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다(Fast)」는 이름을 가진 회사가 있다면 성장 속도도 이름에 걸맞게 빠를까. 지난 97년 패스트서치앤드트랜스퍼라는 인터넷 회사는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단 두 사람이 만들었다. 지금 이 회사는 종업원 60명에 시장가치가 6억달러에 이르고 미국의 「잉크토미」에 대적하는 세계 최고속의 검색엔진을 곧 내놓을 계획이다. 관계자들은 이 회사가 노르웨이의 최고가치 기업으로 발돋움하고 있다며 자랑이 대단하다. 그러나 이 회사의 에스펜 브로딘 회장은 오히려 패스트의 성장을 억제시키려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미국지사가 세일즈 인력을 채용하려는 것도 허용하지 않았다.경매가 책 판매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비아냥이 나올 정도로 사업확장 속도가 눈부신 아마존처럼 잘 경영되는 인터넷 회사들을 본다면 브로딘이 조바심을 내는 이유도 이해가 가능하다. 빠른 성장이 문제가 되는 것은 인터넷 회사들의 경우만은 아니다. 보잉은 예기치 않은 제트기 수요에 대처하지 못하자 곤경에 몰렸다. 미국의 거대 서비스업체 센던트도 끝간데를 모르고 성장하고 있지만 역시 큰 문제에 봉착하고 있다. 「패스트」란 별명으로 유명한 에디 크러치필드가 운영하는 미국 최대의 합병위주 은행 퍼스트유니언은 최근 당분간 더 이상의 합병을 시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이럼에도 거대 기업의 많은 최고경영자들은 브로딘이 골칫거리로 생각하는 것을 겪기를 원한다. 필사적으로 성장을 추구하는 기업은 아주 많다. 90년대 초 미국의 최고경영자들은 순전히 비용 절감만을 통해 돈을 벌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사업을 크게 확장하는 것이 사장들의 임무라고 여겨지고 있다. 그렇지 못한 경우 대개 「밥줄」을 떼이게 된다. 컴팩의 에커드 피퍼는 올해 쫓겨났다. 지난달 휴렛패커드는 루선트를 쫓아내고 캘리 피오리나를 영입했다. 3M이나 프록터앤드갬블, 이스트만코닥, 모토롤라 등 예전에 잘나가던 다른 기업의 사장들도 언제 잘릴지 전전긍긍하고 있다.유럽과 일본회사들도 곧 이와 비슷한 처지라는 것을 깨닫을 것이다. 보스턴컨설팅의 내부 보고에 따르면 지난 5년 동안 이들 대부분이 다운사이징 등을 통해 주주들의 배당을 늘리려고 노력해 왔다. 그러나 결국 비용은 줄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그래서 기업들은 매출증가에 초점을 맞추게 될 것이다.성장실패에 따른 대가는 가혹하다. 미국 워싱턴의 코퍼레이트이그제큐티브보드(CEB)라는 컨설팅그룹은 55년부터 97년까지 포천 50대기업에 선정된 기업들의 실적을 연구했다. 5%를 제외한 모든 업체들이 장기적 매출증가율이 4% 이상 떨어졌을 때 성장이 멈췄다.(도표참조) 도표가 보여주듯 이런 성장정지는 주가의 무지막지한 하락으로 이어졌고 많은 기업이 이를 만회하지 못했다.왜 성장이 멈췄을까. 이들 회사의 보스들은 그것을 운명의 장난이나 오일쇼크, 경기불황, 정부규제 등의 탓으로 돌리려 할 것이다. 그러나 CEB에 따르면 성장정지 원인 중 불가항력적 요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17%에 지나지 않았다. 나머지는 회사의 전략이나 조직에 기인한 것이었다. 가장 일반적 문제점은 자만심이었다. 76년 마켓셰어를 묻는 질문에 대해 이스트만코닥의 한 경영자는 『코닥의 사전에 그런 말은 없다』고 의기양양해했다. 이후 70년대 말까지 카메라 시장에서 코닥의 점유율은 절반으로 떨어졌고 필름시장 점유율도 1/3로 격감했다.◆ 지속적인 혁신만이 성장 보장미시간대학의 노엘 티치는 이런 자만심을 타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장을 다시 규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80년대 초반 로베르토 고이주에타는 청량음료시장에서 35% 점유율을 생각하지 말라고 코카콜라 임원들을 독려했다. 