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위안화는 결코 국제적으로 비중있는 통화가 아니다. 여전히 강력한 사회주의적 외환통제로 인해 거래가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위안화는 외환 트레이더들의 관심 밖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안화의 평가절하설이 대두될 때마다 세계 언론은 떠들썩하다.그 이유는 명백하다. 97년 동아시아를 휩쓴 외환위기의 배후에서 위안화의 평가절하가 큰 몫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95년 엔화 환율이 달러당 80엔이라는 초유의 엔고를 치고 빠르게 엔저로 반전을 시작하자, 대일수출에 애로가 걸린 중국은 위안화의 절하를 서둘러 단행했다. 이는 곧바로 중국과 치열한 수출가격 경쟁관계에 있는 태국, 인도네시아, 한국 등 동아시아 각국의 경상무역수지를 압박하면서 외환위기의 빌미를 제공했다.최근 우리나라는 암흑의 금요일을 경험했다. 대우사태와 위안화 평가절하설이 맞물려 안으로는 주가가 폭락하고 이자율이 치솟고 밖으로는 원화환율과 외평채 가산금리가 불안해지면서 제2 환란설까지 대두되기도 했다. 실로 위안화 절하가 갖는 파괴력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다행히 최근의 금융불안은 정부의 적극적 개입으로 진정국면에 접어들었지만 우리로선 끊임없이 중국 내외부로부터 제기되고 있는 위안화 절하가능성에 관심의 눈길을 거두어서는 안된다. 단지 인민은행의 다이샹룽 총재가 『위안화의 환율은 원칙적으로 시장의 수급원리에 맡겨야 한다』고 발언했다거나, 국제신용평가기관인 스탠다드 앤드 푸어스(S&P)가 중국의 국가신용도를 한단계 낮추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중국의 경제사정에 비추어 위안화를 절하시켜야 할 근거는 충분하다.현재 중국에는 디플레 조짐이 완연하다. 금년도 성장목표를 지난해의 8% 보다 1%포인트 낮추어 잡았음에도 이의 달성이 불투명하다. 수출이 극히 부진하기 때문이다.따라서 보-혁 대립구도하에서 성장세를 지켜야만 하는 장쩌민-주룽지로선 심각한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위안화를 절하하지 않겠다는 대외공약을 무작정 고집할 수 없는 형국이다. 특히 중국에서는 성장률이 1% 떨어질 때마다 대략 5백만명의 실업자가 늘어난다고 하니 중국의 정책 당국은 위안화를 절하해서라도 성장목표를 달성하고 싶은 유혹에 끊임없이 빠져들 수밖에 없다.그러나, 적어도 금년말까지는 중국 당국이 현행 평가를 유지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시되고 있다. 이유인즉 당장 위안화를 절하해봐야 실익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현재 엔화가 달러에 대해 절상가도를 달리고 있기에, 또한 동아시아 각국이 외환위기에서 벗어났다고 결코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위안화의 절하가 결코 중국의 획기적 수출증대로 이어질 수 있다고 낙관하기 어렵다.더욱이 중국은 미국에 대해 연 5백억 달러의 무역수지 흑자를 거두고 있는 마당에 자칫 위안화 절하로 인해 미국의 심기를 거슬러 통상마찰이 심화되거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도 무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오는 10월1일 중국은 공산당 집권 50주년을 맞게 된다. 또한 11월에는 미국 시애틀에서 WTO 각료회의가 열려 중국의 가맹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이때쯤 되면 미국경제가 태풍의 눈인 버블로부터 연착륙할 것인지, 혹은 동아시아가 위기로부터 제대로 탈출한 것인지도 보다 명확하게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연말 위안화 절하설에 무게가 실리는 까닭은 단지 우리를 안심시키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