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11월15일. 그동안 우여곡절이 많았던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문제가 사실상 확정됐다. 중국이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에 복귀를 신청한지 꼭 13년만에 희망사항이 이루어진 셈이다.다소 「의외다」 할 정도로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미중간 합의는 이번에는 중국이 더 적극적이었다. 그동안 미국은 WTO 가입을 빌미로 많은 분야에 걸쳐 시장개방을 이끌어 내려는 의도였다. 반면 중국은 가능한한 개방시기를 늦추고 그 폭도 줄이려는 과정에서 공전(空轉)만 거듭됐다.문제는 금년들어 중국경제가 더욱 침체의 늪에 빠져들었다는 것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날로 악화되는 대미 무역불균형으로 미국의 통상압력은 가중됐다. 이런 상황에서 21세기 새로운 교역질서 틀을 제공할 뉴라운드 협상은 목전에 다가왔다.만약 중국이 금년내에 WTO에 가입하지 못한다면 가입조건이 더 까다로워질 뿐만 아니라 뉴라운드 성격상 오는 2004년 이후에나 가입논의를 재개해야할 상황이다. 결국 중국은 미국의 요구를 대폭 수용하는 선에서 이번에 서둘러 미국과 합의를 봤다.물론 미중 협상에서 중국의 WTO 가입이 합의됐다 하더라도 곧바로 정회원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앞으로 세가지 절차를 밟아야 한다. 우선 미국은 이번 합의내용에 대해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우리와 달리 국내법 우선의 원칙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미 의회내에서는 중국의 인권문제로 반대하는 시각이 있으나 중요한 순간에는 행정부의 손을 들어주는 과거의 관례로 볼 때 이 문제는 무난하게 승인될 것으로 보인다.중국도 남아 있는 쿼드(quad)국인 유럽연합(EU)과 캐나다의 양해를 구해야 한다. 현재 미중간 합의내용으로 봐서는 별다른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이런 절차만 해결되면 현재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WTO 총회에서 회원국의 3분의 2의 승인을 구하는 문제도 비교적 쉽게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향후 중국이 WTO에 가입하게 되면 세계경제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아시아 외환위기로 균열될 조짐을 보였던 WTO의 기능강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경제대국이자 개도국의 주도국격인 중국을 끌어들일 경우 명실공히 WTO가 전세계를 대표하는 기구가 되기 때문이다.세계 경제질서도 북미와 유럽,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3대 광역경제권으로 급속히 재편될 것이다. 국제통화질서도 달러화와 유로화, 아시아 단일통화(엔화 혹은 위안화)간의 3극 통화질서가 구체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이런 환경하에서 환율운영체계는 3극 통화간의 환율움직임에 상하변동폭을 설정하는 목표환율대(target zone)가 도입될 가능성이 높다.◆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그러면 우리 경제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크게 세가지 측면에서 커다란 변화가 예상된다.첫째, 대중 무역에 미치는 영향이다. 물론 기관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나 한국과 중국의 수입수요탄력성을 이용한 무역수지를 추산해 보면 약 15억달러의 대중 무역수지 개선효과가 기대된다. 대중 수출은 44억달러가 증가되는 반면 중국으로부터의 수입도 29억달러 정도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업종별로는 오는 2005년까지 전품목의 관세철폐가 예상되는 정보통신 업종이 가장 유망해 보인다. 특히 한중간의 업종별 경합관계와 경쟁력을 검토해 보면 반도체, 정보통신장비, 컴퓨터, 초고속 통신망에서 상당한 규모의 수출증대가 예상된다. 이보다 못하지만 관세인하폭이 큰 도소매업, 운수업종(자동차)과 이번 협상에서 시장개방에 합의한 보험, 통신, 항공 등 서비스 분야도 혜택이 예상된다.둘째, 국내기업의 대중 진출과 이에 따른 기업내 수출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향후 중국이 WTO의 회원국이 되면 그동안 국내기업들의 대중 진출을 가로막았던 중국산 원부자재 사용(local content ratio) 의무와 수출이행의무, 외환수지 평형의무와 같은 무역관련조치(TRIMs)가 폐지돼야 되기 때문이다.이 경우 국내기업들은 구조조정에 따른 내부적인 문제점만 어느 정도 해결되면 92년 중국과의 수교 당시에 이어 제2의 중국진출 붐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국내기업들의 중국진출에 따라 과거와 달리 부품과 원부자재 수출은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셋째, 미국 등 제3국 시장에서는 아무래도 값싼 중국제품에 의해 우리의 시장잠식이 예상된다. WTO 가입 이후 중국이 관세를 인하할 경우 원자재 가격뿐만 아니라 물가가 하락할 것으로 보여 중국제품의 가격경쟁력이 더욱 제고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특히 제3국 시장에서 중국제품과의 수출경합관계가 급속히 높아지고 있는 백색가전제품, 석유화학, 금속류, 기계장비 업종은 시장잠식이 클 것으로 보인다. 제3국 시장에서의 시장잠식으로 약 5억달러의 무역수지 악화가 예상된다.이밖에 중국이 WTO에 가입할 경우 뉴라운드와 같은 국제협상에서 중국과 보조를 맞춰 나갈 경우 우리의 국익을 개진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개도국의 주도국격인 중국이 지금까지 선진국 위주의 국제질서에 제동을 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수출상품 고도화 달성해야이런 점을 감안하면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중국의 WTO 가입이 확정될 경우 일단은 긍정적인 효과가 커 보인다. 문제는 중장기적으로 중국이 경쟁과 효율에 입각한 체제로 바꿔 나가면 경쟁력이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현 시점에서 우리 차원에서 나름대로 대책이 있어야 함을 시사해 주는 대목이다.무엇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구조조정을 조기에 매듭짓고 수출상품의 고도화를 시급히 달성해야 한다. 특히 정부는 경쟁력이 없는 산업의 시장퇴출과 업종전환을 촉진하기 위해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동시에 품질, 디자인과 같은 가격 이외의 경쟁력을 제고하는 방안도 강구돼야 한다. 중국이 WTO에 가입한 이후에는 지금까지 가격경쟁력에 의존해 왔던 우리 수출상품은 대부분 중국제품과의 경쟁에서 밀린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마지막으로 중국이 WTO에 가입한 이후 개방폭이 크게 확대될 것으로 보이는 금융, 유통, 통신 등 서비스 시장에 진출을 강화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중국과의 서비스 교역이 절대적으로 미진하다. 특히 기존의 제조업 투자에 있어서는 관련 서비스 업종과 패키지로 진출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