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할테면 해봐라. 회사의 필요로 유상증자를 하는데 반대하는 이유가 뭔가.』(SK텔레콤) 『최대주주의 횡포다. 소액주주의 이익은 왜 고려하지 않는가.』(타이거 펀드)유상증자문제로 SK텔레콤과 타이거펀드간에 벌어지고 있는 싸움이 심상치않다. 이미 법정싸움으로 번졌다. 타이거펀드는 손길승SK그룹회장을 SK텔레콤 이사회에서 몰아내겠다고 특별주총까지 소집해놨다.SK텔레콤에 대한 외국인 지분한도가 확대된 첫날인 지난 1일 SK측이 타이거펀드로부터 지분을 넘겨받았다는 소문이 돌면서 양측이 화해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SK그룹이 타이거펀드가 보유한 SK텔레콤 주식 15만주(2.7%)를 인수하기는 했다. 그러나 SK측은 브로커가 중계한 물량을 원소유주가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사들였을 뿐이었다. SK와 타이거펀드의 대립은 여전히 첨예하고 양측은 전혀 양보할 태세가 아니다.이 문제가 재계의 관심을 끄는 것은 이러저러한 집단끼리 싸움을 하고 있다는데 있지 않다. 경영을 책임지는 최대주주와 다른 대주주간의 이해충돌이라는 점이 주목거리다. 그리고 이게 비단 SK만의 문제가 아니다. 금융시장이 개방되고, 적대적 M&A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모든 회사가 자유롭지 못한 상태다.우선 큰 논쟁은 최대주주의 경영권이 먼저냐, 소액주주의 권리보호가 먼저냐 하는 원론적인데서 출발한다. SK텔레콤은 회사의 경영에 필요한 돈을 만들려 하는데 이것을 반대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특히 2대 주주와 3대 주주인 한국통신과 타이거펀드가 반기를 든 것은 대주주로서의 책임을 방기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따라서 최대주주로서 법에 정한 권리를 행사하겠다는 방침을 강하게 밝히고 있다.반면 타이거펀드 등의 주장은 다르다. 유상증자를 실시할 경우 주가가 하락할 게 뻔해 소액주주의 손해가 커진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소액주주를 보호하기 위해선 주가를 높여야 하는데 액면분할은 못하겠다고 하면서 증자는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추진하겠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양측의 논리는 모두 일견 일리가 있다. 그러나 상대방의 꿍꿍이는 다른데 있다고 서로 비난한다.SK텔레콤이 주장하는 타이거펀드의 속내는 이렇다. 타이거펀드가 자금난에 몰리면서 현찰을 확보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졌다는 것. 따라서 SK텔레콤의 외국인 지분한도 확대가 실시되는 7월1일을 기점으로 주식을 내다팔려 했는데 유상증자라는 복병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비싼 값에 주식을 팔려는 타이거펀드로서는 입에 거품을 물고 증자에 반대할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꿍꿍이 다른데 있다’ 공방사실 타이거펀드의 자금난은 심각한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타이거펀드가 지난해초 운영하던 자금 규모는 2백억달러 규모다. 그러나 작년에 수익을 거의 내지 못했다. 수익률이 떨어지면서 펀드 가입자들의 환매 요구가 올초부터 들어오기 시작했다. 돈이 자꾸 빠져나가면서 자금 규모는 현재 1백20억달러선으로 졸아들었다. 그러나 환매 요구는 멈추지 않고 있어 자금 압박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는 형편이다.게다가 자금규모가 줄어들면서 SK텔레콤에 대한 편입비율이 10%선을 넘었다. 현재 타이거 펀드가 보유하고 있는 SK텔레콤의 지분은 14%선. 최근 주가가 급상승하면서 돈으로 따져 12억달러를 훨씬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펀드 운용에서 한 종목에 5% 이상을 편입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위험도가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타이거펀드로서는 이래저래 SK텔레콤 지분을 팔 수밖에 없는 절실한 상황이다.SK텔레콤은 타이거펀드가 액면분할을 요구하는 것도 이같은 맥락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주가를 올려 팔아치우겠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얘기다. 따라서 특정주주의 이익만을 위해 최대주주로서의 권리를 포기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강조하고 있다.