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한 확장, 경영 내리막 자초 ... 실적 호전없이 부채만 늘어

「다이에」는 일본의 유통사를 바꿔놓은 장본인이다. 「좋은 제품을 값싸게」라는 슬로건으로 정가 판매 시대에 「가격 파괴」 돌풍을 일으켰다. 자체 브랜드(PB)시대를 개척했다. 대량 구입 대량 판매로 저비용 저가격이라는 유통업계의 이상을 실현했다. 가전제품의 할인 판매에 반발하고 나선 마쓰시타전기를 결국 굴복시켰다. 유통업이 제조업보다 우위에 있음을 처음으로 증명해 보였다.값싼 오렌지주스와 수입 맥주를 판매, 가격 파괴를 확산시켰다. 71년에는 슈퍼업계에서 처음으로 도쿄증시 1부에 상장됐다.이뿐만 아니다. 편의점 설립, 중견슈퍼 흡수 합병으로 본업인 유통 사업 확대에 나섰다. 75년에는 편의점 로손을 설립했다. 80년에는 소매 분야에서 처음으로 매출 1조엔 시대를 열었다. 94년에는 주지쓰야(忠實屋) 유니드다이에 다이나하 등 3개사를 흡수 합병, 유통업계정상에 우뚝 올라섰다.본업 이외의 사업에도 손을 댔다. 취업정보회사인 리쿠르트와 프로야구 난카이 호크스구단, 오리엔털호텔을 사들였다. 마침내 1백30개 회사에 사원 10만명을 거느린 매출 2조5천억엔 규모의 일본 최대 슈퍼그룹을 일궈냈다.다이에를 유통왕국으로 일궈낸 인물은 창업주인 나카우치 이사오(中內功)회장(76). 그는 오사카의 시골에 57년 다이에(大榮)의약품공업을 설립, 사업에 발을 들여놓았다. 유통 파워를 활용, 다이에를 단숨에 소매업 정상에 올려 놓았다. 「영원한 사장」임을 선언하기도 했다.감투도 굴러 들어왔다. 67년에 일본체인스토어협회 초대 회장을 맡았다. 재계단체인 게이단렌의 부회장도 역임했다. 유통업계에서는 처음이었다. 한마디로 「시대의 총아」로 떠올랐던 것이다.그는 일인 경영으로 신화를 창출해 왔다. 오너이자 창업자인 나카우치는 곧 다이에로 통했다. 「유통의 가미사마(神樣)」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 과정에서 카리스마가 형성됐다. 일본 재계의 대표적인 카리스마로 통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신격으로까지 추앙받던 그가 올초 사장자리를 돌연 내놓고 이선으로 물러나고 말았다. 도바 다다스(鳥羽董)부사장(68)을 후임으로 승진시켰다. 창업 이래 42년 동안 지켜온 톱자리를 스스로 내놓았다. 『죽을 때까지 사장을 맡겠다』던 그의 공언(公言)은 결국 빈말(空言)이 되고 말았다.◆ 분권경영 등 노력에도 해결 기미 없어나카우치회장은 사장 퇴임 회견에서 『톱다운 방식을 지양, 합의제로 나가겠다』고 밝혔다. 아지노모토사장 출신으로 재무통 전문경영인인 도바사장체제로 최대 과제인 부채 해결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일인 장기 집권에 문제가 있었음을 시인한 것이다. 경영 책임 문제가 터져 나오기 전에 퇴진의 결단을 내렸던 셈이다.그러나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았다. 지난 3월30일에는 올초 부사장에 임명했던 장남 나카우치 쥰(潤)씨(43)를 무임소 이사로 강등시켰다. 일찍이 창업주의 뒤를 이을 후계자로 지목돼온 그를 인책해 가면서까지 「나카우치 색깔」지우기에 나선 것이다. 일인 체제에 대한 은행등의 비판을 무마시키기 위해 극약 처방을 내린 것이다.한때 유통왕국을 구축했던 다이에가 이처럼 수난을 당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부동산을 담보로 한 무리한 사업확대가 결정적 요인으로 꼽힌다. 다이에 경영의 핵은 「스톡중시형 경영」. 점포 유통센터 등을 타회사에 비해 훨씬 많이 보유했다. 80년대 부동산값 폭등으로 자산이 한때 2조엔 규모로 불어났다. 이를 담보로 점포 신설 확대에 나섰다. 전국적으로 물류망도 깔기 시작했다. 다이에유니드 등 3개사를 흡수, 메거 합병도 실현했다. 