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매 경로 급변, 새로운 경쟁자 등장 ... 차별화된 전략으로 대처해야

급격한 변화 속에 있는 국내 보험회사들이 풀어야 할 첫번째 과제는 세계적으로 경쟁 양상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국내에서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파악하고 이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준비를 갖추는 일이다. 전자상거래와 같은 신기술이 등장하고 규제완화가 가속화되며 금융산업의 가치사슬이 급속하게 해체됨에 따라 변화와 도전의 새로운 기회들이 나타나고 있다. 보험회사들은 선진 사례를 배움으로써 이 기회들을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사업 모형을 개발해야 한다. 국내 시장에서는 금융감독위원회가 주도하는 개혁의 틀 속에서 조직 개편 등 신속한 구조조정에 임해야 함은 물론 새로운 고객들의 수요를 충족시키고 IMF 위기에 뒤이은 시장의 역동적인 변화에도 효과적으로 대응해야 한다.전세계 보험산업은 다른 금융 서비스 산업과 마찬가지로 과거 몇년간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이런 변화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보험산업에 대한 진입 장벽이 낮아졌다는 점과 가격 결정에 대한 규제가 완화됐다는 점이다. 새로운 경쟁자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으며 보험 산업의 가치 사슬이 무너짐에 따라 새로운 사업 모형들이 등장하고 있는 점도 특징적이다. 또 전자상거래의 성장은 보험산업에서도 새로운 기회 요소로 대두되고 있다.◆ 규제 완화의 영향보험은 전세계에 걸쳐 언제나 규제가 심한 산업의 하나로 꼽혔다. 그러나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보험산업도 자율화의 과정을 거쳐왔다. 규제 완화는 한편으로 기회가 되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 보험회사에 위협적인 요소가 될 수 있다. 새로운 보험산업 진입자들은 저비용 구조와 가격 파괴를 통해 시장에 파고든다. 기존 보험회사들은 이런 신규 진입자들의 공략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함으로써 시장점유율을 잃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예를 들어 독일의 HUK-코버그는 규제 완화 이후 저가격 경쟁을 주도했다. 알리안츠는 회사 설립 이후 최초로 할인 상품을 내놓으며 HUK-코버그의 저가격 공세에 대응했지만 1997년에 시장점유율은 5% 가량 줄어들었다.시장을 주도해왔던 기존 보험회사들이 새로운 경쟁자들의 등장으로 언제나 시장점유율을 잃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경우 1996년에 보험산업 신규 진입에 대한 규제가 풀렸지만 기존의 일본 보험회사들은 시장점유율에서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외국 보험회사들은 시장점유율을 두배로 늘렸지만 여전히 일본 시장의 5%밖에 점유하지 못하고 있다.일본내 보험회사들은 1997년 가격 규제 완화 이후 서로 다른 전략들을 구사하고 있다. 취리히와 같은 신규 진입자는 보험 가입자를 유치할 때 전화를 주로 이용하는 등 비용이 적게 드는 판매 경로에 주력하며 저가격을 내세우고 있다. 토키오 마린의 경우에는 실질적으로 가격을 올림으로써 성공을 거뒀다. 토키오 마린은 가격을 올린 대신 운전자 자기 상해 보상을 포함하는 등 보험 상품이 포괄하는 서비스 영역을 확대함으로써 고객의 요구를 충족시켰다. 고객이 보험 가입을 통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해야만 가격 경쟁으로 인한 비용 손실을 충당할 수 있는 새로운 상품 개발이 가능하다.물론 상품 혁신 하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하나의 상품 혁신이 장기적으로 경쟁 우위를 제공하기는 어렵다. 