반면 타이거펀드는 SK텔레콤이 지분확대를 겨냥해 소액주주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주가가 2백만원에 육박하는 SK텔레콤이 증자를 할 경우 한국통신 등은 실권을 할 수밖에 없고 이를 인수해 지분을 늘리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는 것. 액면분할에는 응하지 않고 유상증자만을 고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강조한다.SK텔레콤은 그러나 액면분할은 타이거펀드만을 위한 것으로 지금 할 단계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또 지분을 확대하지 않아도 경영권을 지키는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현재 25%의 지분을 갖고 있어 3~4%정도의 우호지분의 도움으로 충분히 경영권을 방어하고 있다는 것. 만일 지분확보가 필요하다면 장내에서 사도 별 부담이 안되는데 굳이 법정소송까지 벌이면서 무리를 하겠냐고 반박한다.양측의 논리는 나름대로 근거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최대주주의 경영권 행사냐 아니면 소액주주의 권리보호냐하는 명분싸움의 승자를 가리기가 원천적으로 힘들다는 것.SK텔레콤은 최대주주로서 회사의 경영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할 의무가 있다. 경쟁업체들은 유상증자로 실탄을 마련해 전열을 정비하는데 어떻게 두손을 놓고 있을 수 있느냐는 항변이다. 특히 회사의 경영보다는 자신의 이익만을 쫓는 무책임한 대주주에게 더이상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내비치고 있다. 소액주주의 손실을 막기 위해 증자에 참여하지 못하는 투자자에게 신주인수권의 매매를 허용하기까지 했는데 소액주주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우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입장이다.◆ 투명경영 위해 불신 요소 없애야타이거펀드나 참여연대는 나름대로 SK텔레콤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있다. 대주주가 소액주주의 이해를 최우선으로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양측의 싸움은 법정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다. 손길승 SK그룹회장의 SK텔레콤 이사해임을 위한 특별주총까지 소집돼 있는 형편이다. 양측 다 할테면 해보라는 배짱이다.전문가들은 이같은 양측의 대립을 우려섞인 눈으로 보고 있다. 단지 SK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그렇다. 국내에 외국인 지분이 50%를 육박하는 업체는 수도 없이 많다. 외국인들의 주식 매입 한도가 없어지면서 앞으로 경영권을 위협받는 사례는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특히 미국과 한국의 기업문화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한국이나 일본 등 아시아권에는 회사를 위한 자본주의(Capitalism for Company)라는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미국은 주주를 위한 자본주의(Capitalism for Capita-list)의 성격이 강하다. 이같은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기란 쉽지 않다.현대전자의 경우 미국에서 하드 디스크 드라이버 제조업체를 매입했다가 1년만에 상장을 폐지시켜버린 예가 있다. 소액주주들의 등쌀에 도저히 못견디겠다며 다른 주주들의 주식을 웃돈주고 사버렸다. 그리고 3년후 흑자로 반전시켰다. 한국적 기업 풍토는 이렇게 다르다.게다가 이번에 SK를 물고 늘어지는 타이거펀드는 헤지펀드다. 이들의 목표는 오직 수익률 상승이다. 이익지상주의를 쫓는 집단이 목소리를 높이면 최대주주가 경영권을 정상적으로 행사하는 것은 사실상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다.결국 이 문제는 이성적으로 풀어나갈 수밖에 없다. 양측이 서로의 논리적 허점을 찾는데 골몰해서는 안된다. 사실 SK가 공격을 받는 것은 SK만의 문제 때문이 아니다. 국내 기업들이 지금까지 불투명하게, 대주주의 독단으로 경영을 해온데 대한 불신이 누적된 결과다.결국 국제적 기준에 맞게, 그리고 투명하게 경영을 한다면 이같은 논란은 상당부분 잠잠해질 수밖에 없다. 소액주주의 보호가 대세라고 한다면 최대주주의 경영권 행사는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 원칙이다. 한국기업들도 소액주주 보호에 최대한 노력을 해야만 한다. 국제사회에서 요구하는 것이 그렇기 때문이다. 투명한 경영을 통해 불신의 요소를 없애는 것도 중요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