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칼텍스정유, 신뢰기반 탄탄 … 주택은행은 민영화후 도약세

『회사에 나오면 일하는 재미가 있어요. 월급도 다른 곳보다 많은 것 같구요. 여자라고 해서 승진이나 교육 연수 등에서 크게 차별받는 선배나 동료는 아직 못봤습니다.』1998년1월 LG칼텍스정유에 입사한 정현주씨(영업기획팀)는 타기업체에 취직한 친구들을 만나면 자신이 괜찮은 회사에 들어왔음을 느낀다. 다른 회사 다니는 친구들로부터 일할 맛이 안난다는 하소연을 많이 들었다. 윗사람이 일방적으로 정한 회식날짜를 당일 알려주고는 『선약이 있어 빠지면 듣기 싫은 소리를 한다』는 것이다. 같은 시험 쳐서 입사한 동기인데도 여자는 남자보다 호봉도 적고 이른바 한직으로만 순환보직을 시키는 회사도 있다고 한다.『우리 회사는 공정한 편인 것 같습니다. 특별히 권위적인 상사도 없구요. 저도 주유소관리 현장근무 ERP(전사적자원관리시스템)세팅 등 남자동기들과 마찬가지로 순환보직을 하며 일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래서일까. 『좀더 많은 월급을 제시하면서 오라는 다른 회사가 있어도 가지 않을 것』이라고 정현주씨는 말한다. 일하는 재미가 없는 직장은 월급이 많아도 싫을 것 같아서이다.◆ 실수 두려워 하지 않아 적극성 발휘국내 처음 실시된 이번 신뢰경영지수조사사업결과 LG칼텍스정유(대표 허동수 부회장)는 국내 기업중 신뢰기반이 가장 탄탄한 것으로 나타났다.권위주의적인 한국기업 풍토에서 돋보이는 이 회사 신뢰경영의 비결은 무엇일까.우선 상명하복식 분위기가 아닌 자율적이고 합리적인 분위기이다. 직영주유소관리팀 이두상과장은 『상사 지시를 따르느라고 허덕이게 마련인 입사 1, 2년차 시절에 우리 회사에서는 타기업체 과장 부장급이 내리는 의사결정을 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또 미국 칼텍스와 1986년까지 공동경영을 한 합작회사인 탓에 퇴근시간인 오후 6시 이후에도 윗사람 눈치보느라 버티는 일은 드물다.둘째로 실수를 용인하는 문화다. 인사부문장인 김춘한상무는 『어떤 업무든 정도 범위안에서 실행됐다면 실수가 생겨도 묻어둔다』고 말했다. 실패에 대한 문책을 걱정하지 않아 적극적으로 일할 수 있다.셋째, 인재에 대한 과감한 투자이다. 내부선발 과정을 거쳐 국내 대학원에서 공부할 경우 1백% 학비를 내준다. MBA 등 외국 유학시에도 학비와 생활비를 회사가 지원한다.넷째, 다양한 후생복지제도다. 직원 본인이나 배우자가 질병, 부상으로 치료받을 땐 본인 부담 비용의 절반을 회사가 대준다. 지방 발령시 부임지가 경기도권밖이고 가족과 함께 가는 경우 급여는 두 배가 된다. 성과주의 문화도 정착돼 있다. 부서 및 개인차원에서 회사의 수익성 향상에 기여를 하면 수익의 5%는 인센티브로 돌아간다.이때문일까. 국내 대기업의 이직률이 4∼6% 수준이라는데 LG칼텍스정유의 이직률은 1∼2% 수준(김상무)이다. 그것도 대개 『공부하거나 창업을 하기 위해서이고 다른 회사로 옮기기 위한 이직은 거의 없다』(하영호 인재개발팀장)는 것이다.수치로 본 인력 생산성도 세계적 수준이다. 지난해의 매출은 약 8조원. 직원수가 2천6백81명이니까 1인당 매출액이 거의 3천억원에 달한다는 계산이다. 『제조업체 가운데 국내 최고 수준이고 세계적으로도 5위권』이라고 이영원 홍보팀차장은 설명한다. IMF기간중인 1998년에 민간기업중 최고의 수익(3천2백96억원)을 올렸고 감원이 없었던 것도 이 회사의 분위기를 설명해준다.◆ 경영진 신뢰 토대로 자부심 대단LG정유에 이어 두번째로 높은 평가를 받은 주택은행(행장 김정택)에서도 이같은 「분위기」를 관찰할 수 있다.주택은행은 특히 민영화에 힘입은 최근의 도약세가 이 은행 직원들의 자부심과 경영진에 대한 신뢰기반의 토대가 되고 있다. 1990년에 입사한 구의동지점 최인식대리는 『복리후생 수준은 국책은행시절보다 못한데도 전체적 분위기는 최근에 오히려 좋아졌다』고 밝힌다. 정부간섭이 많던 시절에는 서류하나 내도 수많은 단계를 거쳐야 했고 매너리즘과 나태함이 많았다는 것. 그러나 민영화와 새 행장이 온 이후 쉴새없는 경영혁신 등으로 주택은행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행원으로서의 자부심도 높아졌다고 한다. 『예전에는 다른 은행의 사례를 배우러 갔지만 이제는 다른 은행에서 우리 은행에 배우러 온다』고 말한다.주택은행의 주가 추이는 이같은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IMF의 영향도 있지만 1998년 3천~4천원대이던 것이 1999년12월말 3만6천원대로 10배 이상 뛰었다. 결국 신뢰가 경영의 토대가 되고 직원들이 자부심을 느끼는 훌륭한 일터는 경영실적도 좋다는 경험법칙의 타당성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미국 기업 사례 / 포천지 선정 '일하기 좋은 1백대 우수기업' 특징‘가정과 일터 조화’가 공통 분모레버링 GPWI소장과 포천지가 뽑은 「일하기 좋은 1백대 우수기업」들의 최대공통점은 의외로 「가정과 일터의 조화」로 요약됐다. 물론 경제적 보상도 중요하다. 1백대기업 중 관대한 스톡옵션제도를 가진 업체가 36개나 된다.그러나 스톡옵션이 없어도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일하고 그 결과 경영실적도 좋은 회사에는 예외없이 가정과 일터를 조화시켜주는 기업정책이 있다.일하기 좋은 포천 1백대기업 중에는 사내 탁아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만도 29개나 된다. 53개 기업은 사내 대학이 있고 91개 회사는 종업원 학비를 지원해주고 있다. 직원들을 위한 심부름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근무시간을 선택할 수 있는 기업도 많다. 후생복지 차원을 넘어서 종업원들이 진심으로 대접받고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제도들이다.1위를 차지한 컨테이너스토어의 직원들은 심지어 『회사가 가족이다』 『휴가를 떠나면 회사가 그리워진다』는 반응을 보인다. 사장도 말단 종업원도 일을 함께 하고 회사가 직원의 「가족가치」를 존중해주며 직원이 대접받기 원하는만큼 대접해준다는 믿음이 형성돼 있다.지난 3년간 줄곧 상위권을 지켜온 사우스웨스트에어라인이나 소프트웨어업체인 시스코시스템, SAS 인스티튜트와 골드만삭스, 퀄컴, 화이자, 마이크로소프트, 휴렛패커드 같은 회사도 마찬가지다.경영진은 종업원의 능력과 의사를, 그리고 가족을 존중하고 일터의 분위기는 집과도 같다. 창의적 인재가 최고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21세기에 기업가치를 높이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이들 선두기업의 경영진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