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팔당호」.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이 구조조정을 설명할 때 자주 비유로 드는 게 팔당호다. 팔당호는 겉보기에 깨끗한데 그 속엔 쓰레기 투성이였다. 수도권 주민의 식수원인 팔당호를 청소하려면 먼저 유입하천들에 정화장치(법규, 제도)를 만든 뒤 본격적인 퇴적물(부실정리, 워크아웃 등) 준설작업을 벌여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대우는 7월19일 사태가 표면화되기 전까진 잔잔한 팔당호였다. 그 속에 쌓인 퇴적물이 수면위로 드러나면서 모든 게 흔들리고 있다. 회복기에 들어선 한국경제에 심각한 타격과 대외신인도 추락까지 우려하게 됐다. 대우의 국내외 부채는 55조원(4백60억달러)에 이른다. 국내외에 2백98개 사업장을 거느린 다국적기업이기에 세계가 예의주시한다. 「세계경영」을 펴온만큼 파장도 세계적인 셈이다.한달째 금융시장을 뒤흔든 대우사태는 정부와 채권단이 대우 계열사들의 분리매각 계획을 짜면서 일단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금융계엄령」아래 취해졌던 수익증권 환매규제도 풀렸다. 그러나 앞으로 과제는 금융시장 안정과 대우구조조정이 얼마나 신속히 이뤄지느냐에 달려 있다. 이헌재 위원장은 대우문제는 「시간과의 싸움」으로 규정했다.정부는 한달 가까이 대우를 압박한 끝에 「항서(抗書)」를 받아냈다. 주변상황도 대우와 김우중회장이 더 버티기 어렵게 만들었다. 급기야 대우는 25개 계열사중 자동차, 무역부문 6개만 남기고 모두 정리하는데 도장을 찍기에 이르렀다.대우가 애지중지하던 대우증권, 서울투신운용과 (주)대우 건설부문까지 모두 분리후 매각이라는 수순을 밟게 됐다. 남은 것은 대우자동차, 대우자동차판매, 대우통신 부품부문, 대우캐피털 등 자동차관련 4사와 (주)대우 무역부문, 대우중공업 기계부문 등 6개사뿐이다. 그러나 기계부문도 매각가능성이 있고 무역부문은 자동차의 해외투자 지원이 주업무여서 사실상 자동차만 남는 셈이다. 자동차도 미국 GM(제너럴모터스)과 합작이나 경영권 이양 등의 형태로 살길을 모색하고 있다. 대우는 경영권도 제한되는 자동차 전문기업으로 남게 될 전망이다.김우중 회장은 칼을 꺾은 「항장(抗將)」에 다름아니다. 본인 사재를 포함, 경영권이 걸린 주식 등 10조원어치를 채권단에 담보로 제공했다. 구조조정 작업을 미적거리면 채권단은 즉시 담보처분권을 행사한다. 「부실기업 회생의 귀재」가 스스로 부실을 잘라내야 한다. 태풍이 지난뒤 김회장은 자칫 부실경영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추궁에 시달릴 수도 있다. 정부는 이미 김회장의 「명예로운 퇴진」을 공식화하고 있다.대우 구조조정계획을 확정했다고 문제가 끝나지 않는다. 이달중 계열사 분리·매각 일정을 제시하고 9∼10월중엔 신속히 계열분리, 출자전환, 매각·합작을 이뤄내야 한다. 매각속도에 완급조절은 가능해도 중간에 봐줄 게 별로 없다. 금감위 관계자는 『무엇보다 시장이 무섭다』고 토로했다.대우해법의 성공여부는 전적으로 시장의 평가에 달려 있다. 시장에서 인정받지 못하면 하나마나다. 이헌재 위원장은 『대우의 정상화에 6개월을 참아줄 순 있어도 시장안정에는 당장 확실한 시그널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만큼 시장을 걱정하고 있다.대우사태의 완결까진 여전히 숙제가 많다. 은행의 경영건전성(BIS비율)을 신경써야 하고, 해외채권단을 배려해야 하며 주가를 걱정하고, 회사채(수익증권)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 때문에 대우사태는 문제의 복합성 때문에 「팔색조」에 비유된다. 