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겪은 것은 수류탄 하나 터진 것에 불과하다. 앞으로 닥칠 일은 핵폭탄이 여러개 폭발하는 정도의 파괴력이 있을 것이다」. 「아니다. 투자자들의 자금인출을 원천봉쇄함으로써 극도로 불안해진 투자심리를 어느 정도 안정시킨만큼 최악의 국면에서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약간의 충격을 더 참아내면 안정궤도로 다시 진입할 것이다」.8월19일부터 개인의 MMF(머니마켓펀드)에 대해선 환매제한 조치를 완화해 대우채권의 95%까지 지급키로 한데 대한 금융계의 반응은 이렇게 양분된다. 부정적 영향을 강조하는 쪽은 환매제한이란 거대한 둑이 무너진만큼 점차 일반법인의 MMF→만기가 지난 공사채형 수익증권→금융기관 등 기관투자가의 MMF 및 공사채형 수익증권 등으로 환매제한 완화가 확산될 것이라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렇게 되면 투자신탁(운용)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채권을 시장에 내놓을 수밖에 없어 회사채수익률이 폭등할 것이며, 금리상승은 주가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반면 긍정적인 면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정부가 대우그룹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으며 나름대로의 블루프린트에 따라 해결방안을 시행하고 있다는 것을 믿고 있다. 97년에 IMF 위기의 원인(遠因)이 됐던 기아그룹 문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설명도 덧붙인다.대우그룹 문제가 공식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7월19일이었다. 그때 종합주가지수는 1천24.58로 연중 최고치였다. 7월7일에 사상 세번째로 「주가 1천시대」를 연 뒤 사상최고치인 1천1백38(94년11월8일)을 갱신하겠다는 도전장을 내던 때였다. 그날 시가총액은 3백7조9천3백40억원으로 역시 사상 최대였다. 그러나 7월19일에 대우그룹 구조조정 문제가 불거져 나오면서 주가는 미끄럼을 타기 시작했다. 1주일 뒤 금융기관 등 기관투자가의 수익증권 환매가 금지되자 종합주가지수는 8백72.94까지 곤두박질쳤다. 8.31%에서 안정되던 3년만기 회사채유통수익률도 9.26%로 치솟았다.◆ 대우 구조조정 불거지면서 주가 미끄럼마약과도 같았던 이같은 안정세가 당국의 현실인식을 안이하게 만들었다. 8월11일로 예정됐던 대우그룹 구조조정방안 발표를 8월16일로 연기하자 주가는 다시 폭락했고 금리는 폭등했다. 16일이 돼서 특별히 새로운 것 없이 대우그룹 구조조정방안이 발표되자 종합주가지수는 9백7.28까지 밀렸고, 회사채수익률은 9.91%로 올랐다. 8월19일 현재 주가는 8백71.18까지 떨어졌고 회사채수익률은 9.96%로 두자릿수 진입을 위한 초읽기에 들어갔다.이같은 주가하락·금리상승은 8월12일 밤에 급히 소집된 증권·투신사사장단 회의에서 수익증권 환매제한 조치를 「자율결의」한데 대한 부정적 반응도 한몫했다. 그전까지는 기관투자가에 대해서만 수익증권 환매를 금지시켰는데, 일반법인과 개인들이 공사채형 수익증권을 10조원이나 인출해가자 부랴부랴 「보완책」을 만든 것이다. 기관투자가에 대해서는 가입한 펀드에서 대우채권에 해당하는 금액을 제외한 금액만 인출을 허용하되, 일반법인과 개인에 대해서는 기간에 따라 50∼95%를 인출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즉 3개월 미만에 찾을 때는 50%, 3개월∼6개월 미만은 80%, 6개월 이상은 95%라는 식이었다.그러나 이런 방안은 보완책이 아니라 「개악(改惡)」이었다. 개인과 일반법인에 대해서는 사실상 「환매금지」였기 때문이다. 당장 수익증권을 환매하려고 하면 대우채권에 해당되는 금액을 50%나 손해봐야 한다. 