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유럽·아시아 분산 투자, 리스크 줄여 통화위기에도 흑자 실적

도레이(東レ)가 6월14일 한국섬유업체인 (주)새한(제일합섬 전신)과 폴리에스테르필름 및 장섬유를 제조판매하는 합작회사를 올 가을에 설립키로 합의했다. 도레이와 새한은 각각 60%, 40%를 출자한다. 도레이의 투자규모는 1백50억엔선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합작회사는 새한의 제1공장 일부와 제2공장 전부를 인수한다. 이 회사는 연간 폴리에스테르필름 9만t, 폴리에스테르장섬유 범용품 5만t, 부직포 범용품 2만4천t 생산능력을 갖춘다. 2000년도 매출목표는 4백50억엔.도레이는 이번 합작으로 폴리에스테르필름사업의 생산거점을 세계 6개국으로 확대했다. 연산 21만t 규모인 현생산능력이 30만t으로 늘어난다. 세계 최대인 일본데이닌(帝人)과 미국 듀퐁간 연합과 맞먹는 수준에 이른다.이번 합작으로 도레이측은 해외진출확대 전략을 실현할 수 있게 됐다. 새한측은 아시아위기이후 나빠진 재무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두 회사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이다.한국투자뿐 아니다. 중국현지에도 올해안에 합작회사를 설립한다. 강서성의 중국 최대 폴리에스테르메이커인 의화집단공사와 폴리에스테르생산판매 합작회사를 설립키로 했다. 합작회사는 의화집단공사의 연산6천t 규모 공장을 인수한다.도레이가 세계화전략을 밀어붙이고 있다. 올해 프랑스 폴리에스테르필름공장과 말레이시아 공장, 태국 장섬유공장을 증설한다. 미국 탄소섬유공장과 체코 폴리에스테르장섬유직물공장도 신설한다. 지난해에는 이탈리아 인공피혁공장을 증설하고 말레이시아 폴리에스테르필름공장을 신설했다. 세계적인 불황속에서 97, 98년도에 연결베이스로 1천3백억엔 이상의 설비투자를 했다. 「지금이야말로 아시아」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동남아투자를 확대하고 있다.도레이의 전략은 미국 유럽식이 아니다. 그렇다고 일본식도 아니다. 이른바 자기식 세계화다. 도레이류는 「축이 흔들리지 않는 경영」이다. 일본은 물론 미국 유럽 아시아에 생산거점을 분산, 상품을 융통하는 「글로벌 전략」이다. 이를 통해 특정지역의 경기변동에 따른 리스크를 분산시키는 것이다. 경기와 관계없이 일정수준의 연구비를 투입한다. 사업의 싹을 자르지 않기 위한 것이다. 신규채용도 일정수준을 유지한다.도레이식 경영은 현재로서는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수요가 부진한 아시아에서도 도레이의 공장들은 풀가동중이다. 인도네시아의 통화폭락을 오히려 기회로 활용, 현지법인의 재무구조를 개선했다. 타이 바트화의 폭락에 이은 인도네시아 루피아화의 연쇄폭락으로 일본의 현지은행 종합상사들이 결정적인 타격을 받았다.그러나 도레이는 달랐다. 통화위기가 역풍이 아니라 바로 순풍이었다. 인도네시아내 그룹 11개 기업이 안고 있던 총액 2억달러의 차입금이 루피아폭락을 계기로 오히려 3분의1로 줄었다. 94년의 증설투자로 발생한 금리부담으로 95, 96년도에 적자를 낸 ISTEM(인도네시아 합섬직물제조소)은 예정보다 3년이 빠른 97년도에 흑자로 전환됐다. 도레이가 활용한 통화거래는 장래의 외환을 거래하는 권리를 은행으로부터 구입하는 옵션거래였다. 96년4월부터 3개월 앞의 루피아를 팔고 달러를 사는 옵션거래를 시작했다. 화교계의 거래선으로부터 『루피아가 절하될 가능성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루피아가 달러당 연 30% 이상 하락했을 때만 권리가 유효하다」는 조건을 붙여 옵션료를 차입잔고에 대해 연 0.5%로 결정했다. 통화위기가 일어나면서 「보험」은 황금알로 변했다. 달러를 시장환율로 팔고 옵션거래 레이트로 다시 사들이는 것만으로 엄청난 환차익이 생겼다.그후 은행과 장래의 외환거래를 약속하는 「외환예약」으로 대체, 루피아하락으로 얻은 차익으로 차입금을 갚았다. 