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찰제 등 차별화 전략 적중 ... 가구업체 불황속 매출 급신장

두명이 히말라야의 험준한 고봉에 올라갔으나 밧줄이 모자라 한명은 목숨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눈보라는 몰아치고 아래는 천길 낭떠러지. 밧줄에 몸을 매단채 빙벽에 기댄 두 사람.96년4월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 객석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연극 「K2」에 빨려들고 있었다. 산을 좋아하는 물리학자와 법관이 히말라야산맥의 K2를 등정하면서 벌어지는 상황을 다룬 것. 관객은 손에 땀을 쥐며 상황 전개에 몰두한다. 특히 관객을 몰입시키는 것은 거대한 무대 장치. 연극 무대는 1층이나 2층 높이가 보통이지만 이 연극에선 4층 높이로 제작됐다.거대한 설산과 빙벽을 실감나게 표현하느라 엄청난 크기로 만든 것. 연극이 성공을 거둔 것은 배우의 연기 못지 않게 무대 장치가 큰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이 연극은 아마추어 연극인 모임인 「실극」에서 공연한 것. 서울 공대 연극반 출신들이다. 무대 장치를 맡은 사람은 양영일씨(51). 양씨는 당시 실극의 회장을 맡고 있었다.◆ 가구에 미친 가구인양영일씨는 아마추어 연극인이자 가구인. 한샘과 퍼시스를 거쳐 작년 9월 일룸을 창업하면서 사장으로 옮겼다. 연극인과 가구인은 비슷한 점이 있다. 둘다 예술을 추구한다는 것. 여러 사람이 공동 작업해 아름다움을 창조하는게 흡사하다. 미치지 않으면 하기 힘든 것도 비슷하다.일룸이 문을 연 작년 9월은 가구업체 창업 시기로는 매우 부적절한 때였다. 외환위기 여파로 가구업체 상당수가 쓰러지고 매출이 격감했다. 희망은 오로지 살아 남는 것 뿐. 덤핑 판매와 출혈 경쟁은 일상화돼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창업한 것은 미친 짓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일룸은 신화를 창조하고 있다. 매월 매출이 두배로 증가하고 있다.설날을 앞둔 지난 2월초. 일룸의 대리점은 홍역을 치렀다. 몰려드는 주문에 제품을 제때 공급하지 못해 소비자들의 항의가 빗발친 것. 당초 약속한 시공기간 5일을 세배나 넘겨서야 겨우 완료할 수 있다. 시공을 맡은 본사 직원들은 휴일과 밤낮없이 작업을 해야 했다.일룸의 올 1/4분기 판매는 25억원. 이 상태로 나가면 올매출이 1백20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출범 당시 목표보다 20% 이상 많은 것. 많은 가구업체들이 쓰러지는 속에서 일룸이 성장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첫째, 제품 컨셉이 독특하다는 점. 생산제품은 생활 창작-시스템 가구. 굳이 기존 제품의 분류를 따르면 부엌 가구나 사무용 가구가 아닌 가정용 가구라고 할수 있다. 그러나 일반 가정용 가구와는 개념이 다르다. 보통 가정용 가구는 장롱 옷장 화장대를 말한다. 하지만 이 회사가 만드는 제품은 유닛 단위로 제조된 가구. 개인 취향에 따라 독특한 공간을 꾸밀 수 있게 돼 있다. 예컨대 책장처럼 생긴 유닛을 구입해 수납장이나 장식장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다양한 치수의 제품을 공급하고 있을 뿐 아니라 분해 조립도 가능하다. 어떤 공간에도 알맞는 제품을 설치할 수 있다.둘째, 정찰제. 가구는 20~30% 할인해 사는게 보통이다. 그러고도 싸게 샀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반면 일룸은 철저히 정찰제를 고집한다. 깎지 않아도 비싸다고 느끼지 않을 정도의 적정한 가격을 매긴다. 몇번 할인을 시도하던 소비자는 오히려 가격에 신뢰를 나타낸다.◆ 창업 반년새 전국에 대리점 50개셋째, 대리점의 무창고 무재고 시스템. 대리점은 창고도 없고 재고도 없다. 오로지 주문만 받으면 된다. 본사에서 제품을 직접 배달해 설치해준다. 물류부담이 줄어든 대리점으로서는 경쟁력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불과 반년새 전국에 50개의 대리점을 열 수 있었다. 연내 1백개로 늘릴 예정이다. 일룸은 알투스 보스톤 프리존의 세가지 제품군을 출시하고 있다.『아무리 시장이 위축돼도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내놓으면 팔립니다. 제품 가격 유통면을 혁신한게 맞아 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양사장은 올해는 내수를 다지는 해로 설정하고 내년부터는 수출에 나서기로 했다. 해외마케팅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러시아 등지로부터 소량 주문이 들어오고 있다.품목 다양화도 추진하고 있다. 방 중심의 가구에서 거실용 가구 쪽으로 넓혀나갈 생각이다. 이를 위해 90명인 인원을 연내 1백30명으로 늘리기로 했다. 생산은 퍼시스 관련 회사에 주로 아웃소싱을 하고 있다. 자체 공장으로는 성남에 의자공장만 갖고 있다. 의자공장 옆에 본사 및 공장 건물을 짓고 있다.일룸은 일루미네이트와 룸의 합성어. 조명이 비치는 밝은 방을 뜻한다. 가구 하나 보다는 공간을 집중 조명하고 연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단품이 아닌 시스템가구를 지향하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연극을 하는 사람은 연극에 미친 사람들이다. 돈과 시간을 써가며 연극의 성공에 몸을 던진다. 마찬가지로 가구인도 가구에 미친 사람이다. 양사장처럼 가구에 미쳐 참신한 제품 개발과 유통 혁신에 몰두하면 멀지않아 국제 무대에서 한국 가구가 이탈리아 가구를 능가할 날이 올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02)3402-0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