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경제의 회복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지난 2/4분기 일본의 국내총생산(GNP) 실질생산 증가율은 1/4분기 대비 0.2%로 지난 1/4분기(2.0%)에 이어 호조를 이어가고 있다.당초 노무라총합연구소 등 일본의 주요 경제연구소들은 2/4분기 성장률을 마이너스로 예측했었다. 사카이야 다이치 경제기획청 장관도『2분기에는 마이너스 성장이 불가피한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놓을정도였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광공업생산과 건축경기가 본격적인 회복세에 접어들었는가 하면 소비도 되살아나고있다. 공공부문에만 의존하던 경기가 서서히 민간내수부문으로 옮아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일본정부는 이같은 여세를 몰아 더욱 적극적으로 경기부양에 나설태세다. 정부와 여당은 최근 제2차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기정사실화한데 이어 10월중 경기회복을 위한 경제종합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여기에다 미국까지 나서 경기부양을 적극 촉구하고 있는만큼 일본경기는 상승커브를 그릴 공산이 크다는게 해외전문가들의 중론이다.그러나 일본이 본격적으로 경기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불안요인들을 극복해야 한다. 당장 엔고와 주가하락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4.9%수준에서 좀처럼 움직일줄 모르는 실업률도 부담이다. 통화긴축 정책을 풀지 않고 있는 일본은행의 완강한 고집도풀어야 한다.◆ 경기흐름경기회복의 첫번째 특징은 서비스와 소비지출 증가세다. 최근 2년간꽁꽁 얼어붙었던 소비지출은 2/4분기에 전년 같은 기간보다 0.8%의증가세를 보였다. 이 가운데 서비스부문의 증가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일본 국내 고용소득의 불안이 점차해소되고 있는 증거로 해석된다. 일본 봉급소득자들은 여름보너스의감소에도 불구, 7월중 73.7%의 평균소비성향을 나타냈다. 1년1개월만의 최고치다. 소비패턴을 보다 면밀히 분석해 보면 남성보다는 여성의 소비성향이 높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8~22세 사이의 젊은여성이 소비지출을 주도하고 있으며 대형백화점과 기업들도 이들을겨냥해 광고 판촉전을 전개하고 있다.여성들의 구매열풍은 특히 컴퓨터분야에서 두드러졌다. 올들어 지난8월말까지 여성들의 PC구입률은 전년 같은 기간의 8%보다 크게 늘어난 25%를 기록했다. 게다가 점차 활성화되고 있는 전자상거래를 본격적으로 이용할 경우 소비지출은 더욱 가파른 상승세를 그릴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기업들의 실적호전도 가시화되고 있다. 히타치 제작소는 지난 6월에장기적자로 허덕이던 반도체 사업에서 흑자를 냈다. 무라타 제작소는 휴대전화용 전자부품의 호조로 설비투자비를 당초 계획보다 1백억엔 늘어난 7백50억엔으로 높였다. 대형 반도체 제조장치 메이커인도쿄정밀은 2001년 가동을 목표로 도쿄 하치오지시에서 신공장 착공에 들어갔다.또 지난 8월 일본의 경자동차 판매량은 12만2천대를 넘어 1년전 같은 달보다 30.3% 늘어났다.철강업체들도 아시아 지역에 대한 수출이 늘면서 예상 실적을 상향조정하고 있다. 신일철 NKK등 일본의 6대 고로업체들은 9월까지의올해 중간결산에서 이익매출액이 모두 전년동기보다 감소할 것으로예상됐었다. 그러나 아시아 국가들의 경기회복으로 이들 업체들의조강생산량은 증가세로 반전됐다. 업계에서는 연간 기준으로도 당초예상치인 8천8백만t보다 4백만t이나 늘어난 9천2 백만t을 생산하게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가와사키제철등 4대 메이커가 올해 매출액을 일제히 상향조정했음은 물론이다.석유화학업계 역시 급격한 엔고에도 불구, 늘어나는 수출로 즐거운비명이다. 중국등 아시아의 석유화학제품 수입증가로 공장을 풀가동하고 있다. 합성수지의 달러표시 가격은 아시아시장에서 두달 전에비해 최고 50%나 급등했다. 엔고와 원유가 상승분을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는 수준이다.그러나 경기가 완전히 정상을 회복했다고 단정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우선 상품부문의 소비회복이 부진하다. 