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기업이 되는 비결은 특별한게 아니다. 사소한 것이라도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배려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으면 된다. 대표적인게 심부름 서비스다. 심부름 서비스는 기업이 직원들에게 사소한 배려를 함으로써 일거양득의 이익을 얻는 경우다. 직원들의 충성심을 높일 뿐 아니라 비용절감의 효과까지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다 보면 회사의 업무뿐 아니라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써야 하는 시간이 적지 않다. 집을 사거나 팔 때, 금융상품에 가입할 때, 자동차를 사고 팔 때 혹은 교통사고가 났을 때 등 업무 외에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할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실제 일을 처리하는데는 사소한 일일 수 있지만 개인의 입장에서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것들이다.◆ 충성심 끌어내는 힘은 바로 ‘신뢰’위대한 기업들은 이런 일들을 쉽게 처리할 수 있도록 회사에서 심부름 서비스를 제공한다. 개인은 사소한 일에 신경 쓰지 않아 좋고 회사 입장에서는 직원들이 일에만 전념할 수 있게 돼 이익이다. 심부름 서비스는 금전적으로도 이익이다. 매달 수백만원씩 월급을 주면서 고용한 직원의 황금같은 시간을 허비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결혼한 사람들에게 육아문제만큼 심각한게 없다. 통계소프트웨어로 유명한 SAS와 같은 회사는 최고급 탁아시설을 사내에 갖춰 놓고 저렴한 비용으로 제공하고 있다. 아이보는 일에 걱정하지 않고 일에 전념할 수 있는 것이다. 이직이 많은 소프트웨어회사이지만 이 회사의 이직률은 4%도 안된다.설계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오토데스크에는 프로그래머나 그래픽디자이너 등 컴퓨터로 일하는 직원이 대다수다. 이런 직종의 사람들은 하루종일 모니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는데서 오는 스트레스가 보통이 아니다. 오토데스크는 직원들의 이런 스트레스를 풀어주기 위해 요가강좌를 열고 있다. 게다가 4년마다 6주간 안식휴가까지 제공한다.이런 식의 복리후생은 종업원들로 하여금 회사가 인간적이란 느낌이 들게 한다. 이렇게 되면 직원들은 회사를 신뢰하는 가운데 일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된다. 사실 실력있고 유능한 사람들은 거대한 기계의 부속품이 되길 원하지 않는다. 삶을 통해 나름대로 의미를 찾고 싶어 한다. 일은 아무리 많아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능력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일벌레」들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들이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해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스포츠장비를 만드는 업체인 미국의 K2(워싱턴주 바손아일랜드 소재)란 회사의 상품관리 이사 플로이드 윌리엄스씨는 정말로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는 아내보다 회사가 더 좋다는 말을 하는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부인은 바꿔도 회사를 바꾸지는 않겠단다.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는 『K2야 나야? 하나를 선택해』라고 따지는 부인에게 『K2를 선택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이토록 일에 열정적인 사람을 붙잡아 두는 힘은 무엇일까. 바로 신뢰다. 언뜻 신뢰는 매우 추상적이라는 느낌이 들지만 사실은 대단히 구체적이고 시스템적이다. 기업경영에 신뢰를 시스템적으로 적용하자고 주장한 사람은 미국의 로버트 레버링이란 사람이다. 그는 미국의 한 시사주간지의 기자로 일하면서 많은 기업을 접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잘 나가는 기업에는 뭔가 다른 특징이 있다는 점을 알아내고 밀튼 모스코위츠와 함께 연구소(Great Place to Work Institute)를 차려 본격적인 조사작업에 들어갔다. 미국 전역을 돌며 각 기업의 임직원들과 심층적인 인터뷰및 설문조사를 했다. 81년부터 올해까지 로버트 레버링씨의 설문에 응한 사람의 수만해도 수백만명이 넘는다. 최근에는 미국뿐 아니라 캐나다 브라질 등 전세계로 조사영역을 넓혔다. 미국기업의 조사결과는 지난해부터 <일하기 좋은 1백대 최우수기업(100 Best Companies to Work for) designtimesp=18729>이란 제목으로 포천지에 실리고 있다.레버링씨는 경영진과 직원 사이에 신뢰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우선 경영진이 믿음직한 태도와 함께 경영능력과 성실성을 보여줘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한 직원이 경영진으로부터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받는 것도 중요하다. 이와 함께 급여나 승진 등의 분야에서 학연 지연 등에 좌우되지 않고 공정한 대우를 받는 것도 중요한 요인이다.◆ 경영진의 자세부터 다르다신뢰가 형성된 기업들은 경영진의 직원들에 대한 자세부터 다르다. 포천 1백대 기업에 뽑힌 얼라이드시그널의 로렌스 보시디 회장은 매달 의료보험이나 다양성 등에 대한 주제로 2페이지 분량의 글을 모든 직원들에게 보내 친밀감을 유지한다. 직원들과 수시로 접촉해 대화를 나눈다. 이를 위해 직원들을 컴퓨터로 무작위로 선출해 아침식사를 함께 한다. 이런 대화를 통해 현장에서 체득한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흡수하는 효과가 있다. 68위에 선정된 인그램마이크로의 제리 스테드회장은 수신자부담 전화를 24시간 열어놓고 있다. 물론 회장이 직접 전화를 받는다. 회장의 집 전화번호 역시 인그램 마이크로의 직원들에게 배포돼 있다. 직원들은 언제든지 회장과 통화할 수 있다. 사실 어떤 기업이건 일반 직원들이 회장이나 사장을 대하기 어려워한다. 위대한 기업들은 평사원이라도 경영진과 의견을 자유롭게 주고 받을 수 있는 메커니즘을 만들어 놓은게 다른 점이다.축하문화도 위대한 기업이 갖고 있는 특징이다. 그레이트 플레인즈란 회사는 매년 파이어니어데이를 열어 종업원들의 성대한 잔치를 통해 업무성과 달성을 적극적으로 격려하며 위로한다.좋은 기업을 이야기할 때 「미래 가치」 혹은 「수익성」 등의 기준으로 이야기한다. 피고용인의 입장에서는 급여 수준이나 복리후생을 따지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요인은 함께 일하는 사람과 그 회사에 투자한 주주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가이다.직원들이 경영진을 신뢰하며 동료들과 팀워크를 이뤄 일을 할 때 나오는 생산성은 대단한 것이다. 실제로 신뢰지수가 높게 나온 기업들의 경영성과도 좋다. 자기자본수익률(ROI)이나 주당순이익률(EPS)이 S&P5백대기업보다 2~3배 높다. 행복한 직원들이 만들어가는 회사의 주식을 산 투자가도 행복해지는 것이다.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인류는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기술의 발달로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고, 의사결정을 신속하게 내릴 수 있도록 하며, 시장의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마치 정보통신시스템만 잘 갖추면 모든 게 잘 될 것처럼 보인다. 천만의 말씀이다. 아무리 뛰어난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도 시스템을 움직이는 사람의 마음과 행동이 따라 주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수십억원, 수백억원 들여 구축한 정보시스템을 움직이는 것은 바로 종업원이라 불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충성심을 발휘할 때에만 고가의 정보시스템이 제값 이상의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런데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충성심을 끌어내는 근원적인 힘은 바로 신뢰에 있다. 정보통신기술로 열리고 있는 새로운 시대는 바로 신뢰의 시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