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장관인사에서 관심을 끌었던 대목 중 하나가 정덕구 재정경제부 차관의 산업자원부 장관 임명이다. 인사적체가 심한 산업자원부에 장관중 최연소 인물이 배치된데다 한덕수 통상교섭본부장 등 당초 거론되던 인물들을 모두 제치고 임명됐다는 점에서다.옛 상공부출신들을 제쳤다는 점에서 공무원들은 역시 「정덕구」 장관이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가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실세라는 점이 확인된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김대중 대통령은 지난해 재경부 첫 업무보고에서 「현안이 되고 있는 고금리 문제에 대한 대책을 정차관이 직접 대답해 달라」고 물어 그에 대한 신임을 보였다. 당시 정차관은 자신의 스타일대로 「하문(下問)하신대로 3개월내에 한자릿수로 끌어내리겠다」고 답변한 뒤 이를 실천했다. 이같은 무서운 돌파력과 충성심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정장관은 고려대 상학과를 거쳐 71년 공직생활을 시작한 뒤 줄곧 재무부(재경원 재경부)에서 근무했다. 사무관 시절부터 조세정책과장까지는 세제분야에서 일했다. 사무관시절 강만수 과장(전 재정경제원 차관,현 무역협회 상근부회장)과 부가가치세를 도입하는 주역을 맡았다. 87년3월 자본시장과장을 맡은 뒤부터 영국대사관 재무관 저축심의관까지는 금융업무를 담당했던 시기로 분류된다.국장급 이후부터는 국제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재무부시절엔 경제협력국장과 국제금융국장,재정경제원시절엔 대외경제국장과 국제담당 2차관보를 거쳤다. 재경원 대외경제국장 시절 러시아와의 경협차관 상환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외환위기를 겪던 2차관보 시절에는 외채만기연장 협상과 외평채 발행을 성공적으로 마치면서 김대중 대통령등 정권핵심의 눈에 선명한 인상을 남겼다.정장관은 사무관시절부터 특유의 돌파력과 화려한 화술 등으로 가는 곳마다 일화를 남겼다. 세제국 사무관시절 조선일보 최청림 기자(현 논설실장)와의 「꼴뚜기 사건」으로 유명하다. 당시 재무부를 출입하던 최청림 기자가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라는 가십기사를 통해 재무부의 세제정책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이에 화가 치민 정사무관이 최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항의하면서 고성이 오갔다. 전화통화과정에서 최기자가 『당신은 누구냐』며 이름을 묻자 정 사무관이 『나는 꼴뚜기다』라고 받아넘겼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전화통화로도 성이 안차 재무부 복도까지 뛰어나와 옥신각신하며 몸싸움을 벌였다가 주변에서 말려 간신히 화해했다. 재무부 간부들은 겉으로는 언론사에 사과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잘했다」고 옹호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정장관의 밀어붙이기가 효과를 발휘한 대목중 하나는 재경원 대외경제국장시절 러시아와의 경협차관협상. 햄버거를 먹어가며 휴식시간도 거의 없이 며칠동안 꼬박 협상을 벌인 끝에 러시아측의 항복을 받아낸 것으로 유명하다. 경협차관중 상당부분을 지금도 받지 못했지만 이 덕분에 다른 채권국에 비해서는 회수율이 높다. 정장관의 특기중 하나는 비유를 활용한 뛰어난 언변이다. 지난해 외평채발행 당시에는 한국을 방문한 살로먼 스미스 바니 회장등 투자은행 대표단을 앞에 두고 「벼랑끝에 간신히 매달려 있는 사람을 발견했을때 뭘 줄 것이냐며 협상을 요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마음에서 우러나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 당신은 어느 쪽이냐」고 물어 좌중을 웃기기도 했다.정장관은 인맥을 관리하고 활용하는데 능숙하다. 배재고 동문인 김대중 대통령의 차남 홍업씨와는 오래 전부터 친하게 지내는 사이다. 고대 인맥도 적절하게 활용한다. 97년말 재경원이 내놓은 금융개혁관련법안을 고대후배인 국민회의 A의원이 반대하자 밖으로 불러내 호통을 쳤다는 일화가 있다.올해 51세로 행시 10회출신인 정덕구 장관의 임명은 공무원 사회에 물갈이의 충격을 가져오고 있다. 이미 행시 선배와 동기를 외청장으로 내보냈다. 1급(실장급,관리관)중 가장 기수가 낮은 오영교 무역정책실장(12회)이 차관으로 임명됐다. 정장관은 「사무관 서기관이 국장이 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질 수 있게」 하고 「외청에서도 사람을 발탁」하며 「승진은 서열대로 하되 보직은 능력대로」한다는 인사 3원칙을 공개해 파란이 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