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채ㆍCP발행 등 차입경영 일관 ... 외환위기로 직격탄

32년 대우 신화가 막을 내렸다. 신화의 주역인 김우중 회장도 서둘러 무대를 빠져나오고 있다. 무대에는 공허함이 감돈다. 관중들은「미완의 신화」에 씁쓰레하다. 「샐러리맨들의 우상」이었던 김회장의 퇴진은 충격적이다.독일에 머물고 있는 김회장은 지난달말 측근에 사의를 전해왔다. (주)대우 대우자동차 대우중공업의 대표이사직을 내놓겠다는 뜻이다. 김회장의 사의표명에 따라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이 추진중인 대우 계열 12개사 사장들도 1일 구조조정위원회에 사표를 제출했다. 김회장을 포함한 계열사 사장의 퇴진은 곧 대우의 해체를 의미한다.이제 남은 문제는 경제에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수습방안을 찾는것이다. 또 대우 신화의 몰락을 지켜 보며 교훈을 얻어야 한다. 그래야 비슷한 사태발생을 막을 수 있다. 김 회장에 대한 평가는 시간을 두고 냉정하게 이뤄져야 한다. 인간에 대한 평가를 즉결심판하듯서둘 필요는 없다. 김회장의 공과는 훗날 역사가 평가할 것이기 때문이다.대우 몰락의 가장 큰 요인은 역시 무리한 차입 경영이었다. 차입 경영은 확대경영을 뜻한다. 기회가 주어지면 부실 기업을 인수하고 해외 투자사업을 벌이는 것이다. 대우가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것도 빚이 많았기 때문이다. 대우는 지난 97년말 외환위기가 터진 이후에도 「세계경영」을 내세우면서 밀어내기식 수출을 계속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주)대우의 경우 지난해 매출액 증가분 13조원중약 70%인 9조원 정도가 해외지사에 대한 외상매출을 통해 달성된수치다. 대우는 막대한 자금수요를 자산매각이나 비용축소 등 자구노력에 의해 조달하기보다 회사채나 기업어음(CP) 발행 등을 통해조달해왔다.이에따라 은행이나 2금융권의 여신은 소폭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대우그룹 총차입금은 43조9천억원으로 15조2천억원 불어났다.◆ 유럽 금융계 큰손으로 불려흔히 김우중 회장을 일컬어 「금융의 귀재」라고 부른다. 그만큼 재무감각이 탁월하고 셈이 밝다. 김우중 회장은 지난해 12월 전경련출입기자들과 간담회를 가지면서 외환위기가 터지기 전에는 리보(런던 은행간 금리)수준으로 얼마든지 돈을 빌릴 수 있었다고 말할정도였다. IMF(국제통화기금)사태로 자금운용에 차질을 빚게 된대우의 어려움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이다.특히 대우가 지난 93년부터 세계경영의 일환으로 동유럽 투자를 강화하면서 김회장은 유럽 금융계에서 큰 손으로 불렸다. 이같은 명성을 바탕으로 전세계 2백여개의 금융기관을 접촉하면서 자유자재로달러를 끌어쓸 수 있었다.김회장의 금융 수완은 대우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성품에 자금조달 능력까지 갖추고 있으니 확대경영은 순풍에 돛단듯 가속도가 붙었다. 세계 경영도 마찬가지였다. 국내외 경제전문가들은 막대한 해외투자 자금을 어떻게 조달하는지 의아스러워했다. 해답은 역시 대우만의 과감한 파이낸싱기법에 있었다.예를 들어 폴란드 FSO의 경우만 해도 총투자액 11억달러중 순전히대우가 자기자금으로 조달한 금액은 4천4백만달러에 불과했다. (주)대우에서 해외투자관리를 해온 직원은 대우 해외법인의 재무구조는 대개 자기자본과 차입금이 4대6으로 구성된다고 말했다. 따라서FSO가 갖춰야 할 자기자본은 총투자액의 40%인 4억4천만달러. 이중폴란드측 지분 50%를 빼면 2억2천만달러가 대우몫이다. 그런데 해외법인의 자본금에 대해서는 수출입은행에서 80%까지 빌려주므로대우가 자체적으로 마련해야 할 돈은 4천4백만달러이다.대우가 막대한 규모의 해외투자를 서슴없이 밀어붙인 데에는 바로이런 금융 노하우가 바탕이 됐다. 대리급만 돼도 해외에 나가면 현지금융을 일으키는 방법부터 파악하는게 대우의 생리다.그러나 대우 경영진이 가졌던 파이낸싱에 대한 자신감은 외환위기사태로 무용지물이 됐다. 해외 금융기관은 자금 회수에 들어갔고 대우는 돈줄이 꽉 막혀 숨을 쉴 수 없었다. 