새로운 상품이 성공했다 하더라도 다른 회사가 이 신상품을 모방, 유사한 상품을 내놓기가 쉽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심지어 일본의 보험회사들조차 규제 완화 후에 유럽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비용 절감에 주력하고 있는 상황이다.◆ 새로운 사업 모형의 필요성 대두모든 산업에서 새롭고 저렴한 커뮤니케이션 수단과 정보 기술이 등장, 경쟁양상을 변화시키고 있다. 기술 발전에 힘입어 기업들은 상품 개발에서 판매, 운영에 이르기까지 기존의 연결된 산업 가치 사슬을 독립적인 단계들로 분리할 수 있게 됐다.보험회사들은 여러 가지 가치 창출 단계 중에서 어느 부분에 집중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물러날 것인지 선택할 수 있게 됐다. 보험산업 역시 상품 개발, 위험 선택 및 위험 보증, 운영 및 프로세싱, 영업 및 고객 관리, 자산 관리 등 개별적인 작은 사업 영역으로 분리되고 있다.많은 보험회사들이 보험 사업의 모든 업무를 계속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보험회사들은 어떤 업무에 집중하는 대신 어떤 업무는 외부의 다른 전문가에게 위탁(아웃소싱)할 수 있다. 또한 자신들이 집중하고 있는 업무 영역에 대해서는 다른 회사에 돈을 받고 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있다.예를 들어 영국 소매은행인 할리팩스는 커머셜 유니온과 제너럴 엑시던트의 통합사인 CGU라는 보험회사와 제휴를 맺어 서로 도움을 주고 받고 있다. 할리팩스는 보험상품 개발과 지점망을 통한 영업에 주력하며 이 부분에서 CGU의 자문을 얻고 있다. 대신 CGU는 보험 계약과 프로세싱 실행, 보험금 지급 업무에 집중하고 할리팩스는 이런 업무에 대해 자사의 기준만을 제시하고 있다. 할리팩스와 CGU 두 회사는 자산 관리에 대해서는 자신들보다 더 전문가인 모건 스탠리 등의 외부업체에 위탁하고 있다. 이런 제휴를 통해 할리팩스와 CGU는 새로운 보험사업 모델을 창출했다.◆ 전자상거래로 인한 새로운 경쟁 양상전자상거래는 보험 상품을 판매하는 새로운 경로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에서 인터넷을 통한 보험 상품 판매는 인터넷을 통한 증권 거래에 비해 아직 규모는 작지만 앞으로 급격히 증가할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의 경우 많은 이익을 가져다 줄 것으로 예상되는 고객 그룹은 이미 온라인 거래를 시작했다.전자상거래는 고객에 대한 마케팅 활동을 저렴한 비용으로 벌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고객들은 인터넷을 통해 서로 다른 보험회사들이 제공하는 보험 상품의 가격 차이나 보험 상품의 보장 범위 등을 쉽고 투명하게 비교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인터넷의 정보 공유성으로 인해 보험회사들은 가격을 어떻게 책정하고 경쟁사와 차별화되는 상품들을 각각 어떤 고객층에 맞출 것인지 더욱 고민하게 될 것이다.보험 사업의 영역 분할과 신규 경쟁자의 등장으로 인한 경쟁 심화는 기존 보험회사들이 온라인 서비스를 새로 시작하는데 있어서도 주요한 도전이 되고 있다. 전자상거래는 전화를 통한 보험 상품 판매와 마찬가지로 보험설계사라는 전통적인 보험 판매 경로와 경쟁하게 된다. 즉 기존 보험회사들이 다져놓았던 판매 경로를 잠식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변화는 시작됐고 모든 보험회사들이 온라인 판매에 대비해야 한다.◆ 시장의 수요 변화와 금감위의 구조조정한국의 금융감독 당국은 보험산업에 산적해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보험 상품의 가격과 보험산업 신규 진입에 대한 규제를 적극적으로 완화해왔다. 예를들어 내년초부터 자동차 보험에 대해 완전한 가격 자유화가 이뤄진다. 또 올 4월부터 손해 보험회사들도 기업 연금 상품을 다룰 수 있게 됐다.생명보험과 손해보험 사이의 영역 구분이 급격히 무너짐에 따라 생명보험과 손해보험회사간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은행들까지 막강한 지점망을 통해 보험 상품을 판매할 수 있게 되면 보험회사는 더욱 치열한 경쟁 상황을 맞게 된다. 