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력 : 36년 서울 출생. 55년 경기여고 졸업. 59년 미국 체스넛힐대학 졸업. 69년 애경유지공업 이사. 72년 애경유지 대표이사. 80년 애경그룹 회장. 91년 1억불수출탑수상. 99년 전국경제인연합회부회장.한국능률협회 99년도 「한국의경영자상」 수상. 한국경제신문 제8회 다산경영상 수상.한국여성경제인협회 초대회장.▶ 최근 발족된 여성경제인협회(이하 여경협)의 초대회장이 되셨는데 주된 사업목표와 방향을 말씀해주시죠.더 늙기전에 후배여성들과 젊은 여성경영인들을 위해 봉사하자 생각하고 맡았습니다. 여경협은 여성창업자나 여성경영인, 넓게는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을 지원할 계획입니다. 여성경영인들에게 경영정보 첨단기술정보 등을 제공하고 종합적인 경영연수지원을 하는 것 등이지요. 일차 사업으로 여성창업희망자를 대상으로 한 창업교실을 열었습니다. 국세청에 사업자등록을 한 여성숫자는 93만명이나 되던데 실제 여성경영자에 대한 통계나 자료는 없더군요. 우선 기본데이터부터 구축할 계획입니다.▶ 여성의 경제활동을 지원해야 할 필요성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사실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견인차였던 70년대의 신발·의류산업이나 전자산업 등은 여성들의 섬세하면서도 값싼 노동력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21세기의 산업이라는 정보통신산업이나 영상산업 유통업 서비스업 등은 여성적 감수성이 더욱더 필요합니다. 1인당 국민소득(GNP)이 1만달러가 되려면 4인 가족의 가장 혼자 4만달러를 벌어야 합니다. 당연히 임금상승욕구가 커지지요. 하지만 부부가 같이 일하면 혼자서 4만달러를 벌어야한다는 사회적 가정적 부담이 해소됩니다. 한국의 경제재도약을 위해서도 여성의 경제활동 확대가 필수적이라는 결론입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묻겠습니다. 고등학교(경기여고)를 졸업하자마자 미국유학이라는 당시로서는 드문 이력을 갖고 계신데요.6.25전쟁 직후에는 미국에서 장학금을 주는 유학프로그램이 아주 많았습니다. 당시 교장선생님이 미국유학을 장려해서 친구들과 함께 고2때부터 미국유학시험을 치르러 다녔지요. 대학에서 전액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전공을 찾다보니 화공학을 택하게 됐어요. 나중에 애경의 경영을 맡게 됐으니 우연이면서도 필연이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가난하던 시절에 유학가서 고생이 많으셨겠네요.장학금을 계속 받기 위해서, 또 영어가 잘 안돼서 공부에 매달렸지요. 미국간 첫해에는 자다가도 빨리 일어날 수 있도록 책상에서 자곤 했습니다. 결국 4년내내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가난하던 시절의 유학경험을 통해 죽자살자 매달리면 안되는 것이 없다는 것을 배웠지요. 이게 사회적 편견속에서도 기업경영에 도전하게 된 밑바탕이 된 것 같습니다.▶ 기업에서 일하는 여성조차 많지 않던 70년에 경영에 뛰어들었는데 가장 어려웠던 점은.처음엔 거래처는 물론이고 주위사람도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여자가 나서서 회사를 이끌며 잘 해나가겠느냐는거죠. 뭔가 이룩해서 보여주기 전에는 안되겠다 싶어 독한 마음으로 일에만 매달렸습니다. 어려움은 주위사람과 의논하기보다는 혼자 해결하는 스타일이라 힘든 결정을 해야할 때마다 명상을 했습니다. 종교(가톨릭)도 힘이 됐구요.▶ 기업경영이라는 일과 자녀교육 등 가정일을 병행하는 것도 쉽지 않으셨을텐데요.다행히 친정어머니와 같이 살 수 있었습니다. 또 예전엔 인건비가 싸서 집에 일하는 사람을 여럿 둘 수 있었지요. 물론 자녀교육(3남1녀)문제는 신경쓰이더군요. 하지만 아이들이 독립적으로 자란데다 말썽을 피워본 적이 없었습니다. 지금은 아들과 딸 사위가 모두 회사에서 일하고 있고 막내아들은 광고회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최고경영자로서 부하직원들은 어떻게 관리하십니까.처음에는 여사장 노릇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도와줄 수 있는 사람도, 책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혼자 고민하면서 내린 결론이 누나 어머니 등 여성으로서의 장점을 발휘할 수 있는 관계를 갖자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나이어린 비서나 사원들에게 경어를 씁니다. 