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장비 완전국산화, 매출ㆍ수출 호조 '고속 성장'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서 능골삼거리를 지나 광주로 빠지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오른쪽 야트막한 언덕에 모양을 달리한 하얀 신축건물들이 들어선 곳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이 요즘 반도체 관련업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주성엔지니어링(주)의 공장이자 본사다. 이 회사가 눈길을 끄는 이유는 간단하다. 전량 수입에 의존했던 반도체 전공정장비인 화학증착장비(CVD)의 완전 국산화는 물론 해외수출까지 하는 등 탄탄한 기술력에 바탕을 둔 성장기업이기 때문이다.CVD는 실리콘 기판(웨이퍼)위에 절연체나 전도체 등의 얇은 막을 입히는 장비로 반도체 수율을 좌우하는 핵심적인 반도체 전공정 장치. 대당 30억원을 넘는 고가의 장비다. 외국 반도체 관련업체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던 황철주사장이 지난 93년 직원 2명과 함께 「기술독립」이란 목표 아래 연구개발에 들어가 2년간의 연구 끝에 완전국산화에 성공한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회사설립후 매년 1백% 이상의 매출액 증가라는 고속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올해에는 회사설립 4년만에 1천만달러 수출이라는 경이적인 실적도 거뒀다.◆ CVD 국산화 성공 ‘경계 대상 떠올라’반도체장비산업은 초기에 과도한 투자비용이 필요한데다 기술발전으로 라이프사이클이 점차 짧아지고 있어 몇개의 업체를 제외하고는 영역이 세분돼 전문화가 이뤄지는 특성이 있다. 게다가 『경쟁환경이 치열하고 최고만이 선택되고 살아남는 분야』(이영곤 영업이사)다. CVD만 해도 미국의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AMAT)사와 일본의 도쿄일렉트론(TEL)사 등이 시장을 나눠 갖고 있다시피 하고 있다. 반도체 강국이라는 한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장비만큼은 이들 외국산이 생산라인을 장악하고 있었다.이런 상황에서 주성의 화학증착장치 국산화는 국내 반도체 업계로서는 파격적인 일이었다. 게다가 웨이퍼의 낱장처리가 가능하고 저압식이어서 램프를 열원으로 사용하는 기존제품에 비해 안정성이 뛰어나고 모든 영역의 화학증착공정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 등 모든 면에서 경쟁력을 갖춘 것이었다.하지만 『처음 개발하겠다고 했을 때나 국산화에 성공한 후에도 국내 기술로는 (화학증착장치의 개발과 제조가)불가능하다는 의심에 누구도 믿어주지 않았을 정도였다』는게 황사장의 기억이다.시제품을 만들고 이름을 「유레카(Eureka) 2000」으로 붙였다. 제품의 우수한 성능과 외국산과 비교해 저렴한 가격으로 「유레카 2000」은 곧 국내 반도체 제조업체의 생산라인에 투입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자신을 얻은 황사장은 해외수출을 시도했다. 첫 대상은 대만. 조그만 회사에서 개발·판매하는 30억원이 넘는 장비와 사후서비스를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는 불신이 강했지만 결국 수출계약은 성사됐다. 『대만 바이어가 제품의 성능과 기술력을 보고 수입을 결심했다는 말을 들었으며 그때 가장 기뻤다』는게 황사장의 설명이다. 국내 반도체 전공정장비로는 처음으로 3백만달러어치의 해외수출이 이뤄진 것이다. 그게 지난 97년11월. 그후 「유레카 2000」과 주성엔지니어링이란 이름은 몇몇 업체가 세계시장을 나눠 갖다시피 했던 반도체 전공정장비업계에서 경계의 대상으로 떠올랐다.『미국 일본 등의 경쟁업체에 비해 마케팅이 뒤지는 상황에서 꾸준한 기술개발과 신제품만이 고객수요에 대응하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주성엔지니어링의 연구·개발인력은 세계적인 수준입니다.』 엔지니어출신의 경영인답게 황사장은 전직원 2백10명 가운데 42%인 90명의 연구 개발인력을 확보하고 있다. 