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오리엔트(ReORIENT)」라고 하는 말은 프랭크(Andre G. Frank)가 지난해 말 발간한 책의 제목이다. 프랭크는 종속이론의 대표적 이론가의 한 사람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알려진 경제학자이다. 그가 책제목에 대해 따로 설명하고 있지 않지만, 그는 리오리엔트라는 말을 통해 「다시 동양으로」라는 뜻과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 보기」라는 뉘앙스를 동시에 나타내고 싶어했다.프랭크는 이 책에서 그가 주창한 종속이론을 포함하여 근대 자본주의의 기원 및 발달과 관련되어 제기된 기존의 대부분의 학문적 논의를 전면적으로 거부하고 있다. 논리의 기저에는 편협한 유럽중심주의적 사고에 대한 비판이 깔려 있다. 즉 그 동안 쓰여진 세계사 혹은 자본주의론은 구미학자들에 의해 서양을 본위로 해석된 서양사 혹은 유럽경제론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유럽 이외의 지역, 특히 동양, 또는 아시아는 변방의 오랑캐일 뿐으로 세계사의 주체적 참가자로서의 역할은 거의 무시되고 있기 때문이다.「서양의 융성」은 「동양의 몰락」을 틈탄 헤게모니 전환의 결과이다. 다시 말하면 서양이 산업혁명 이후 세계사를 주도하기 이전에 동양이 그 주도권을 행사했다. 산업혁명의 이전의 세계에서는 서양은 동양에 비해 정체된 사회였다. 동양 혹은 아시아가 현재 서양과 비교하여 후진성을 나타내는 것은 마르크스와 베버의 주장처럼 동양 사회에 내재된 정체성 때문이 아니라는 말이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서양이 산업혁명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동양에 비해 뒤처진 결과 발생한 후발성 이익을 잘 활용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동아시아 전체가 금융 위기에 빠졌을 때 이른바 아시아적 가치에 대해 열띤 공방이 벌어졌었다. 원래 아시아적 가치라는 말은 동아시아가 경이로운 경제성장을 달성하고 있을 때 그 성공의 요인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된 개념이다. 그러나 동아시아가 금융 위기로 인해 일대 수난을 당하게 되자 아시아적 가치는 일순에 악덕으로 돌변했다. 위기를 초래한 장본인 격으로 조롱되다가 마침내는 이른바 정실 자본주의의 사상적 배경으로 지목되는데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아시아적 가치를 대신하여 글로벌 스탠더드가 새로운 화두로 등장하여 세계화를 위한 새로운 준거 틀이 됐다.주지하다시피 글로벌 스탠더드는 글자 그대로의 의미처럼 전지구적이라 할 수 있는 보편적인 기준이 아니다. 그것은 서구적 기준일 따름이다. 그러면 왜 다시 글로벌 스탠더드인가. 그 동안 동아시아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거부했던가. 사실 동아시아는 글로벌 스탠더드의 수용에 가장 적극적인 지역 중의 하나가 아니었던가. 이런 점에서 보면 이번의 아시아 위기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대하여 수용 태세가 부족했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이 아시아적 토양에 착근하는 과정에서 생긴 부작용의 결과에서 비롯된 것이다. 정실자본주의라는 것도 그 부작용일 따름이다.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은 글로벌 스탠더드의 아시아적 수용 과정에서 발생한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이지, 아시아적 가치의 원형을 던져 버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우리가 추구할 것은 아시아적 가치의 원형은 되살리되 동서양이 화해한 상생(相生)적 글로벌 스탠더드의 형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리오리엔트라는 말은 매우 시사적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다시 동양으로」 되돌아와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 보기」를 해야 한다고 일깨워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