일부 남성경영자들처럼 아랫사람에게 반말하면서 거칠게 대하는 통솔방식은 내게는 맞지 않더군요. 저녁술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른바 정경유착 기회도 있었지만 하고 싶지도 않았고 할 수도 없었습니다. 불가피한 경우 임원들을 대신 나가도록 했는데 새로운 사업기회를 놓쳐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나이기를 포기하면서까지 경영할 수는 없으니까요. 지금도 회식이나 노래방 가는 것은 즐기지 않습니다.▶ 종업원들은 그런 회장님의 모습을 어떻게 본다고 생각하십니까.사실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보다는 내가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지를 먼저 생각합니다. 아랫사람들을 의식하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지만 88, 89년 노사갈등때도 우리회사 근로자들은 다른 회사에 비해 최고경영자와 경영진에 대해 우호적이었습니다. 그당시 구로공단에서는 드럼통에 갇혀 린치당하는 경영자도 있었고 경영자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문구가 공장벽에 붙는 경우도 비일비재했습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런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우리회사 노동자들이 나를 봐준 셈이지요.▶ 왜 봐줬다고 생각하십니까아마 성실하게 일하고 직원들을 인간적으로 대하는 모습에서 신뢰를 가졌던 것 같습니다. 『우리 사장은 다른 경영자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던 것 아닐까요. 우리회사의 자랑이 노사관계가 좋다는 점입니다.▶ 애경의 미래에 대한 구상은.우리는 비누 세제 등 화학분야 소비재로 시작해 지금은 유통 등 12개 계열사를 갖고 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발전해도 비누는 필요하지요. 따라서 기초화학산업은 우리의 주축사업으로 계속 해나갈 것입니다. 다만 앞으로는 더욱 환경친화적인 제품과 생산구조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제품이란 항상 그 시대와 환경에 맞는 것을 내놓아야 하고 소비자의 요구에 초점을 잘 맞춰야 하니까요.▶ 회장님의 기업관, 경영관이라면.기업은 사회와 국가경제발전에 기여해야합니다. 그러기위해선 수익을 내야합니다. 매출규모가 아무리 커도 사회와 국가에 부담이 되는 기업은 기업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자산은 사람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한국과 한국기업의 미래는 인적자원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또 우수한 인적자원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고 부지런히 일하는 습관도 중요합니다.★ 인터뷰 후기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의 경영 리더십은 한마디로 독특하다. 흔히 서구의 성공한 여성 경영인들의 경우 대부분 적극성면에서 외적이나 내적으로 남성들을 압도하는데 비해 장회장의 그것은 겉으로 매우 부드럽고 더 나아가 지혜롭기까지 하다. 장회장의 경영 리더십을 현대 마케팅의 한 기법으로 통용되는 SWOT분석(Strengths, Weaknesses, Opportunities and Threats)으로 조명해 보면 흥미롭다. 먼저 경영인으로서 약점일 수 있는 여성이란 한계를 오히려 역이용해서 장점으로 활용했다. 남편의 갑작스런 사망이란 위기도 「최고경영자로서 여성도 훌륭하게 성공할 수 있다」는 기회로 전환시켰다. 물론 그 바탕에는 위기를 앞에놓고 조용히 명상에 잠기는 현명함이라든가 가급적 말을 아껴 사용하는 과묵함이란 장회장 특유의 기질이 있었다. 회사 임원급들은 물론 과거 노조위원장들에 대한 호칭에도 어김없이 「님」자를 붙이는 것을 볼 때 장회장의 노사관이 어떤 것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