최선의 결과는 계열사가 모두 잘 팔려 빚을 갚고 독립법인으로서 생존하는 것이다. 그러면 금융시장의 충격을 해소하고 증권시장도 사태이전의 활력을 되찾을 수 있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는 곧 제2위기로 이어진다.한꺼번에 매물로 내놓은 계열사들이 모두 순조롭게 팔릴지 걱정스럽다. 대우는 이미 시장에서 「양치기 소년」이 돼버렸다. 그동안 하도 자주 MOU(양해각서)를 맺고 매각이 성사된 양 발표해 이젠 실제 돈이 들어올 때까지 정부도, 시장도 안믿는다.그래도 대우전자는 거의 매각성사단계다. 알짜배기인 대우증권도 「화장」만 잘하면 제값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조선, 건설 등 덩치가 큰 사업부문은 실사부터 매각까지 쉽지가 않다. 가격을 낮추거나 시간을 늦추는 방법뿐이다. 먼저 분리하고 나중에 실사와 가격정산을 하는 방안도 강구되고 있다. 시간을 끌면 구조조정의지를 의심받고 서두르면 헐값에 넘겨야 하는 애로가 있다.◆ 해외채권단도 설득해야다음 문제는 99억달러에 달하는 해외부채다. 해외 채권금융기관들을 다독거려야 한다. 2백여 해외채권단은 국내채권단에 비해 불공평하고 아무 설명도 없다고 볼이 부어 있다. 대우가 내놓은 10조원의 담보 배분에 제외됐다는 것이다. 일본 프랑스계 13개 은행은 항의서한을 보내왔다. 서머스 미 재무장관이 강봉균 재정경제부 장관에게 동등대우를 요구하는 전화를 거는 등 심상찮은 분위기다.대출액이 적은 은행일수록 대우에 빚갚으라고 아우성이다. 오히려 여신액이 큰 은행들은 일괄협상을 통해 회수율을 높이려고 개별적인 부채상환을 거부하라고 종용한다. 대우가 협상에서 얼마나 부채를 탕감받고 출자전환을 얻어낼지 주목된다. 해외채권단은 18일 대우의 설명회를 계기로 한덩어리가 돼 대우와 만기연장 협상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비해 대우는 작년초 정부의 외채만기협상때 활약한 마크 워커 변호사를 영입했다.가장 큰 문제는 시장에 있다. 금감위는 우격다짐으로 지난 7월23일부터 수익증권 환매를 규제한지 3주만인 13일에 풀었다. 투신·증권업계가 대우채권의 펀드 편입비율(평균 7. 5%)만큼 원금지급을 유보하겠다는 것을 금감위가 승인해줬다. 예컨대 대우채권 편입비율이 10%인 펀드에 1억원을 맡겼으면 9천만원까지 내주고 나머지는 내년 7월1일이후 최종 정산해준다.이로써 먼저 돈을 빼갈수록 이익인 수익증권의 문제점이 해소된다. 먼저 빼나 나중에 빼나 위험부담은 똑같기 때문이다. 6개월이상 기다리는 게 유리하다. 정부는 그동안 대우문제를 완결짓겠다는 복안이다. 대우가 정상화돼 내년 7월 정산시점에 원리금을 그대로 상환할 능력이 있으면 투자자들이나 운용회사(투신), 판매회사(증권) 아무도 손해보지 않는다.이런 묘안에도 불구, 적어도 일주일은 금융시장의 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3주동안 눌려온 환매 대기수요가 10조원에 이른다는 추정이다. 용수철은 누를수록 튕겨나가는 힘이 세어진다. 환매가 몰리면 투신사들이 채권을 내다팔아 금리가 오르고 주가가 떨어질 수 있다. 시장안정은 시중 유동자금이 투신사로 다시 들어오느냐에 달려 있다.대우사태의 해결은 무엇보다 대우가 계열사들을 얼마나 빨리 팔고 빚을 갚아 정상화되느냐가 관건이다. 대우사태가 환란직전 기아사태처럼 질질 끈다면 다시 위기를 각오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팔당호에 쌓인 퇴적물을 걷어내는 것(대우 구조조정)이 댐을 부수고 새로 짓는것(대우 퇴출)보다 비용이 싸게 먹힌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