인도네시아 통화위기 때 도레이만큼 옵션거래를 잘 활용한 기업은 없었다. ISTEM의 마스다사장은 『루피아화의 폭락은 도레이로서는 상상도 못한 가미가제(神風)가 됐다』고 설명한다.인도네시아에서 뿐만 아니다. 태국에서도 발빠르게 대처했다. 외환예약 등의 형태로 헤지를 시도했다. 덕택에 태국 바트화 폭락에도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았다. 실적도 괜찮은 편이다. 불황이 심해지면서 매출과 이익이 소폭 줄어들기는 했다. 그러나 전후 최악의 불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최선의 실적을 올린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도레이식 경영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일까. 과거의 경험을 통해 축적한 노하우를 우선 꼽을 수 있다. 도레이는 20년전 인도네시아에서 혼쭐이 났었다. 78년에 루피아화가 51%나 평가절하되면서 엄청난 환차손이 발생했다. 현지법인이 경영난에 빠졌었다. 『통화와 정국이 불안한 나라에서는 차입금과 외환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는 철칙을 이때 배웠다』는게 마스다사장의 설명이다. 동남아에서 쌓아온 20년 이상의 경험과 노하우가 빛을 보고 있는 것이다.도레이가 동남아 통화위기에 영향을 적게 받을 수 있었던 또 한가지 요인은 글로벌 전략. 도레이는 품목별 생산지역을 일본 동남아 유럽 등으로 전문화, 폴리에스테르 직물을 생산하고 있다. 한 지역에서 불황이 발생하더라도 다른 지역에 상품을 공급, 직격탄을 피하도록 한 것이다.도레이가 본업인 섬유쪽에만 매달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전자재료 의약품등에도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히라이 가쓰히코사장은 『시장이 성숙된 섬유와 수지에 집중투자하더라도 매출이 3조엔에 이를 수 없다. 사내의 기술을 활용, 성장산업에 참여한다』고 강조한다.다각화사업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것은 전자재료사업. 액정디스플레이를 컬러화하는데 필수적인 필터가 그 주력제품이다. 도레이는 기존의 크롬대신 내열성수지를 사용, 제조코스트를 크게 절감시켰다. 독보적인 수지가공기술을 무기로 신규참여 3년여만에 점유율을 18%선으로까지 끌어올렸다. 핵심사업의 선택과 투자의 집중전략이 적중하고 있는 것이다.의약품도 또다른 다각화사업의 하나다. 현재 2가지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그러나 2005년부터는 대형신약도 판매할 방침이다.◆ 섬유산업 세계정상 탈환 시도도레이는 일본섬유회사 가운데 넘버 원이다. 그러나 미국이나 유럽기업들과 경쟁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다. 미국 유럽 업체들은 주주자본이익률(ROE)이 10% 이상이다. 20%에 이르는 기업도 있다. 이에 비해 도레이는 5%선에 불과하다. 따라서 사업내용이 다른 의약품이나 전자재료분야에서 손을 떼고 섬유 수지부문에 집중하는게 바람직하다고 관계자들은 지적하고 있다.그러나 도레이측의 상황은 판이하다. 마에다 회장은『섬유는 생활필수품으로 불황이 없다. 고객의 신뢰를 쌓은 기업은 불황이 두렵지 않다』고 밝힌다. 그는 또 『다각화사업의 성공으로 실적이 더욱 나아져 도레이류 경영이 완전히 평가받도록 하겠다』고 강조한다. 히라이 사장은 『전자재료 등 성장산업에도 적극 투자, 1조엔인 연결매출을 2배, 3배로 늘리겠다』고 밝힌다.코스트 경쟁력을 무기로 국내시장의 정상을 확고히 구축한 도레이가 독보적인 세계화전략 등으로 21세기초에 미 듀퐁을 누르고 섬유산업 세계정상 탈환을 시도하고 있다. 불황으로 일본기업들이 외면하고 있는 다각화 사업확대의 꿈을 키워가고 있는 도레이. 일본경영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