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금·국민연금만으론 생활 보장 안돼

회사를 다니다가 정년 퇴직한 뒤 다른 직장을 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각종 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55세 이상의 취업률은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10명 가운데 9명 이상은 정년 퇴직이 곧 실업 상태를 뜻한다.직접 창업에 나서기도 쉽지 않다. 나이든 사람들이 창업할 수 있는 아이템이 거의 없는데다 신체적으로 고된 일을 견뎌내기도 버겁다. 젊은 사람들의 창업 성공률이 15% 안팎에 머문다는 사실을 알면 더욱 그렇다. 결국 경제 활동을 못하게 되면 소득도 끊어진다.그렇다고 정부의 노인 복지 정책에 기댈 수도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지난해부터 정부 차원에서 경로 연금제를 도입했지만 빠듯한 예산 사정으로 80세미만의 저소득 노인층에 대해 매월 2만원을 줄 뿐이다. 선진국의 노인들이 먹고 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과는 크게 다르다.정년 이후를 미리 준비해야 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현실적으로 정년 이후의 인생 대차대조표를 미리 만들어 준비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먼저 정년 이후 얻을 수 있는 수입을 살펴보자. 직장인이라면 누구든 퇴직금을 받게 되고, 국민연금의 수혜 대상자가 된다. 한때는 격려금이다 뭐다하여 다른 소득이 있었으나 요즘은 사정이 크게 달라졌다. 앞으로도 퇴직자에게 별도의 소득을 안기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퇴직금은 개인에 따라 크게 다르다. 받고 있는 월급의 액수와 근속 연수에 따라 차이가 나게 마련이다. 다만 평균적인 잣대를 적용해 산출해 보면 이렇다. 먼저 연봉이 3천만원(월급2백50만원)이고, 나이가 40세인 직장인이라면 55세에 퇴직할 때쯤이면 월평균 4백38만원의 월급(매년 급여가 5% 인상된다고 가정)을 받게 된다. 또 근속 연수는 55세쯤 퇴직을 한다고 가정했을 때 대략 30년쯤 된다. 결국 퇴직금으로 받을 수 있는 돈은 대략 「4백38만원×30개월치」 해서 1억3천1백만원 정도 된다.국민연금은 만 60세에 도달해야 받을 수 있다. 아무리 가입 기간이 길어도 만 60세가 되지 않으면 지급대상이 되지 않는다. 또 연금 지급액은 가입 기간과 월불입액에 따라 다르다. 한 예로 표준 소득월액 2백50만원으로 7만6천2백원을 매월 낸 사람은 가입 기간이 10년이면 28만5천원, 15년이면 42만7천9백원, 20년이면 58만5천원을 받는다.그렇다면 현재 40세에 표준소득 월액이 2백50만원인 직장인이 55세까지 직장생활을 한 다음 받을 수 있는 연금액은 얼마일까. 먼저 국내에 국민연금제도가 도입된 것이 지난 88년이므로 40세 직장인은 처음부터 가입대상자였던 것으로 봐야 한다. 따라서 55세가 되는 오는 2014년까지 직장에 다닌다고 가정하면 26년간 가입하는 셈이고, 이때 받게 되는 국민연금은 월 70만원이다.정년퇴직을 해 소득이 원천적으로 없어졌다고 해서 지출마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직장에는 나가지 않지만 다른 사회활동을 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지출은 그대로 유지된다. 다만 사회활동을 하는데 드는 품위유지비 정도가 줄어들지만 이는 무시해도 좋을 정도로 아주 작은 부분을 차지한다.지출 가운데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역시 생활비다. 먹고 사는데 최소한의 비용은 써야 한다. 최근 통계청이 도시가구를 대상으로 가계지출액을 조사한 결과 월평균 1백50만원을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지금 돈으로 1백50만원 정도, 연3%의 인플레를 감안한 15년후 금액으로는 2백34만원이 매달 생겨야 퇴직 후에도 별다른 불편없이 살 수 있다는 얘기다.◆ 자녀 결혼비용·교육비 등 쓸 곳 산재자녀 혼사에 대한 부담도 만만치 않다. 사실 정년 퇴직 전에 자녀를 결혼시키는 가정은 그리 많지 않다. 정년은 짧아지고, 반대로 결혼 연령은 크게 높아지면서 퇴직 후에 자녀의 결혼을 치르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제는 비용으로 지난해 선우이벤트가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결혼비용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평균 5천만원을 쓰는 것으로 드러났다. 결혼 비용의 경우 남녀가 반반씩 부담하는 사례가 많은만큼 남녀 공히 2천5백만원대를 쓰는 것으로 보면 틀림없다. 따라서 자녀가 2명일 경우 인플레 3%를 감안한 15년 후 돈으로는 7천8백만원쯤 준비해야 두 자녀의 혼사를 치를 수 있다는 얘기다.집안 사정에 따라 교육비가 부담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자녀가 두명이라면 정년 퇴직 때쯤 한명 정도는 대학에 다닐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요즘의 대학 등록금이 한 학기에 2백만원선이므로 졸업 때까지 교재비 등을 합쳐 최소한 1천5백만원, 연 인플레 3%를 감안한 15년후 액수로는 2천3백만원은 족히 들 것으로 짐작된다. 물론 대학생이 없으면 이런 비용은 발생하지 않는다.그럼 이제 40세된 직장인의 정년 이후의 인생 대차대조표를 만들어보자. 편의상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정년은 55세이며, 연봉은 3천만원으로 잡는다. 또 돈은 15년 후 가치로 환산해 따지고, 인플레는 연 3%로 잡는다.수입을 보면 먼저 퇴직금으로 1억3천1백만원의 돈을 받고, 60세부터 국민연금으로 월 70만원을 받는다. 다른 것이 없다면 이것이 전부다. 반면 지출은 수입보다 규모가 크다. 일단 월생활비 2백34만원이 고정적으로 나간다. 여기에다 자녀 결혼자금으로 7천8백만원을 준비해야 하고, 2천3백만원 정도의 교육비도 생각해야 한다.결국 퇴직금 가운데 1억1백만원 가량이 이런저런 비용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남는 것은 퇴직금에서 남는 3천만원과 국민연금 뿐이다. 이 3천만원을 은행에 넣어 이자를 챙긴다고 해도 한달에 12만원 정도(연이자 5%로 따질 경우) 밖에 안된다. 결국 국민연금이 나오지 않는 55~60세 사이에는 생활비의 전액과 맞먹는 2백22만원(2백34만원 - 12만원)을 조달하고, 60세 이후에는 여기서 국민연금 지급액을 뺀 나머지를 개인적으로 준비해야 한다.이제 목표점은 뚜렷해진다. 젊어서부터 정년 이후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퇴직금과 국민연금만으로는 생활이 되지 않는다. 개인연금이나 적금을 들든 아니면 목돈을 모아 미리 묻어놓든 다른 대비책을 세우지 않으면 노후에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크게 고생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