소매업에서는 『생필품의 판매가 여전히 부진해 회복의 조짐을 찾기가 어렵다』는 반응들이다. 이노우에 일본경제연구센터 주임연구원은 『개인 소비마인드가 과도하게 위축됐다가 다소 회복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제조업의 하반기 실적회복도 기대하기 어렵다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설비과잉상태에서 광공업 생산증가 추세가 계속 이어질 수는없다는 진단이다. 공공투자의 확대, Y2k문제 대책등에 따른 특수요인이 사라지면 실적이 또 다시 뒷걸음질칠 것이라는 전망도 만만찮다.◆ 우려되는 엔고경기회복에 가장 부담스런 요인은 엔고다. 급격한 엔고는 경기와 기업수익을 개선시키려는 일본의 전략에 치명타를 입힐 수밖에 없다.달러화 폭락-미국 증시불안은 대미수출로 재미를 보고있는 일본기업들을 크게 위축시킬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지역에 대한 일본의 수출이 늘어나고는 있지만 아시아 각국 경기도 미국의 주가 폭락시에는그 회복세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 여부가 불투명하기 때문에 일본기업으로서는 이같은 국제금융환경의 변화를 경계해야할 처지다.혼다측은 『엔화시세가 달러당 1엔 오르면 연간 1백억엔의 이익이날아간다』며 당초 2000년3월로 예상했던 달러당 1백15엔이 훨씬 앞당겨진데 대해 곤혹스런 기색이 역력했다.10월 이후의 수출사내 환율을 달러당 1백12엔으로 설정한 도시바기계도 엔고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 소비측은 『완만한 엔고에는대응할 수 있지만 최근의 급격한 엔고에는 손을 쓸수가 없다』고 크게 우려했다.엔고로 인한 일본의 주가하락도 골칫거리다. 주가하락은 그나마 회복기미를 보이고 있는 기업과 가계의 심리를 반전시킬 수도 있다는지적이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중앙은행의 양적 금융완화 무산으로미국의 협조개입을 기대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당분간 주가가 약세를 면치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문제는 엔고가 어느 수준에서 언제까지 지속될 것이냐 하는 점이다.통화당국의 금융완화조치 등으로 엔화가치가 더 이상은 오르지 않을것이라는게 일반적 분석이다.그러나 일본의 경기회복과 미국의 인플레이션 우려 등으로 인해 당분간 달러당 1백10엔대 전후는 유지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엔고저지를 위한 일본정부의 협조요청을 묵살한 서방선진국들의 태도를보더라도 엔고 추세는 지속될 것으로 관측된다. 사실 일본 은행 스스로가 시장 개입을 주저하고 있는 마당에 다른 나라들이 일본을 도와줄 이유가 없다.그러나 금융 외환시장의 동요를 막기 위한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게일본내 민간부문의 주문이다. 다카키 메이지대교수는 『일본은행이통화정책을 더욱 더 완화해야 한다』며 양적인 완화를 통해 디플레이션을 막아야한다고 말했다. 또 노무라종합연구소의 주임이코노미스트 우에쿠사씨도 『10조엔 규모의 추가재정지출이 불가피하다』고주장하는 판국이다.◆ 정부대책최근 오부치 총리는 새 내각의 경제운용틀을 본격적으로 짜기 시작했다. 99년도 제2차 보정예산안 편성에 앞서 빠르면 이달중에 종합경제대책을 마련할 움직임이다. 워싱턴에서 최근 열린 G-7(서방선진7개국)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회의의 공약사항을 실천하기 위해서라도 「정책총동원」에 나설 태세다. 일본정부는 이들 국가들에경기부양대책을 계속 실시할 것으로 천명했었다.이 대책에는 △공공투자 추가실시 △포괄적인 중소 - 벤처기업 지원△금융시스템 안정화 △고용안정 △새 천년 사업 조기실시 계획등이망라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공공투자와 관련,기존 사업의 양적 확대는 물론 도시 방재사업 정보통신 환경 복지등신규사업도 개발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 21세기 경제발전 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바이오테크놀러지 응용사업과 고도로 정보화된 「전자정부」 실현사업 등도 앞당겨 실시할 방침이다.오부치총리는 이같은 경제대책 마련을 계기로 일본은행의 탄력적인금융정책을 유도해낸다는 계산이다. 