투자금액이 1억원이고 자신이 가입하고 있는 펀드에 대우채권 편입비율이 50%라고 할 때 2천5백만원을 손해보고 돈을 찾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문제는 MMF와 공사채형 수익증권에 대우채권이 생각보다 훨씬 많게 편입돼 있다는 사실이다. MMF에는 투자비적격 회사채나 기업어음(CP)을 편입할 수 없다고 약관에 규정돼 있다. 대우그룹 전계열사는 5월말부터 투자비적격 등급으로 떨어졌기 때문에 대우그룹 채권이 MMF에 들어 있는 것은 엄청난 위법행위임에 틀림없다. 그것도 대우그룹 문제가 불거진 이후 개인들의 MMF나 공사채형 수익증권에 대우채권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돈을 많이 맡기고 있는 생명보험회사나 은행 및 연기금같은 기관투자가들이 자신의 펀드에서 대우채권을 제외하도록 투자신탁(운용)회사에 요구함에 따라, 투신(운용)사들이 대우채권을 「힘없고 빽없는」 개인들의 펀드로 옮겨 놓았기 때문이다.군사정권에서도 금융기관에서 자기돈을 인출하지 못하게 하지는 않았는데 국민을 위한다는 「국민의 정부」에서 돈을 인출할 수 없다는데 대해 국민들은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게다가 6개월 동안 고통을 참고 기다린다고 해도 대우채권의 95%에 해당하는 금액을 받을 수 있는지가 불분명한 실정이다. 아무도 이것에 대해 「보증」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8월19일부터 개인의 MMF에 대해 대우채권 금액의 95%까지 지급토록 완화됐으나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일반법인의 MMF와 만기가 지난 공사채형 수익증권과의 형평성 문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환매완화기준이 누구라도 수긍할 수 있는 잣대에 의한 것이 아니라 「투신·증권사에 부담이 되지 않을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투자자·시장의 신뢰없는 정책은 실패또 환매제한 완화 과정에서 일부 증권·투신사들이 아무런 조건없이 1백% 지급하려고 한데 대해 금감위가 「실적상품에 대해 1백% 보전하는 것은 원칙에 맞지 않는다」며 제동을 건 것도 두고두고 문제거리로 남을 것이다. 나아가 일부 투신사와 증권사는 만기가 지난 공사채형 수익증권과 일반법인의 MMF에 대해서도 환매제한을 완화하려고 하고 있으나 금감위의 제동으로 실시하지 못하고 있다.대우그룹 구조조정과 투신사 수익증권 환매문제를 겪으면서 우리는 두가지 교훈을 얻게 됐다. 첫째, 투자자와 시장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정책은 실패한다는 것이다. 금감위는 7월26일과 8월12일 두차례에 걸쳐 강제적인 수익증권 환매제한을 강행했다. 그와중에서 금감위는 자신의 손에는 진흙을 묻히지 않겠다는 자세로 일관해 투자자의 신뢰를 얻는데 실패했다.둘째,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다. 일부 증권·투신사는 재벌 2위인 대우그룹은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대마불사의 신화에 빠져서 대우채권에 투자하는데 망설이지 않았다. 대우채권이 다른 채권보다 수익률이 훨씬 높았기 때문이었다. 한두푼에 눈이 멀어 존망의 위기로 몰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더욱이 일부 회사에서는 큰손들의 손실을 보전해주기 위해 개인들에게 피해를 입힘으로써 신뢰를 생명으로 하는 금융기관의 존립기반을 스스로 갉아 먹었다. 전형적인 소탐대실(小貪大失), 한발 나아가 소탐명실(小貪命失)인 셈이었다.대우그룹과 수익증권 환매문제는 앞으로 얼마나 더 시간을 끌지 현재로서는 불투명하다. 그러나 한가지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그것을 치료하는데 드는 비용이 천문학적 숫자로 늘어난다는 것이다. 대우문제가 처음 거론된 이후 한달동안 공중으로 바람과 함께 사라진 시가총액이 무려 37조8천억원이나 된다. 하루에 1조3천억원씩 없어진 셈이다. 국민들이 느낀 고통까지 합하면 더욱 커진다. 하루라도 빨리 해결하는 것이 비용을 최소화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