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난맥· 모방·창작표현 한계 등 현안 산적 불구, 부가가치에만 눈독
“만화를 만화로만 보면 안됩니다. 만화는 하나의 ‘잘 만들어진 책’입니다. 경제적 측면만 중시하다 보니 만화가 갖는 문화적인 측면의 중요성이 간과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 만화산업이 제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갈 길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부천만화정보센터 운영위원장 성완경(인하대 미술교육과)교수가 진단하는 한국만화산업의 단면이다. 프랑스 앙굴렘 만화페스티벌 등 외국의 만화행사에 참여하면서 만화 선진국들과 한국만화를 비교해 내린 판단이다.비단 성교수만이 아니다. 이는 대부분의 만화관련 전문가들이 같은 목소리로 지적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대여점 급증, 만화시장 위축만화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개선해야 할 점으로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것은 출판만화의 활성화가 시급하다는 사실. 만화가 ‘황금알을 낳는 산업’으로 거론되는 것은 만화가 성공하면 그에 따라 애니메이션 캐릭터 게임 등으로 막대한 파급효과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만화로 인해 파생되는 산업의 부가가치는 만화산업의 20배에 이른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이처럼 만화관련 산업 각 부분이 서로 ‘성장’의 시너지 효과를 주고받기 위해서는 밑바탕인 출판만화가 제대로 자리를 잡아야 한다. 그러나 “출판만화자료센터나 출판만화박물관 하나 없는 현실에서 애니메이션에만 초점을 두고 지원하는 정책이나 만화산업을 키우겠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게 성교수의 지적이다. 만화마니아들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만화산업 성장의 핵심은 출판만화인데 뿌리(출판만화)가 아직 부실한데도, 열매(애니메이션 캐릭터 등)만을 따먹으려고 한다”는 것이 ACA(아마추어 만화동아리연합) 유재황 회장의 말이다.한국만화가협회 안중규 이사는 “만화시장의 유통구조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현재 만화유통 경로를 보면 출판사→부수총판→지역별총판→소매점·대여점·편의점·가판→최종 구매독자로 이어지는 구조를 갖고 있다. 가격은 출판사에서 지역총판에 넘길 경우 정가의 70%선이며, 지역총판은 정가의 85∼90% 가격에 소매점 등으로 물건을 넘긴다.이러한 유통과정을 줄인다면 만화가격도 싸지고 일반인들도 쉽게 만화를 구입할 수 있다는 것이 Y총판업체를 운영하는 최모사장의 말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도서출판 대원 학산문화사 서울문화사 등 만화출판업계의 ‘빅3’를 비롯해 많은 출판사 총판업체 등이 인터넷을 통한 만화판매를 하거나 준비중인 것은 다행이라는 것이 최사장의 덧붙인 말이다.유통경로의 구조조정과 함께 개선돼야 할 점으로 꼽히는 또 다른 유통문제는 대여점 중심의 만화유통망이다. 도서출판 대원(주)의 오태엽 편집1팀장은 “독자들이 만화를 사서봐야 만화산업이 성장하는데, IMF이후 빌려보는 대여점이 급속히 늘어난 후부터 작가들의 창작의욕이 꺾이고 만화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주)학산문화사에서 발행하는 만화잡지 <부킹 designtimesp=19530>의 박성식 팀장도 “전체 만화유통물량의 50∼60% 정도를 대여점이 차지할 정도로 커졌다”고 말했다. 이처럼 만화를 빌려보는 대여점이 늘어나면서 만화판매도 줄고, 그에 따른 수입감소로 작가들의 창작의욕도 많이 저하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만화발행에 있어서도 종류나 부수는 늘어났지만, 권당 발행부수는 오히려 줄어드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는 것이 오팀장의 덧붙인 설명이다.◆ 캐릭터 모방 우려 목소리 높아만화창작에 있어 작가들의 캐릭터 모방도 만화산업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는 목소리도 높다. 특히 일본만화의 주인공들과 유사한 캐릭터에 대해서는 국내 만화전문가들은 물론 일본인들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한국만화를 수입하는 일본인 하기노 코헤이씨는 “한국적 특성을 지닌 만화를 많이 보지 못했다”며 “일본만화의 캐릭터나 스토리 등을 그대로 흉내낸 듯한 만화가 많다”고 지적했다. 1년에 20억권의 만화를 발간, 이중 1백만부 이상 팔리는 책이 수두룩하고 세계 20여개국 이상에 수출하는 일본만화의 힘도 알고 보면 독특한 캐릭터 창조와 탄탄한 스토리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박광수의 만화처럼 특유의 선과 캐릭터, 이야기를 가진 만화가 경쟁력이 있다”는 것이 하기노씨의 덧붙인 말이다.‘스타만화가’의 양성이 시급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한창완교수는 “만화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만화가들이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90년대 들어 노래보다 가수 위주의 음반시장이 형성됐듯, 만화가도 그림만 그리는 기술자가 아니라 스타만화가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결성되고 있는 만화가 팬클럽이나, 만화가 매니저시스템은 바람직하다”는 것이 한교수의 설명이다. 현재 천계영 황미나 유시진 김진 강경옥 이은혜 박성우 박무직 양경일 이태행 김수용 등의 팬클럽이 10대를 중심으로 결성돼 있으며, 천계영 양영순 김수용 윤태호 등이 매니저를 두고 활동하고 있다.만화표현에 있어 창작의 한계나 만화심의에 대한 개선이 시급하다는 것은 창작일선에 있는 만화가들의 주장이다. 이들이 대표적인 예로 드는 것이 지난 97년 음란만화로 기소된 이현세씨의 <천국의 신화 designtimesp=19541>. 당시 만화가들이 집단삭발 절필선언 등의 완강한 반발을 했으며, 현재까지도 해결이 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 한국만화가협회 한 관계자는 “만화창작 표현의 한계, 특히 성이나 폭력 등에 있어 영화나 비디오는 허용되고 만화는 안된다는 잣대가 남아 있다”는 말로 불만을 표시했다.만화에 대한 사후심의 제도를 악용하는 일부 출판사들의 태도도 바뀌어야 한다. 현재 청소년보호법에 의해 19세 미만의 대여여부를 사후심의로 판가름하는데 대부분의 출판사들이 폭력 선정 등의 정도가 과한 줄 알면서도 판매를 고려해 ‘19세 미만 대여불가’ 등의 표시를 하지 않고 배포하는 일이 잦다는 것이 Y총판업체 최사장의 말이다. 일단 배포했다가 문제가 되면 이를 표시하는 방식으로 만화를 유통시키지만, 이미 대다수의 만화독자들이 읽은 후라는 것이다. 때문에 “만화로 인한 해악성이 불거져 나오면 이로 인해 많은 만화가나 만화업자들이 덤태기를 뒤집어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최사장의 덧붙인 설명이다.©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