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구조 건전...가장 오래 버틸 철강업체로 뽑혀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제조업체」「1998년 기준 세계 최대의 철강업체」「경쟁력 세계 1위의 철강업체」. 포항제철에 따라붙어 온 화려한 수식어들이다.포항제철이 기간산업으로 80년대와 90년대 한국의 경제성장을 선도해왔다는 데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과연 21세기에도 한국경제의 선도기업이 될 수 있을 것인가.뉴밀레니엄은 정보통신 유통서비스 등 소프트산업이 주도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대표적 중후장대산업인 철강업은 쇠퇴할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그럼에도 산업은행 지분해소를 통해 완전민영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대기업들의 관심은 대단하다. 외국투자자들 역시 여전히 포철 투자에 매력을 느낀다. 철강업 일반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 포항제철에 있다는 증거다.무엇보다도 포철은 국내 제조업체 중 보기 드물게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포철은 쇳물부터 시작, 최종철강재를 생산해내는 일관제철업체(고로업체)로서 원가경쟁력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철강업 전문지인 월드 스틸 다이내믹스(WSD)의 자료에 따르면 열연코일 1t을 생산하는 비용이 2백17달러(올해 3월 기준)다. 이는 일본 5대 고로업체(t당 2백69달러)나 미국 고로업체(t당 3백6달러)의 제조원가보다 훨씬 낮은 것이다. 중국(2백45달러)보다도 적다. 열연을 자동차 및 가전제품에 쓰는 강판으로 만드는 냉연 제조원가 역시 t당 2백82달러로 브라질과 함께 세계 1위. 일본은 이것이 3백75달러, 미국은 4백12달러이다.생산성면에서도 세계 최고의 자리에 있다. 1인당 생산량에서 포철은 1천3백54t으로 종전 이 분야 최고였던 일본 신일철(1천3천48t)을 제쳤다. t당 노무비 역시 61달러로 중국(51달러)보다는 비싸지만 일본(1백62달러) 미국(1백59달러) 독일(1백52달러)보다 크게 낮다. 원가경쟁력만이 포철의 경쟁력을 설명해주는 요인은 아니다. 기술경쟁력도 갖추고 있다.차세대 핵심기술의 하나로 꼽히는 스트립 캐스팅 기술 등 다수의 핵심기술을 보유했거나 개발중이다. 전체 종업원 중 연구개발인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2.4%. 신일철(2.6%)에 크게 뒤지지 않는다. 연구개발비는 올해 1천4백억원(매출액 대비 1.3%)에서 내년에 1천7백억원으로 매출액 대비 1.5%로 높아진다. 신일철은 94년 3.22%에서 97년 2.15%로 줄이고 있다.◆ 경영진 우수성도 성장 열쇠신기술 개발 성과를 보여주는 특허출원도 늘고 있다. 포철의 특허출원건수는 92년에 연 4백73건에 불과했으나 98년에는 2천1백50건에 달했다. 같은 해에 신일철은 약 2천1백건을 출원한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절대 연구개발액수나 기술의 질적인 측면에서는 아직 신일철을 따라잡았다고 할 수는 없다.경영진의 우수성도 빼놓을 수 없다. 98년3월부터 포철을 이끌고 있는 유상부 회장과 이구택 사장 둘다 서울대 공대를 졸업하고 포철에서 잔뼈가 굵은 엔지니어 출신이다. 철강을 아는 기술자출신의 전문경영인이 투명경영을 펼치는 것은 외국투자기관과 투자자들이 가장 높게 평가하는 부분이다. 기술자가 홀대받다보니 기술개발이 부진하고 소유주에 의한 무모한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다른 기업과는 다르다.포철의 투명경영은 투자가와 주주들에게 경영정보를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IR(Investor Relations)활동에 공을 들이는 데서도 나타난다. IR팀 발족 후 포철주가는 지난 4월 대비 1백% 올랐고(시장평균상승률 30%수준) DR를 원화로 환산한 가격도 한국물 DR중 가장 높은 10%대의 프리미엄을 유지하고 있다.90년대 초반 성숙단계에 들어서기까지 공기업이면서도 경쟁력없는 관료들의 낙하산인사로 멍들지 않았던 것도 포철 조직의 강점이다. 정치적 평가는 다를 수도 있지만 박태준 전 회장은 낙하산인사의 바람막이가 됐고 포철이 30년만에 세계 최우량 철강업체로 올라서는 기반을 다졌다.재계 서열 10위내에 들 수 있는 규모이면서도 재무구조가 건전하다는 것도 강점이다.지난해부터 부채와 부실투자를 줄여 총부채 대비 자기자본비율은 올들어 50%를 넘어섰다. 매출액대비 경상이익률(98년말 12.7%)과 순이익률(10.08%)은 지난해에 두자릿수 증가를 기록했다. 올해도 내수호조와 엔화가치 상승에 힘입은 수출증가로 매출 11조1천2백억원, 당기순이익 1조1천2백억원 정도의 이익을 기록할 전망이다.이 때문에 모건 스탠리는 올 3월에 발표한 「세계철강산업 분석자료」를 통해 『포스코의 종합적인 경쟁력이 전세계 철강업체 가운데 최상위』라고 지적했다.물론 장애요인도 있다. 단기적으로 최대의 현안은 과잉설비. 유회장은 올해 초 포철이 『4조5천억원 규모의 해서는 안되거나 시기를 잘못 택한 투자를 했다』고 밝혔었다. 완공하고도 가동하지 못하고 있는 광양 제5고로와 제2미니밀, 광양 4냉연공장, 베네수엘라와 브라질 현지 합작공장 등이 그것이다. 부실자산처분 차원에서 미니밀과 창원특수강 등은 매각대상으로 내놓았으나 원매자가 없는 형편이다.◆ 과잉설비·덤핑제소 최대 현안이는 김영삼 정부시절 외부에서 영입된 포철경영진과 정부고위층의 철강수요전망에 대한 오류에서 빚어졌다. 당시 정부의 견제를 받던 현대그룹이 일관제철소 건설을 추진했음을 고려하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미국 유럽 등에서 늘고 있는 반덤핑제소도 포철의 해외시장 확대에 장애요인이다.그럼에도 포철은 뉴밀레니엄, 적어도 21세기 초반까지는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토대로 한국경제를 선도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철강산업 자체가 기간산업으로서의 역할을 당분간 지속할 전망이다. 또 철강재를 소재로 쓰는 자동차와 전자산업이 21세기에도 한국경제 및 세계경제에서 중요한 비중을 가질 것이다. 21세기형 철강수요구조변화에 대비, 초경량차체용 강판과 자동차타이어코드 등 고급강 생산을 늘리는 것도 포철의 시장전망을 밝게 해준다. 21세기에도 포항제철을 제외하고 한국의 제조업을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모건 스탠리가 철강산업환경과 업체별 종합경쟁력을 분석한 결과, 포철은 「생존가능성연한(sustainability) 15년」으로 가장 늦게까지 살아남을 철강업체로 꼽혔다. 신일철은 10년, 중국 인도 등 대부분 국가의 철강업체들은 5년 이내에 사라질 것으로 예상됐다. 철강업이 지구위에서 사라지는 날까지 포항제철은 살아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