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에 누워 있는 칼 마르크스는 아마도 놀랄 것이다. 그의 통찰대로 19세기 이후 진행된 산업혁명과 자본의 축적과정은 끊임없이 인간을 소외시켜 왔다. 그러나 20세기말 정보화혁명에 힘입어 이제 「인간」과 「인간관계」가 다시 경영의 중심으로 돌아오고 있다.「The War for Talents (인재확보전쟁)」. 우수인재를 확보하는 것이 21세기 기업 경영의 최대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기업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전세계를 무대로 경쟁하는 글로벌 기업 모두의 화두이다. 국내에서도 이미 정보통신관련업종 등 일부 선두업종에서 우수인력 확보전쟁이 가시화되고 있다.인재를 끌어들이는 것이 바로 신뢰이다. 경영진과 조직 동료 사이에 신뢰가 조성돼 일하는 재미가 있는 곳만이 인재들을 붙들어 둘 수 있다. 또 인재들이 신나게 일하는 곳은 경영진이 강요하지 않아도 자연히 생산성이 높아지고 기업가치도 극대화된다.조직의 변화도 일터에서 신뢰의 중요성을 부가시킨다. 지시, 명령으로 이뤄진 수직적 조직이 지식과 정보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수평적 네트워크화하기 때문에 구성원들 사이의 관계의 질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다.◆ “신뢰 조성돼야 일하는 재미있다”포천지와 공동으로 미국에서 일하기에 가장 좋은 100대기업을 선정하는 로버트 레버링 GPWI소장은 이렇게 말한다.『1백년 전 미국에서 가장 가치있는 기업이었던 U.S. 스틸의 주요자산은 제철시설이었다. 오늘날 가장 가치있는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의 주요자산은 매일 집으로 돌아간다.(즉 사람이라는 뜻)』 이들 인재가 다음날도 출근하길 바란다면 일터로서의 기업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를 신경써야 한다는 말이다.<한경BUSINESS designtimesp=19385>는 지난해말 한국생산성본부, 엘테크 연구소, 미국 GPWI와 공동으로 국내 20개 기업을 대상으로 신뢰경영 조사사업을 벌였다. 연간 매출액이 1천억원이 넘고 종업원 1천명이 넘는 1백12개 업체가 대상이었다.그러나 20개 업체만이 조사에 응했다. 일차적으로는 신뢰경영에 대한 인식부족 때문이었다.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조사참여를 원치않은 업체들은 경영진에 대한 평가가 외부로 유출될까를 걱정했다.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이렇게 본다면 설문조사에 응한 20개 업체들은 그것만으로도 다른 기업에 비해 인재관리와 기업내부 신뢰도 제고에 관심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조사결과 한국 기업의 신뢰경영 수준은 아직 선진기업에 크게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우선 사원들이 회사와 경영진을 신뢰하는 정도가 미국의 1백대기업에 비해 크게 낮다. 20개 업체 4천3백45명의 응답자 가운데 31∼37%만이 경영진을 신뢰한다고 응답했다.회사경영진이 구성원들을 존중한다고 응답한 비율도 37% 수준에 머물고 있다. 공정성에 대한 평가는 가장 낮아서 31%만이 경영진이 공정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일하는 재미가 있다는 응답도 37%에 불과하다. 이들은 모두 포천 1백대 최우수기업의 40%에서 60% 범위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기업에 대한 자부심만이 48%로 상대적으로 높게 나왔다.부서단위의 신뢰도는 이보다는 다소 긍정적이다. 상사가 진실하다는 응답과 상사가 자신을 존중한다는 응답은 각각 48%에 달했다. 상사가 공정하다고 보는 직원은 43% 정도였다.특히 자신의 일과 부서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는 비율이 54%로 절반이 넘었다. 자기 부서가 일하기 재미있다는 반응도 절반이 넘었다(51%). 이것은 평균적으로 포천 1백대기업 평균의 60∼80% 범위에 위치하는 수준이다.◆ 아직 선진기업 비해 크게 뒤져역사상 유례없는 장기호황국면을 맞아 인력부족을 겪고 있는 미국기업과 비교해, 그것도 일하기에 가장 좋은 1백대기업과 비교해 이 정도면 절망할 수준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특히 LG칼텍스와 주택은행 등 일부 기업은 몇가지 범주에서 조직구성원들의 신뢰기반이 탄탄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리고 이들은 포천 1백대 우수기업이 그렇듯이 경영성과도 좋다.그러나 전체적으로 국내기업의 신뢰기반이 취약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특히 창의적인 인재들이 몰려 있는 젊은 연령층과 하위직급일수록 경영진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은 한국기업의 생산성과 경쟁력 제고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미국 선두기업들의 비즈니스 모델이 글로벌 스탠더드가 되고 있음을 감안하면 한국기업이 분발을 서둘러야 한다는 결론이다. 창의적 인재가 가치를 창출해내는 21세기의 글로벌경쟁 환경에서 승리하고자 하는 기업이라면 두말할 나위도 없다.★ 조사도구 / 레버링 신뢰경영지수(The Levering Trust Index)이번 조사는 로버트 레버링 GPWI(Great Place to Work For Institute)소장의 자문을 얻어 그가 개발한 레버링 신뢰경영지수를 조사도구로 활용했다. 이 지수는 포천지가 매년 첫 호에 발표하는 「일하기 좋은 1백대 우수기업」을 선정하는데 쓰인다.레버링소장은 지난 1981년부터 미국전역의 기업들을 대상으로 좋은 기업들의 특징을 조사 연구해왔다. 조사결과 잘 나가는 좋은 기업들 가운데서도 특별히 「더좋은」 기업이 있음을 발견했다. 그리고 좋은 기업과 더 좋은 기업을 구별하는 기준이 바로 신뢰였다. 이들 기업의 직원들은 경영진과 관리자를 진심으로 신뢰하고 있었다. 또 직원들은 업무를 재미있다고 느끼고 있었으며 동료들과의 관계도 좋았다.여기서 레버링은 「위대한 일터」라는 개념을 도출했다. 위대한 일터는 △사원들의 입장에서 경영진과 상사를 신뢰하는 곳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갖는 곳 △동료들간에 일하는 재미가 넘치는 기업으로 정의할 수 있다. 레버링신뢰경영지수는 이 정의를 토대로 개발됐다.이 지수를 적용해 미국기업을 조사해본 결과 특기할만한 결과가 나타났다. 레버링소장이 선정한 「일하기 좋은 1백대 우수기업」들이 S&P500기업보다 경영실적과 주당순이익률 등 재무지표도 월등히 뛰어났던 것이다. 이는 매년 마찬가지다. 올해 발표된 1백대 기업도 지난 3년간의 수익률이 37%로 S&P500기업의 25%를 능가한다. 즉 신뢰도가 높은 기업은 경영성과도 뛰어난 것이다. 다시 말해 투자가에게도 좋은 기업이라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