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산인해’. 지난 1월29일, 여의도 중소기업전시장의 모습이다. 방학중임에도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초중고생들이 입추의 여지가 없이 자리를 가득 메웠다. 외국인들과 자녀들의 손을 잡은 부모들의 모습도 자주 눈에 띄었다. 행사장에서 만난 미국인 크리스 바이아씨는 “한국의 10대들이 이처럼 만화에 열광하는데 놀랐다”며 “예상 외로 수준높은 만화도 많았다”고 말했다.◆ 10대 중심 마니아 형성, 만화가 지망생 급증휴일임에도 불구하고 여의도 일대를 북적거리게 만든 이날 행사는 ACA(아마추어 만화동아리 연합)의 만화축제. 올해로 18번째 맞는 축제로 2백60개 아마추어 만화동아리들이 참여했다. 이틀간 치러지는 행사였지만 하루 입장객만 1만2천여명에 이를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ACA 유재황회장은 “만화에 쏠리는 청소년들의 관심을 확인하는 것은 물론 한국만화산업의 미래를 미리 엿볼 수 있는 자리였다”는 말로 행사의미를 설명했다.아마추어만화가들의 잔치가 성황을 이룬 점이나, 행사를 주관한 유회장의 말이 아니라도 불과 몇년 사이에 만화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높아진 것이 사실.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문화산업이라는 명예스런 ‘꼬리표’도 붙었다.정부의 각종 진흥방안이 나오고 몇몇 만화가들의 해외진출 등과 같은 성공이 알려지면서 장미빛 전망마저 나오기도 했다. 때문에 음란성시비로 만화가들이 집단 반발하는 등의 불미스런 일도 있었지만 ‘만화산업을 키워야 한다’는 대세는 흔들리지 않았던 것이 지금까지의 모습이었다.이러한 만화업계가 요즘 새로운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가장 먼저 들 수 있는 것은 디지털시대에 발맞춘 변화. 인터넷 만화판매사이트와 만화웹진 등이 속속 생겨 이제 굳이 만화방을 가지 않더라도 인터넷을 통해 만화를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야후 코리아의 엔터테인먼트담당 웹서퍼 고시나씨는 “지난해 중반 이후부터 만화홈페이지 등록신청이 급증했으며, 만화라는 키워드를 입력해 나오는 8백3개의 사이트 가운데 3분의 2 정도가 개인들의 홈페이지(팬페이지)”라고 설명했다.특히 최근에는 “출판사 유통업체 등의 홈페이지 개설이 늘고 있다”는 것이 고씨의 덧붙인 말이다.◆ 독자층 30~40대까지 확산 … 해외수출도만화제작 관련인력의 증가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만화가도 괜찮은 직업’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만화가를 지망하는 사람들이 급속히 늘어났다. 이를 겨냥해 전국 31개 대학에 34개의 만화관련 학과가 몇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설립됐을 정도다.여기에 한술 더 떠 올해부터는 경기도 하남시에서 만화고등학교가 개교를 하며, 춘천에서도 만화고등학교가 문을 열 준비를 하고 있다.만화시장의 덩치도 빠르게 커졌다. 지난 1995년을 전후해 만화에 대한 대대적인 재조명이 이뤄진 후에 매년 만화발행 부수가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표 참조)특히 만화산업의 토대라 할 수 있는 출판만화시장의 경우 1997년에 비해 약 1천억원 가량 증가한 약 5천억원대의 시장 규모인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만화 종류도 무협물 학원물 애정물 등에서 벗어나 차츰 전문분야의 입문·해설서나 기업의 마케팅툴로 확산되고 있다.독자층이 확산되는 움직임도 뚜렷하다. 최근 직장인들의 애환을 다룬 작품이 드라마나 영화로 각색되는 사례나 골프 낚시 바둑 등 성인취향에 맞는 만화가 많이 나오면서 독자층이 30~40대까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신촌만화사랑 윤상수씨는 “예전에는 중고생과 대학생 등 10대 후반~20대 중반이 주고객층이었으나 최근에는 30∼40대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며 “주로 요리 스포츠 등의 만화를 선호한다”고 설명했다.한국만화의 경쟁력도 향상됐다는 평가다. 인기만화 대여순위에서 결코 일본만화에 뒤지지 않는다. 일본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투니원의 이재신사장은 “일본만화에 비해 지질 인쇄 등의 미미한 차이를 제외하면 거의 동등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를 반영하듯 해외진출도 활기를 띠고 있다. “(만화출판사들이 밝히길 꺼려 정확히 집계가 어렵지만)현재 동남아 일본 등으로 12종의 만화가 진출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는 것이 문화관광부 문화산업국 출판진흥과 하재열씨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