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주전에 고객 회사를 방문, 유연한 전략에 대해 토론한 적이 있다. 유연한 전략이란 시장 환경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전략을 의미한다. 토론은 주로 조직이 체계화되지 않은 아이디어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변화하는 비즈니스 환경에 어떻게 적응해 나가야 하는지 등에 관한 것이었다. 이 토론은 생산 라인의 규모와 마진 중에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는 전략적 결정이라는 주제에 이를 때까지는 상당히 그럴듯하게 진행됐다.이 회사에 이런 종류의 결정은 매우 어려웠다. 규모 지향적 전략이란 시장점유율에 집중하며 성장을 최우선으로 여긴다는 것을 뜻한다. 반면 수익 지향적 전략이란 주로 수익성있는 사업에 주력하면서 한 사업이 이익을 내지 못할 때는 그 사업의 상당 부분을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기업이 가진 문제는 영업사원들이 가격을 할인하거나 고객과 협상할 때 거의 시간 단위로 이런 결정들을 내린다는 것이었다. 더욱 바람직스럽지 못한 점은 과거 7개월간 IMF 위기로 인해 내부 정책의 상당 부분이 그때 그때 상황에 맞춰 이뤄지는 임기응변식 절차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회사의 모든 사람들이 자기 나름대로 의사 결정을 내리고 있었다.이해할 수 없었던 점은 그 회사 직원들은 기업이 사업상 필요에 따라 서로 다른 외부 환경에 적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매우 자랑스러워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기업의 최고경영자 역시 유연한 전략만으로도 기업을 세계적으로 우수하게 경영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론적으로 이 주장이 맞는다고 인정하더라도 유연한 전략의 문제점은 이런 종류의 전략에는 익숙해지기가 어려우며 전략을 명확히 이해하지 못할 경우 기업이 혼란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게다가 주의깊게 관리되지 않을 경우 아무도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려하지 않으며 결과적으로 그 조직에서 역할과 책임이 불분명하게 된다.예를 들어 A와 B라는 제품 중 어느 것을 생산할지 선택해야 한다고 가정해 보자. 유연한 전략은 A나 B 둘 중의 어떤 것을 선택하든 다른 회사만큼은 만들 수 있으며 두 제품 사이의 생산 라인을 교체하는 비용이 극히 낮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시장은 A나 B 둘 중의 하나를 더 선호한다. 따라서 두가지 중의 하나를 고른다는 것은 어느 정도 위험이 따르게 된다. 문제는 분명히 옳은 결정을 내린 사람들은 성공할 수 있는 반면 유연한 전략을 채택하는 사람은 결코 성공을 거둘 수 없다는 점이다. 유연한 전략을 통해 할 수 있는 일이란 위험을 최소화하는 것일 뿐이다. 현대 경영 환경에서 위험 최소화만으로는 결코 지속적으로 튼튼한 기업을 만들 수가 없다.유연성 자체는 위험 회피(헤징)와는 다르다. 위험 회피는 사업 선택과 시장 위험 최소화를 의미한다. 유연성이란 불확실성을 의미하며 최고경영자의 부적절한 결정을 덮어주는 역할을 한다. 위험 회피는 위험에 대한 노출을 줄인다. 유연성은 사업의 잠재성을 최대한이 아니라 중간 정도로만 유지하게 한다. 이외에도 차이점은 많지만 중요한 점은 유연한 전략은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자원과 자본을 운영하지 않기 때문에 사업 전략이라고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유연한 전략은 자원과 자본을 수동적으로 운영한다.아무도 어려운 결정을 내리거나 실행하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특히 경영진이 내린 결정에 대해 잘못한 경우에만 책임을 묻는 한국과 같은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 결과 유연한 전략은 가장 인기있는 「한국화된」 전략이 됐다. 선택하고 집중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전략」이란 단어가 가진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