그 대신 『사람들은 하루에 64온스의 액체를 마신다』고 생각하라고 했다. 그럴 경우 코카콜라는 그중 겨우 2온스만을 차지하는 것이다.그러나 많은 기회들이 사라져 버렸다는 점만으로라도 시장을 다시 정의하는 것은 점점 어려워진다. 고이주에타가 성공한데는 코카콜라를 해외에 더 열성적으로 판매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세계 어디든 코카콜라가 있는 지금에 와서 이 회사는 두번째 불황기를 맞고 있다. 또다른 방법으로, 카세트 레코더처럼 같은 물건이지만 겉만 다르게 만들어 틈새시장에 파고드는 「워크맨」식 전략이 있지만 이 방법도 이미 모든 시장에서 소비자의 선택폭이 아주 넓기 때문에 채택하기 어렵다.결국 전통적 기업들이라도 실리콘밸리의 회사들처럼 지속적으로 회사와 제품을 혁신할 때만이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빌 게이츠는 자만심의 문제에서는 해당사항이 없을 것이다. 그는 약간 늦게 인터넷을 알아차렸지만 전체 회사를 인터넷에 초점을 맞추도록 만들었다.잭 웰치가 이끄는 제너럴일렉트릭은 기존 시장이 성장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는 데 특별한 재주를 갖고 있다. 지난 95년 GE파워시스템(PS)의 사장이 된 이후 봅 나덜리는 회사가 터빈과 발전소를 만들던 데서 장기 서비스계약, 그리드(grid)관리, 새로운 극소발전기 개발 등을 중심 사업으로 밀어붙였다. GEPS 매출의 절반정도는 95년에는 아예 취급하지 않던 것들로부터 올리고 있다. 지금 웰치는 GE의 다른 사장들이 하는 것처럼 전자상거래를 하도록 나덜리를 종용하고 있다.BCG의 에릭 올슨은 성장에 대한 문화적 저항감을 갖고 있는 기업들도 있다고 지적한다. 이것이 종종 구조적인 실패와 연결된다는 것이다. 많은 기업들은 전략적 계획과 예산 사이에 유기적 관계가 성립돼 있지 않다. 전략가가 제출한 과감한 비전은 급진적인 변화는 기존부문의 영향력과 예산을 깎는다고 생각하는 금융담당자들에 의해 폐기된다.신상품 개발과 출시는 성장을 위한 노력일 뿐 아니라 그 성장을 관리하는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미국의 거대 기업 중 이 방법을 주전략으로 채택하고 있는 대표적 회사는 MS와 GE다. MS는 기업의 주력을 제품보다는 고객에 초점을 둔 부문으로 재배치하면서 또다른 구조조정을 이미 끝냈다. MS의 중역 봅 허볼드는 이 회사는 구조를 단촐하게 만들면서 성장해 왔다고 말한다. MS 매출상품의 원가는 전체순익에 따른 비율로 볼 때 97회계연도의 18.2%에서 최근 14.2%로 줄어들었다. 같은 기간 동안 회사는 각종 지출을 순익의 41%에서 35.5%로 줄이는 데 성공했다.GEPS에서 나덜리도 MS와 똑같은 전술을 채택했다. 그는 너무 빠른 성장으로 인해 오히려 난관에 빠진 유명회사들을 임원의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았다. 그는 제품판매 사이클을 줄이고 GE의 6시그마 품질관리를 보완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쓰고 있다.그러면 패스트의 브로딘은 어떨까. 그 역시 성장을 관리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는 아직도 할수 있는 뭐든 비용을 절감하려 애쓰고 있다. 비행기를 탈 때도 이코노미클래스를 타고 다니며 호텔방도 남과 같이 쓴다. 그러나 그는 성장하지 않는 것에 실제로 비용이 더 들 것이라는 생각도 하고 있다.이상의 사례들에서 본 것처럼 결국 문제는 성장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이익으로 바뀔 수 있느냐에 있는 것이다.「Managing for growth」 31st, Jul. 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