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아케공장 분사, 코스트 삭감으로 마지막 승부 ... 한국 조선 경쟁력에 뒤져

「조선」이라는 간판을 내릴 것인가 말것인가. 10년전 경영위기에서 부활한 히타치(日立)조선이 또다시 벼랑끝에 몰리고 있다. 한국의 추격에 밀려 간판격인 대형탱커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고말았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지난 3월5일 주력인 아리아케(有明)공장(구마모토현 소재)을 분사화하기로 결정했다. 마지막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10월1일자로 아리아케공장을 분리, 설립되는 규슈 히타치조선(가칭)이 어떤 형태로 탄생할 것인가. 『적자를 감내해 가면서 배를 계속해서 만들 수는 없다. 이익을 낼 수 없다면 조선에서 손을 뗀다. 만약 조선을 계속한다면 이익을 낼 수 있는 수준까지 코스트를 떨어뜨린다』 미나미 이소(南維三)사장의 의지는 이처럼 분명하다.이같은 사장의 의향을 수용, 조선부문은 현재의 선가에서 이익을 낼 수 있는 코스트 삭감에 나서고 있다. 6월15일 열린 간부회의에서는 그 검토결과가 보고됐다. 회사측은 조달부재 제조공정 생산관리시스템 등의 업무개선으로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미나미사장은 이날 회의후 『아리아케분사는 단순히 공장만의 얘기가 아니다. 조선사업 전체의 구조를 어떻게 변화시키느냐 하는 문제다. 분사로 탄생하는 신회사는 조선전업으로 살아남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임금도 물론 중요 검토 과제의 하나다』라고 밝혔다.히타치조선이 이처럼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게 된 것은 심각한 실적부진에 따른 것이다. 99년3월기의 연결 최종손익은 2백72억엔의 적자. 2년 연속결손을 냈다. 그 원인은 크게 2가지다. 해외플랜트 실패와 매출의 25%선에 이르는 조선사업의 수익력 부진이 바로 그것이다.97년3월기까지 1백억엔 이상의 영업이익을 올려온 조선사업. 그러나 98년3월기에 11억엔의 적자로 전락했다. 99년3월기에는 간신히 1억엔의 흑자를 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적자체질에서 벗어나질 못했다.히타치조선이 분사경영을 시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조선불황에다 급속한 엔고까지 겹쳐 경영위기에 빠졌던 85년부터 87년 사이에 1백개 가까운 신회사를 설립했다. 감원으로 발생한 1만1천명의 인력을 받아들이기 위한 조치였다. 히타치는 당시 1만7천명이었던 본사 사원을 6천명으로 대폭 줄였다. 이때뿐만이 아니다. 실적이 회복된 90년대에 들어서도 공장이나 공장내 생산공정의 일부를 별도 회사화했다. 분사화과정에서 경영자와 노조측은 3가지 원칙에 합의했다.△고용조건(임금체계)은 본사와 동일하게 한다.△조합원으로서의 신분을 보장한다.△미래전망을 찾아낸다.는게 바로 그것이다.이같은 분사화전략은 한마디로 성공적이었다. 97년까지 해마다 최고익을 갱신하는 등 실적이 완전 회복됐다. 사원들의 의식구조 개혁에도 크게 기여했다. 아리아케공장은 그 대표적인 성공사례. 아리아케공장은 제조공정별로 분사화된 4개의 자회사가 운영을 맡았다. 니치조 아리아케설계는 선박의 설계 디자인을, 아리아케엔지니어링은 철판절단을, 아리아케제작소는 철판접합블록화를 각각 맡았다. 블록에 파이프 등을 배관하는 공정은 니치조간코가 담당했다. 본사는 도크내에서 블록을 접합, 선체를 조립하고 비품을 장착하는 업무만을 책임졌다. 따라서 1천7백여명 가운데 본사에 소속된 사원은 고작 1백80명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분사된 자회사 소속이었다.히타치는 본사의 부과장급을 자회사의 사장으로 임명했다. 사장에 회사자산 손익 등을 관리, 이익을 낼 책임을 지웠다. 사장은 본사가 수주한 선가에 따라 각사에 할당된 매출목표를 달성해야 했다.히타치는 자회사의 실적을 해마다 순위를 매겨 공표했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사장회」의 서열은 실적 순위에 따른다. 우수한 실적을 올린 사장에게는 승진의 혜택이 주어진다. 분사사장 가운데 5명이 임원으로 승진했다.자회사의 적자는 본사가 보전해준다. 따라서 사원들의 임금이 깎이지 않았다. 장부상으로만 독립채산제를 실시한 것이다.◆ 한국기업 저가공세, 대형탱커 ‘비틀’이처럼 독특한 분사전략으로 완전부활의 조짐을 보여온 히타치조선이 왜 갑자기 비틀거리기 시작했는가. 그것은 바로 코스트 경쟁력을 앞세운 한국의 맹반격 때문이다. 히타치조선의 간판인 20 만t 이상 대형탱커(VLCC)는 한국과 일본의 과점시장. 95년 전후에는 일본이 코스트경쟁에서 2∼3% 정도 앞섰다. 당시 일본의 임금은 한국의 2배 정도였다. 일본은 2배나 높은 생산성으로 이를 보완했다.그러나 달러당 7백원대였던 환율이 98년에는 1천원대로 떨어졌다. 이뿐만 아니다. 한국의 생산성이 일본의 70∼80%선으로까지 높아졌다. 이로 인해 지난 1년 사이에 한국의 경쟁력이 일본에 비해 10 ∼15% 정도 앞섰다는게 관계자들의 지적이다.이를 계기로 한국기업들이 저가격공세를 펼치고 나왔다. 90년대초 척당 1억달러(1백20억엔)선이었던 배 가격이 98년에는 7천만달러(85억엔)대로 급락했다. 일본 조선회사들의 평균손익분기점은 약 1백억엔. 최근 1년간 세계VLCC수요의 대부분을 한국업체들이 수주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같은 사정 때문이다.아리아케공장은 VLCC건조에서는 미쓰비시중공업의 나가사키공장과 더불어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그렇지만 현재의 선가로는 수주가 불가능하다는게 미나미사장의 설명이다. 따라서 남아 있는 수주물량이 바닥나는 1년반 후에는 일감이 없어진다. 미나미사장이 아리아케공장의 완전한 분사화를 계기로 조선사업의 대대적인 코스트다운을 선언한 것은 바로 이같은 사정에 따른 것이다.그러나 척당 1백억엔인 손익분기점을 80억엔선으로 낮추는 것은 간단치 않다. 임금에 손을 대지 않고 코스트를 삭감하기는 쉽지 않다. 가메이 일본조선공업회장(가와사키중공업사장)은 6월15일 정례회견에서 『앞으로 조선업에서 손을 떼는 기업이 생기지 않고는 수급개선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히타치조선은 아리아케공장의 분사를 통한 조선부문의 독립화로 부활을 시도하고 있다. 2차대전후 불과 11년만에 세계 정상에 오른 이래 줄곧 선두를 지켜온 일본 조선업. 그러나 현재는 조선왕국의 모습이 아니다. 한마디로 세계 정상이 바람앞의 등불격이다.「아리아케 분사」는 조선왕국 일본의 존망을 점칠 수 있는 시금석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