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와 하이그로시가구」. 지난 90년 주택 2백만호 건설에 따라 신도시 개발에 뛰어들어 경쟁적으로 아파트 분양에 나섰던 건설업체들이 돌린 분양광고물에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말이다. HA는 Home Automation의 약자. 가사자동화 가정자동화 쯤으로 번역됐다. 화상도어폰과 원거리 취사·난방 등을 통해 주부들의 일손을 덜어준다는 것이었다. 하이그로시가구는 고광택가구로 현관의 신발장이나 거실장 등을 밝고 화사한 광택이나 무늬의 가구로 채운다는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이런 광고는 앞으로의 아파트를 미리 가늠할 수 있는 하나의 잣대였다. 그런 아파트들이 앞으로 대세를 이루리라는 것이었으며, 실제 분양현장에서 주부들로부터 인기를 얻기도 했다. 물론 지금 대부분의 아파트가 채택하는 기본사양이 되다시피 했다. 그만큼 아파트에도 수요자의 요구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진보가 이뤄진다.그렇다면 과연 새로운 천년에 선보일 아파트는 어떤 모습일까. 성냥갑으로까지 빗대어졌던 획일적인 이미지를 떨쳐버릴 수 있을까. 어떻게 지어지며 어떤 아파트가 투자가치가 있는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2002년이면 주택보급률 1백%를 이룬다는 것이 정부의 주택 공급 계획이다. 이는 양적인 부족함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것이며 결국 질로 아파트를 선택하게 되는 때가 왔음을 시사하는 말이기도 하다.소비자들의 수요 변화도 뚜렷하다. 곽승준(고려대 경제학과)교수와 주택은행 허세림 연구위원이 지난해 9월에 조사·발표한 「21세기 주거선호와 환경」이라는 자료에 따르면 주택선택시 교육환경-직장거리·교통 - 녹지공간 - 공공편익시설 - 주택가격 - 주택규모 - 재산가치 - 주택유형 - 자금여건 - 부모와의 거리 등의 순으로 고려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96년 주공 주택연구소가 실시한 조사에서 주거환경 - 교육여건 - 직장과의 거리순으로 나타난 것이나, 97년 연세대 김홍규(도시공학)·하미경(가정관리학)교수가 조사한 교통편리성 - 주변환경 - 크기순에 비하면 다소 차이가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삶의 질을 중시하는 트렌드가 뚜렷하며 그에 따른 쾌적하고 편리한 환경의 아파트가 인기를 모을 것이라는 점이다.◆ 아파트 안과 밖 ‘변화 바람’주공 주택연구소 21세기 주택연구팀 정종대 연구원은 이런 수요자의 변화를 『인테리어 디자인 설비 등과 같은 부분보다는 삶의 질에 있어 지속가능한 주거가치를 보장해주는 외적인 요소에 수요자들의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5년 이내의 가까운 미래에 실현 가능한 주택 모델의 키워드를 환경친화 정보화 개성화 3가지로 설정할 수 있다』는 것이 정연구원의 덧붙인 말이다. 삼성물산 주택개발부문은 정신적 성숙(Ripeness), 시간적 여유(Rest), 물질적 풍요(Richness) 등 3R의 주거 패러다임으로 변함에 따라 첨단주택·환경친화주택·고성능주택·안심주택·건강주택 등을 21세기 미래주택으로 설정하기도 했다.그런 변화의 조짐은 이미 여러 현장에서도 실제로 반영되고 있다. 요즘 분양되는 아파트들 가운데에서도 수요자의 변화와 새로운 천년을 앞둔 기대감을 반영해 변화한 모습을 보여주는 아파트들이 많이 있다. 변화의 특징은 열린 공간을 추구하는 「아파트밖」과 편리함 첨단 고급스러움 등이 강조되는 「아파트안」이다. 밖의 변화를 보면 단지내 테마공원 분수광장 등 주민 공동공간의 조성, 일렬종대에서 벗어난 곡선 스카이라인이나 건물배치의 곡면화, 발코니의 다양한 모형 제시와 활용 극대화, 주차장의 지하화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안의 변화로는 안목 치수 적용에 따른 내부 공간활용의 극대화, 가변형 평면과 같은 맞춤 설계, 3세대 동시 거주형 평면, 마감재의 고급화, 주방 화장실 다용도실 등의 다각형화, 툇마루·사립문·전통문양의 마감재 등과 같은 전통으로의 복귀 등으로 선보이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목적은 명확하다. 쾌적한 주거공간을 제공하는 동시에 생활의 편리성을 극대화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