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세계무역질서를 규정할 뉴라운드 협상이 출범단계부터 난항을 겪고 있다. 지난 달 말부터 미국 시애틀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무역기구(WTO)각료회의의 성공여부가 극히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당초 각국 대표들은 무엇을 어떻게 논의할지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회담에 임했었다. 일부 개도국은 자신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다며 아예 협상에 참여하지 않기도 했다.WTO 회원국 대표들은 지난 19일부터 23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 모여 WTO 각료회의에서 채택할 선언문 초안 작성 작업을 벌였으나 합의를 이끌어 내는데 실패했다. 미국 유럽연합(EU)일본 등 주요 협상 당사국들은 종전의 주장만을 되풀이했다. 특히 미국은 협상시한을 감안, 의제를 농업 서비스 등 일부 분야에 국한할 것을 주장, 반덤핑 등의 문제를 포함시키자는 EU 일본 등과 대조적인 입장을 고수했다.그 결과 각국 대표들은 의제설정을 사실상 포기, 공동성명을 발표하지 못하고 회의를 끝냈다. 이에따라 이번 각료회담에서는 초안대신 10월19일 발표한 성명을 선언문의 기초로 사용하게 될 전망이다. WTO 회원국들이 10월에 발표한 성명은 그러나 농업 등 각 분야에 대해 각국의 입장을 제시한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 성명을 갖고는 공통의 주제를 갖고 회의를 진행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지적이 지배적이다.회의를 둘러싼 상황이 이처럼 어려운 국면을 맞자 파스칼 라미 EU 무역담당 집행위원은 『우리는 아슬아슬한 고비를 맞고 있다』며 뉴라운드 협상이 예정대로 진행될지에 대해 의구심을 표명했다.◆ 미국은 느긋한 입장이같은 상황에서 인도 파키스탄 이집트,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와 일부 아프리카 국가 대표들은 최근 WTO 각료회담에서 자신들의 요구가 검토되지 않을 경우 뉴라운드 협상이 시작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이들은 특히 농업과 섬유 분야에서 자신들이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의 혜택을 보지 못했다며 혜택기간을 연장하고 기술적, 재정적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보장해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이처럼 뉴라운드 협상의 앞날에 암운이 드리워지고 있으나 협상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미국 정부는 다소 느긋한 입장이다. 샤를린 바셰프스키 미 무역대표부 대표는 『원래 협상이란 깨졌다가 재개되고 또 깨졌다가 재개되는 것아니냐』며 협상의 진행에 대해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국은 막상 각료회담이 진행되면 정치력을 발휘,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회담을 이끌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클린턴 대통령이 각료회담 기간중 정상회담을 제의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한편 우리정부는 농산물 분야, 특히 「쌀」 문제는 이번 회의에서 아예 거론할 여지도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지난번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에서 한국 쌀시장 개방은 오는 2004년에 다시 협상키로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농산물 분야 시장개방에 대해서는 일본 EU 등과 공조를 취해 미국이나 케언즈 그룹에 대응해 나갈 계획이다.서비스 부문 개방과 관련, 우리정부는 『모든 서비스 분야를 협상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원칙에는 동의했다. 그러나 세부 협상에 들어가면 우리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영화상영업 교육 의료 법률서비스 등의 분야에서는 개방속도를 최대한 늦춘다는 전략이다. 서비스 시장 개방은 각 선진국들도 일정 분야에서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만큼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지만은 않은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