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대에나 유행어가 있게 마련이다. IMF사태 이후 모든 것을 다 바꿔치워야 한다는 시대의 물결을 타고 일대 풍미하고 있는 글로벌 스탠더드도 그 예외가 아니다. 모든 병을 치유한다는 만병통치약치고 효험있는 것이 없듯이 글로벌 스탠더드가 한국병을 모두 치유하고 재도약을 담보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유치한 시대인식이고 현실을 오도하는 정신의 이완이다.현재 각광받고 있는 미국식 경영기법도 알고 보면 상당부분 일본의 강점을 모방한 것이다. 리엔지니어링은 일본의 수평교류식 팀제를 모방한 것이고, 가상기업은 일본의 도요타 생산방식에 정보기술을 합성한 것이다. 지식경영 또한 일본이 사실상의 원조임을 의심할 수 없다. 미국은 금융과 정보산업의 비정상적인 약진을 계기로 미국식 스탠더드가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뽐내고 있지만 마치 시계추(pendulum)와도 같은 역사의 운행은 이를 항구화시킬 수는 없다. 한 쪽으로 치달은 시계추는 반드시 반대방향으로 회귀하게 마련이다.월가의 금융산업은 마치 첨단 공학을 방불케 하지만 첨단의 기법이 빠르게 보급·확산됨에 따라서는 자본력의 일본금융이 지위를 탈환할 가능성이 높고, 실리콘밸리의 디지털 벤처기술이 양산단계에 이르면 조직력의 일본은 다시 부상할 것이다. 미국의 환상호황이 막을 내리고 일본이 심리불황을 극복할 경우 또 다시 틀바꾸기 소동을 벌일 수는 없지 않은가. 바로 이 때문에 우리는 고질화된 냄비근성을 경계해야 한다.이제 우리는 복합계 게임(game of complexity)에 익숙해져야 한다. 서해안에서는 북한과 교전을 치르면서도 동해안에서는 여전히 금강산 유람선을 띄워야 하는 복합의 전술을 구사해야 한다. 그간 정부와 업체간의 협조체계가 과도했다고 자기혐오에 빠져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떠들 것이 아니라 밖으로는 시장에 의한 공정성과 개방성을 기치로 내걸면서도 안으로는 우리의 미래가 걸린 사안마다 정부가 은밀하게 나서서 주도면밀한 조정을 해낼 수 있어야 한다.금융경제가 중요해졌다고 실물경제를 도외시할 수 없고, 주주이익을 중시해야 한다고 공동체 이익을 저버릴 수는 없다. 경쟁과 협력이 무조건 배치관계일 수 없듯이 글로벌 스탠더드와 로컬 스탠더드도 어딘가에서 상호 접점을 찾아야 한다.현실은 이념이 아니다. 기본에 충실한 나라만이 성공을 거둔다. 절대불패의 독점적 기술력을 추구해야 하고, 과감한 투자와 치열한 위험감수의 정신을 견지해야 한다. 이러한 국가경쟁력의 근본은 어디까지나 국적있는 거대자본의 육성에 의해서만 달성가능하므로, 외국자본 유치에 대해서는 자극제·청량제 이상의 의미를 부여해서는 안된다.글로벌 스탠더드는 결코 공정한 신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는다. 강자에 의한 패권지향적 기도일진대 이를 무조건 보편적 규범이라고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국가경쟁력의 관점에서 영역별로 차별적인 대응전략을 모색해야 한다.객관적인 조직운영의 시스템을 구축하고 프로페셔널한 인재를 키우고 기술혁신의 조직문화를 고양하기 위해서라면 경영관리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과감하게 수용해야 하고 글로벌한 기술표준 쟁탈전에 공격적으로 임해야 한다. 그러나 「이사회를 개편하라」, 「주주행동주의를 보장하라」, 「적대적 M&A를 허용하라」, 「국제회계기준을 도입하라」는 등 기업지배구조를 전면 미국식 스탠더드로 개편할 것을 요구하는 압력에 대해서는 어디까지나 역사적 비판의식을 갖고 이를 우회적으로 극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