오부치 총리는 지난 9월27일 열린 경제동우회 모임에서 『새 내각 출범에 맞춰 종합적인 경제대책을 검토하고 있다』며 『제2차 보정예산의 탄력적인 편성을 통해 재정 금융 중소기업 밀레니엄사업을 포괄하는 종합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이같은 구상에 대해 대장성 등에서는 신중한반응을 보이고 있다. 보다 폭넓은 정책패키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좀 더 시간을 갖고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어쨌든 일본정부가종합경제대책을 조기에 마련하기 위해 부심하는 이유는 이렇다.우선 경기회복을 확실히 이끌어내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재정지출을 포함한 모든 정책수단을 동원하겠다는 입장이다. 두번째는자민련총재 선거기간중에 발생한 엔고에 대해 시급한 대책을 마련하려고 한다. 선거로 인해 발생한 경제운용의 공백을 메우겠다는 복안에 다름아니다. 세번째는 금융완화문제로 마찰을 빚고 있는 일본은행을 압박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오부치총리는 지난 9월17일 열린 총재선거의 공개토론회에서 『일은의 금융정책 현상유지는 유력한 의견으로 어느 측면에서는 수긍할수도 있다』고 말했다. 일은의 입장을 최대한 배려하려는 어투였다.그러나 금융의 양적완화에 대한 일본정부의 입장은 확고하다. 한마디로 현상유지(통화긴축)에 골몰하고 있는 일은의 정책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다. 얼마전 미야자와 대장상이 서머스 미국 재무장관과담판을 벌여 G-7 공동성명에 「엔고우려를 공유한다」는 내용을 포함시켰음에도 불구, 일은의 하야미총재는 미지근한 멘트로 일관했다.『환율변동의 영향을 포함해 모든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겠다』는정도로 금융을 완화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현상을 유지하겠다는 것인지를 분명히 하지 않은 것이다. 한때 일은의 정책이 방향을 트는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있었지만 일은은 즉각 『기존 통화정책은 불변』이라는 공식적인 입장을 밝혔다.상황이 이렇게 되자 오부치 총리는 공개석상에서 불만을 터뜨렸다.지난 9월27일 한 강연에서 『일은을 비판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이대로 가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미야자와 대장상과 협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고 말한 것. 사카이야 다이치 장관도 9월26일 『현재의 상황에서는 좀 더 금융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며 통화량 확대를거부한 일은의 결정을 거듭 비난했다.따라서 오부치가 종합경제 대책의 한 축에 금융완화를 내세울 것은거의 확실해보인다. 이를 위해 대장성은 금융파산처리와 예금자보호대책의 골격을 임시국회에 내놓을 방침이다. 일각에서는 일은에 정책변경 압력을 가하기 위해 「기동적인 금융정책의 운용」을 대책문건에 명기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그러나 또 다른 일부에서는 다른 해석들이 나오고 있다. 종합경제대책이 정책변경에 혼선을 빚고 있는 일은을 오히려 도와줄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폭넓은 정책패키지를 마련,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경우일은 입장에서는 운신의 폭이 넓어진다는 것이다. 일은이 이 과정에서 자발적으로 금융의 탄력적인 운용을 기할 수 있다면 일은의 체면도 살고 정부도 원하는 바를 챙길 수 있다는 해석이다.한편 2차 보정예산으로 국채발행의 증가가 불가피할 경우 우려되는부분도 많다. 국채증발은 장기금리 상승과 엔고를 부추겨 결과적으로 경기회복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다. 이것이야말로 (아직까지는) 금융완화에 난색을 표하고 있는 일은의 딜레마이기도 하다.바야흐로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경기가 정권의 운명을 좌우하는 시대를 맞고 있다. 일은도 경기로부터 완전히 별개로 움직일 수는 없을것으로 보인다. 결국 통화 확대를 포함한 종합경제대책 발표가 초읽기에 들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