사업에 따르는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대우는 스스로 부른 재무 리스크의 함정에 빠져 쇠락의 길을 걷게 됐다.★ 김우중 회장의 '경영인 32년' / 열정넘친 영원한 '샐러리맨 우상'김우중 회장은 명예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낙천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경영인이다.그는 『실패가 두려워 일을 벌이지 못하는사람은 평생동안 성취의 기쁨을 맛볼 수 없을 것』이라고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에서 강조했다. 아무리 어려운 문제도 연구하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경영철학이었다.외환위기가 터지자 그는 수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수출이 늘어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면 국가 신용이 회복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98년초 김회장은 5백억달러의무역수지 흑자를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김회장은 무역수지흑자 5백억달러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방안까지 내놓았다. 가동이 중단된 설비를돌려야 한다는 것이다.김회장은 전경련을 취재하는 기자들을 만날때마다 유휴 설비를 가동할 수 있는 방안에대해 설명했다. 투자와 소비를 줄이고 대신가동을 늘리면 우리 경제의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외환위기 이후 대우 계열사들이 수출 선봉에 선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김회장은 대우그룹 오너이면서도 소유보다경영을 중시해왔다. 그는 부자가 아니라 훌룡한 전문경영인으로 기억되는게 꿈이었다.김회장은 3, 4년전부터 그룹 사장단 회의에서 자식에게 기업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밝혔다. 샐러리맨들의 우상이 될 수 있었던 것도그런 이미지 때문이었을 것이다.일에 대한 열정도 모든 경영인의 귀감이 될만했다. 김회장은 시간을 아껴 쓰는 경영자였다. 해외 출장중 기내에서 잠을 자고 아침에 곧바로 비즈니스 활동을 하는 그룹 총수라는 이미지를 굳혔다. 그는 대우 임직원들에게 시간은 아끼되 땀과 노력은 아끼지 말것을 요구했다. 대우중공업의 전신인 한국기계를 인수할 때나 옥포조선소를 정상화시킬땐 작업복 차림으로 노동자들과 동고동락했다. 그는 땀을 흘리면 결실은 자연스럽게 맺게 된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체득했다.이런 열정 때문에 김회장은 해외에서 명망을쌓았다. 지난달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세계적인 거물을 초대해 서울에서 자문단 회의를열 수 있었던 것도 김우중 회장이 있었기에가능했다. 행사를 준비했던 전경련 직원들도이렇게 성황리에 행사를 열게 될지 몰랐다고말할 정도다.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리콴유 전 싱가포르 수상 등은 김회장과 오랜 친분을 맺어온 인사들이었다. 국제자문단의 일원으로 서울에 온 퍼시 바네빅 ABB회장은 『김회장은 자신의 호주머니보다 기업을 먼저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키신저 전미국무 장관도 대우사태가 원만하게 처리되길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김회장은 누가 뭐라 해도 우리 시대 스타였다. 국민경제에 부담을 준데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경제를 보는 안목이나 일에 대한 열정은 후배 경영자들이 배웠으면 하는바람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