『매년 전체 매출액의 15% 이상을 R&D에 투자해왔으며, 올해에는 훨씬 많은 돈이 들어갔다』는게 황사장의 설명이다.◆ 전체 매출액 15% 이상 R&D 투자이러한 연구개발로 주성엔지니어링은 각종 반도체생산에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새 기술과 제품을 선보였다. 지난해 7월에는 액체상태인 각종 반도체 증착물질을 기체상태로 웨이퍼에 도포하는 유기금속화학증착(MOCVD)공정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장비를 선보였다. 칩크기를 줄이고 형성속도를 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고집적 반도체생산에 도입될 구리 등의 화학물질증착에도 적용이 가능한 첨단 기술이다.올해 초에는 웨이퍼증착과정에서 각종 반도체증착막의 균일도와 신뢰도를 획기적으로 높인 고밀도 플라스마 화학증착(HDPECVD)방식의 장치를 선보였다. 이 두 장치는 64MD램에 적용되는 기존장치와 달리 앞으로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256MD램 이상의 고집적 메모리반도체 제조에 사용될 차세대 기술들이다.최근에는 삼성전자와 공동으로 원하는 부분에만 막을 형성할 수 있는 선택적 에피웨이퍼 성장기술(SEG)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상용화하는 개가를 올리기도 했다. 비메모리반도체분야에서 필요한 기술로 7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세계시장에 한발 앞서 진출한 것이다.뿐만 아니다. 2001년경 집중적인 투자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12인치(3백mm)웨이퍼용 공정장치를 개발해 「유레카 3000」이란 이름으로 이미 반도체 생산업체의 파일럿라인에 공급한 상태다.이러한 기술개발과 제품 버전업으로 주성엔지니어링의 이름이 높아지면서 판매도 호조를 띠기 시작했다. 반도체장비제조의 선진국인 미국 일본 등으로부터의 수출주문도 밀려들었다.IMF로 여타 반도체장비업체들의 매출이 크게 줄어들었던 지난해에도 오히려 시장점유율 1백%를 이루며 매출액이 5백2억원으로 급증했다. 수출도 지난해에 미국에 처음 수출한데 이어 지난 9월에는 일본에 연간 CVD시장 규모(2천5백억엔)의 5%에 달하는 약 25억엔(약2백60억원)어치의 수출계약을 맺는 등 점차 물량이 늘어났다.게다가 주성엔지니어링이 만드는 제품의 매출원가율은 58%에 불과해 매출대비 영업이익률이 33.8%에 달한다. 그만큼 수익성이 뛰어나다. 『이러한 매출증가로 부채비율도 33%에 불과한 안정된 재무구조를 갖추게 됐다』는 황사장은 『올해에는 매출 6백76억원에 1백10억원의 순익을 무난히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기술독립군’ 자임, 해외공략 본격화「세계 10대 반도체장비 메이커」. 주성엔지니어링의 21세기 비전이다. 성장엔진은 역시 신기술과 신장비다.주성엔지니어링은 선도기술을 창출할 수 있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내년을 세계 10대 반도체장비업체로의 진입을 위한 원년으로 잡고 있다. 발판은 다양한 장비공급이다. 황사장은 『지금까지는 유레카 한 모델에만 주력했지만 내년에는 로직디바이스용장비를 포함한 5개의 상용화 장비를 갖고 국내보다 시장규모로 4~5배 정도 큰 외국시장을 적극 공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내년 2월의 LCD용 화학증착장비, 6월의 에칭장비 등의 공급일정을 잡아놓고 있다. 아울러 이미 설립된 미국지사와 함께 일본 대만 싱가포르 등에도 현지법인을 설립해 공격적으로 해외영업에 나설 예정이다.『내년 매출 2천2백억원을 목표로 세웠습니다. 하지만 내년 이후로는 성장세가 크게 점프(jump)할 것입니다. 매년 몇배 이상 늘어날 것입니다. 주성엔지니어링에는 선수들이 많습니다. 반드시 세계 10대 반도체장비업체로 진입할 것입니다.』 그 누구도 믿지 않았던 반도체 장비분야에서 맨손으로 세계 첫손에 꼽히는 기술과 장비를 만들어낸 황사장이 밝힌 「기술독립군 주성엔지니어링」의 밀레니엄을 맞는 각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