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존기간 늘려 수출까지 승승장구 ... 다양한 식품 개발 박차

설날이 가까워지면 방앗간은 어린이들로 붐비기 마련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몰랑몰랑한 떡가래를 얻어 먹기 위해서다. 요즘은 점차 사라지고 있지만 불과 십여년 전만 해도 이런 풍경은 흔했다.아카시아 꽃이 피는 초여름 길목에서 인기를 끄는 식품은 단연 국수. 길가에 늘어 놓고 파는 국수를 사다가 멸치를 넣고 삶은뒤 김치국물에 말아서 먹는다. 후루룩 소리와 함께. 고소한 참기름을 한두방울 떨어뜨리면 금상첨화다.파주에 있는 송학식품은 떡과 국수와 같은 전통식품을 만드는 업체. 가래떡을 잘게 썰어 만든 떡국용 떡과 길게 썬 떡볶이용 떡 그리고 국수가 주력제품이다. 수제비와 우동 누룽지도 생산한다. 방앗간과 국수집을 대체하고 있는 셈이다.공장안은 항상 맛있는 냄새로 가득하다. 쌀을 씻어 물에 불린 뒤 스팀으로 찐다. 쪄진 밥은 가공기계로 들어가 으깨진 뒤 가래떡이 돼 구멍을 통해 속살을 드러낸다.포장된 떡은 전국으로 팔려 나간다. 오사카나 로스앤젤레스로도 실려 간다. 국수 역시 마찬가지. 송학식품이 판매한 액수는 지난해 1백70억원에 달했다.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그전해보다 15%가 늘어난 것이다. 이중 수출은 70만달러. 올해 예상매출은 2백20억원 수출은 2백만달러다. 해외시장의 주고객이 교포임은 물론이다.연간 취급하는 쌀과 밀가루는 1만t이 넘는다. 군에 납품하는 떡볶이용 떡의 대부분도 이 회사가 만든다.떡과 국수 분야에서 국내 정상급 업체가 된 것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뤄진게 아니다. 창업이후 대를 이어가며 반세기가 넘게 맛을 창조해온 노력의 산물이다.회사의 역사는 광복직후인 46년 부산 범일동에서 시작됐다. 창업주는 성귀현(77) 회장. 초기 품목은 국수와 뻥튀기. 꾸준히 성장하던 회사는 공장매각과 관련한 소송에 휩싸이면서 알거지로 변한다.◆ 악조건 연구하다보니 어느새 성장70년 서울 신길동으로 옮기면서 재기에 나섰다. 생산제품은 국수와 떡. 이때부터 아들인 성호정(52)씨가 사장을 맡아 경영을 총괄했다. 고등학교를 나와 가업을 이은 그는 말이 사장이지 국수를 팔러 다니는 영업사원이었다. 자전거에 국수나 떡을 싣고 남대문과 인천 수원을 찾아다니며 팔았다. 더운 날은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됐고 비가 오면 진흙탕에 바퀴가 빠져 진퇴양난이었다.사업에 가장 큰 변수는 날씨였다. 라디오에 귀를 기울여 일기예보를 점검한뒤 생산량를 결정하게 된다. 그런데 왜 그리도 예보가 번번이 빗나가는지. 날씨가 맑을 것이라는 예보를 믿고 대량으로 생산했다가 이틀 이상 비가 쏟아져 막대한 타격을 받은게 한두번이 아니다. 곰팡이가 피고 썩는 것이다. 이런 악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연구에 골몰했고 이는 거꾸로 성장의 원동력이 됐다.진공포장이 바로 그것. 오래 보관할 수 있도록 포장을 진공으로 바꾼 것이다. 보존기간이 종전의 3일에서 20일로 늘어났다. 하지만 진공포장은 또 다른 문제를 일으켰다. 공기를 빨아내는 과정에서 포장지가 떡에 밀착돼 때때로 내용물이 으스러졌던 것. 고심끝에 개발해 낸 것이 탈산소제를 이용한 포장. 곰팡이가 피는 것은 산소가 들어 있기 때문인데 이를 제거해 보존기간을 최장 60일까지 획기적으로 늘렸다. 수출도 가능해졌다.보전기법의 개발과 더불어 맛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같은 쌀로 만든 떡이라도 맛은 천차만별이다. 수분함량과 반죽상태, 숙성 정도에 따라서 쫄깃쫄깃함과 부드러움의 정도가 달라진다. 공장을 완전자동화하지 않고 부분자동화한 것도 숙련된 종업원의 손맛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서다.선조들이 국수를 만들 때 밀가루 반죽을 젖은 헝겊에 싸서 밟아주거나 방안에 일정시간 놔둔 것은 수분이 골고루 퍼지도록 하기 위한 것. 이런 지혜를 십분 살려 국수를 만들 때 롤러를 8단계나 통과하게 설계했다. 고른 반죽과 적당한 숙성을 돕기 위한 것. 밀가루는 제분회사에 특수 주문해서 공급받는다. 가격이 다른 회사제품보다 5∼10% 가량 비싼데도 잘 팔리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 해외 주고객은 미국 일본 교포『재래식 맛을 내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맛은 옛날 그대로가 최고니까요.』성사장은 미국이나 일본 교포가 굳이 송학식품의 떡과 국수를 찾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한다.그의 꿈은 두가지다. 수출을 크게 늘리는 것과 다양한 전통식품을 개발하는 것. 좀더 정확히는 개발이 아니라 옛맛을 복원한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그는 전통식품도 무궁무진하게 성장할 수 있는 사업이며 연구할 분야도 매우 많다고 확신한다. 90년대 중반 통일벼가 남아돌 때 쌀국수를 개발한 공로로 석탑산업훈장을 받았을 정도로 개발에도 일가견이 있다. 감자수제비 등 생산제품이 1백여종에 달하는 것도 이런 노력 덕분이다. 전통식품업체로는 드물게 ISO인증을 받기도 했다.그는 고아원이나 지체부자유자를 돕는데도 열심이다. 송학식품이 지원하는 곳은 전국적으로 86개소나 된다. 이들에게 떡과 국수를 기증한다. 특히 떡볶이용 떡은 고아원에서 최고 인기품목.2백20명에 이르는 송학식품 종업원들의 표정이 한결같이 밝은 것은 사랑의 실천에 동참하고 있다는 뿌듯함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0348)945-1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