프로야구 등 본업 이외의 사업에도 뛰어들었다.그러나 90년에 들어서면서 급브레이크가 걸리기 시작했다. 버블붕괴로 부동산 거품이 빠지면서 결정적 타격을 받았다. 고속 성장의 엔진 역할을 했던 부동산 자산들이 오히려 경영을 압박하는 화근이 되고 말았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한신대 지진까지 발생, 손실이 겹쳤다.이를 만회하기 위해 매수 기업의 부동산과 주식을 담보로 조달한 자금으로 또다시 공격 경영에 나섰다. 그러나 무리한 출점 등에 따른 부담이 가중되면서 그룹 전체의 부채(이자부기준)가 2조6천억엔으로 늘어나고 말았다. 98년2월 결산 때는 2백58억엔의 경상적자를 냈다. 창업 이래 처음이었다.난국 타개를 위해 지난해 1월 종합슈퍼를 7개지역 컴퍼니로 분할했다. 신화의 원동력이었던 바잉파워의 위축을 감내하면서까지 분권 경영에 나선 것이다. 98년도에 30개 이상의 점포를 폐쇄했다. 지난해 말에는 상품권 지급 등 세일도 실시했다.◆ 3년내 부채1조엔 감축 ‘최대 과제’사업 매각과 인력 감축을 축으로 하는 3개년 재생계획도 마련했다. 외식기업 호텔 등 4천8백억엔 규모의 사업을 매각키로 했다. 올해 희망 퇴직자 모집을 통해 8백명을 감원하는 것을 시작으로 3년 안에 3천명을 줄이기로 했으며 2001년까지 그룹의 부채를 1조엔 삭감키로 했다. 그러나 다이에의 고민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여전히 「2중의 판매 부진」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본업인 소매업의 부진과 자산 매각의 부진이 바로 그것이다.2조6천억엔에 이르는 부채를 줄일 수 있는 자산의 매각도 제자리 걸음이다. 지난해 금융자회사인 딕파이낸스의 사업을 매각한 이래 눈에 띄는 실적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긴자의 「카네보빌딩」이나 미국 하와이의 아라모아나쇼핑센터의 매각 여부도 불투명하다. 주식 공개를 통한 자금 조달도 여의치 않다. 지난해 8월에는 자회사인 다이에포토의 주식을 공개했다. 그러나 가격이 바닥에 머물고 있다. 이로 인해 주식을 내다팔지 못하고 있다. 쁘랭땅긴자의 공개도 불투명하다.다이에의 부진은 실적으로도 쉽게 검증된다. 2월 결산기의 모기업 경상이익은 당초 예상치의 5분의 1에 불과한 10억엔. 연결 기준으로는 무려 4백20억엔의 적자를 냈다. 71년 상장 이래 처음으로 무배당 기업으로 전락하고 말았다.후계 문제도 여전히 불씨로 남아 있다. 나카우치회장은 자신이 내놓은 그룹지주회사인 다이에홀딩코포레이션(DHC)사장에 장남 쥰씨를 앉혔다. 구조 재구축을 성공시켜 쥰씨가 후계자가 될 수 있도록 배려해준 셈이다.나카우치회장의 사장 퇴진에 대한 반응도 차갑기는 마찬가지였다. 창업주의 사장 퇴임은 『일인 중심 체제로는 리스트럭처링이 불가능하다』며 체제 개혁을 요구해온 채권 은행단을 의식한 연출극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다이에 주식의 시가총액은 소매업 한우물만 파온 경쟁업체인 이토요카도의 10분의 1에도 못미치고 있다. 소비자와 시장으로부터 완전히 외면을 당하고 말았다는 얘기다.다이에의 최대 과제는 「3년내 부채1조엔 감축」. 소비 불황속에서 이를 달성하기가 쉽지 않은게 현실이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이를 달성하더라도 여전히 1조6천억엔이라는 부채가 남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본업의 발본적인 개혁없이는 다이에의 재생이 불가능하다는게 시장의 분석이다. 일부에서는 이미 다이에의 해체가 시작됐다고 지적한다. 일본의 유통사를 이끌어온 종합슈퍼의 대명사 다이에의 운명이 백척간두인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