몇몇 국가의 경우 은행들은 판매 경로에서 보험회사에 비해 30~50%의 비용 우위를 보이고 있다.가격과 사업 영역에 대한 규제 완화는 전통적인 보험회사들과 신규 참여자들 사이에 경쟁 심화를 의미한다. 경쟁 심화는 마진폭이 줄어들 수도 있다는 것을 뜻한다. 고객들은 또한 투자 상품에 대한 수익률을 더욱 적극적으로 비교하게 될 것이다. 고객들의 이런 비교로 인해 세계적인 자산 관리회사들은 저축 상품에 대한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게 되고 손해보험회사들도 가격 결정 정책에서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일련의 규제 완화와 도전이 경쟁력 강화에 필요한 역량을 구축하고 있는 보험회사들에는 오히려 엄청난 사업 기회를 제공한다.IMF 위기 이후 보험 영업과 상품 구성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상품면에서는 사망시 보험금을 지급해주는 보장성 생명보험 상품 판매가 1997년에 14% 성장한데 이어 지난해에는 18% 성장했다. 노후설계와 개인연금 등 순수한 생존보험의 시장점유율은 1997년 30%에서 지난해에는 사상 최저 수준인 21%로 하락했다.손해보험 시장에서도 상당한 변화가 일어났다. 예를 들어 3년 만기시에 납입 보험료를 되돌려 받는 장기 보험 상품의 시장점유율이 1997년 37%에서 지난해에는 40%로 상승했다. 이런 상황에서 상품 혁신은 경쟁 우위 확보에 핵심적인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금융감독위원회는 은행부문의 구조조정에 이어 보험산업의 구조조정에도 착수하고 있다. 부도 위기에 처했던 4개 보험회사가 국내의 선도 4개 보험회사에 의해 각각 인수됐으며 대한생명은 매각 협상 중에 있다. 7개 생명보험회사와 2개 손해보험회사로 구성된 9개 중소 보험회사들은 금감위와 합의한 내용에 따라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구조조정으로 누가 이득을 볼 것인가. 외국 보험회사들과 몇몇 재벌 계열사들은 매각 대상으로 시장에 나와있는 보험회사를 인수할 것인지 여부를 저울질하며 실제 인수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독일의 선도 보험사인 알리안츠는 이미 제일생명보험을 인수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치에 착수했다. LG와 현대는 생명보험 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준비를 마치고 시기와 대상을 선정하기 위한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개별적인 매각 협상이 어떻게 매듭지어지든 금감위가 주도하는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통해 국내 보험시장에 역량있는 새로운 경쟁자들이 부상할 것은 틀림없다.국내와 세계시장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변화 속에서 한국 보험회사들의 미래는 어떻게 전개될까. 모든 보험사들이 승자로 남지는 않을 것이다. 변화 속에서 살아 남기 위해 보험회사는 스스로를 다른 경쟁사와 차별화하고 과거와 다른 모습을 보이기 위해 분명한 선택을 내려야 한다.가치 사슬이 해체되고 새로운 경쟁자가 부상하고 있는 가운데 어느 부문을 주력 사업으로 선정할 것이며 또 어떻게 집중할 것인가. 어느 고객군에 어떤 상품으로, 어떤 유통 경로를 통해 접근할 것인가. 상품 개발과 판매, 자산 운용, 보험금 지급 등 보험산업의 여러가지 가치 사슬 중에서 어느 사업 부문에 위치할 것인가. 외국 보험회사들의 진출에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외국 보험회사들은 과연 세계적인 역량을 전수해줄 수 있는 파트너인가 아니면 감당하기 힘든 경쟁자일 뿐인가. 또는 파트너인 동시에 경쟁자인가. 분명한 것은 어제의 사업 모델을 그대로 고수하는 보험회사는 패배하고 말 것이란 점이다. 승리는 힘들지만 적극적인 선택들을 통해 명확하게 차별화된 사업모형을 개발하는 보험회사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