈렌프회장이 일본을 방문, 교섭 파기를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사내 의견 대립으로 닛산출자가 불가능하게 됐다는 것이었다. 닛산의 희망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궁지에 몰린 닛산이 선택한 카드가 바로 르노였던 것이다.닛산의 붕괴 원인은 무엇일까. 기업체질을 우선 꼽을 수 있다. 닛산의 체질을 얘기할 때 흔히 「통산성·니혼고교(日本興業)은행·도쿄대」를 꼽는다. 통산성입장에서 볼 때 닛산은 도요타자동차에 비해 우등생이었다. 무역 마찰을 피해 일찍이 현지 생산을 결정했다. 수출자율 규제 때는 통산성과 협력, 업계의 조정 역할을 하기도 했다.무차입 경영의 도요타는 은행과 거리를 유지했다. 그러나 닛산은 거래 관계에 있던 흥업은행을 경영에 참여토록 했다.닛산에는 도쿄대 출신이 주류를 이룬다. 하나와사장은 물론 그 이전 4명의 사장도 도쿄대 출신이다. 현임원의 절반이 도쿄대를 나왔다. 자동차업계로서는 보기 드문 경우다. 통산성이나 흥업은행의 도쿄대 출신들과 전후 부흥기에 두터운 파이프를 갖고 있었던 것은 엄청난 프리미엄이었다. 무역 마찰을 우려한 통산성의 입장을 감안, 해외 진출에 앞장섰다. 흥업은행을 통해 대규모 자금 조달에 나섰다. 미국과 영국에서 현지 생산에 들어갔다. 세계 전략으로 도요타를 제치겠다는 시나리오를 짰다. 무역 마찰이 심해진 80년대 전반은 한마디로 닛산의 시대였다.그러나 85년의 플라자합의로 닛산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플라자합의에 따른 엔고로 수출채산성이 급속도로 나빠지면서 체력에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다.「도요타와의 2강 대결」을 내걸고 방만한 확대노선을 걸어온 것도 닛산 붕괴의 요인으로 꼽힌다. 닛산의 국내 판매대수는 도요타의 절반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도요타와 맞먹는 50종의 차량을 생산했다. 부품 등 관련회사 수도 도요타수준으로 끌어 올렸다. 그러나 정작 필요한 차종 개발에는 실패했다.무리한 해외 진출도 큰짐이 됐다. 일본 업체 가운데 유럽에 가장 많이 진출했다. 미국 진출도 혼다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닛산은 부실 경영을 타개하기 위해 95년 일본경제 부흥의 상징으로 통해온 명문 자마공장을 폐쇄했다. 그러나 실적은 회복되지 않았다.르노와의 연합으로 닛산은 6천4백30억엔을 수혈받는다. 르노는 닛산자동차주식의 36.8%를 확보, 최대주주가 된다. 트럭메이커인 닛산디젤 주식 22.5%도 인수한다. 두 회사는 이번 연합으로 세계 4위권의 거대 회사로 거듭 태어난다. 닛산의 기술과 르노의 자본을 결합, 시너지 효과를 거둔다는 전략이다.이번 연합으로 닛산은 일단 숨을 돌릴수 있게 됐다. 그러나 문제는 닛산이 과연 회생할 수 있을 것이냐는 점이다.최대의 관건은 바로 경영의 재건 여부다. 닛산은 자산 매각 등을 통해 2조5천억엔에 이르는 유이자 부채를 3년안에 1조5천억엔으로 압축시킨다는계획이다. 판매망도 절반 정도로 감축시킬 예정이다. 생산라인도 15% 정도 줄일 계획이다. 인력도 대폭 감축시킬 방침이다.◆ 무리한 해외 진출도 큰 짐문제는 자금 조달이다. 르노가 출자할 자금은 올해 돌아오는 장기 부채를 갚고나면 대부분 없어진다. 구조 재구축에 필요한 자금 조달에 뾰족한 대응책이 없는 형편이다.닛산 경영진이 과연 대대적 구조개혁에 나설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닛산은 자마공장 폐쇄 이후 눈에 띄는 개혁 성과를 거두지 못해왔다. 이외에도 구조 개혁 과정에서의 두 회사간 주도권 문제, 경영권 문제 등 난제가 산적해 있다.프랑스 정부가 44%의 주식을 갖고있는 반국유기업으로 수익력이 떨어지는 르노. 눈덩이 부채를 가진 닛산. 두 회사간 연합은 외형상 분명 「약자 연합」이다. 르노와 닛산이 약자 연합을 메거컴피티 션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강자 연합」으로 바꿀 수 있을까. 닛산의 회생 여부는 바로 여기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