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후 시장규모 2조7천억달러 예상 … 구경제 블루칩 기업들 사이트 속속 구축

“17억5천만달러 규모의 투자 자금을 운영하고 있는 인베스코 블루칩 그로우스 펀드의 매니저인 트렌트 메이는 얼마전 월마트, 프록터 앤드 갬블, 코카콜라 등 전통 대형 우량주를 매각하고 인튜이트, 더블 클릭 등 B2B(기업간 전자상거래) 관련 기업 주식들을 매집했다. 요즘 왜 블루칩 주식들이 끝없이 떨어지고, 반면 B2B를 비롯한 기술·정보통신 분야의 신예 주식들이 천정부지로 치솟는지를 ‘메이×(곱하기)수백명의 다른 펀드 매니저’로 계산하면 명확히 알 수 있게 된다. 얼핏 이해가 안되는 것은 월마트 등 대부분 블루칩 기업들이 20%를 넘나드는 견실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데도 주가는 미끄럼을 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 까닭은 바로 이 대목에 있다. B2B 분야의 신예 기업들이 그보다 훨씬 높은 폭으로 성장가도를 질주하는 바람에 투자자들이 ‘오도(spoil)’돼 버린 것이다. 투자자들은 구경제 기업들이 제아무리 20% 정도의 성장세를 보여봤자 ‘양에 안차게’ 됐다….”지난 7일 <월 스트리트 저널 designtimesp=19573>이 금융·경제 섹션 커버 스토리로 다룬 ‘프로 투자자들은 왜 블루칩(대형 우량주)을 피하는가’라는 제하의 기사 중 주요 내용이다. 저널지의 이 기사는 ‘지금 월가에서 무슨 일이, 왜 벌어지고 있는지’를 일목요연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그것은 월가의 제1 화두가 ‘B2B(기업간 전자상거래)’라는 말로 요약된다. 투자자들은 ‘B2B’와 연관된 주식이라면 길게 따지지 않고 ‘사자’ 주문부터 내놓고 있는게 요즘 월가의 풍속도다. 그만큼 이 산업의 성장성이 높다는 믿음이 확고하게 심어져 있기 때문이다.◆ ‘B2B’ 관련주식 상종가기업간 전자상거래(B2B)라는 용어가 회자되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이미 전세계에는 7백50개 이상의 B2B 시장이 존재할 정도로 성장 속도가 눈부시다는 평가다. 시장 조사기관인 포레스터 리서치사에 따르면 미국의 기업간 전자상거래 시장 규모가 오는 2004년에는 2조7천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포레스터사는 특히 경매와 입찰 시스템, 거래소 등을 포함해 전자상거래를 실행하는 새로운 모델인 전자상거래 시장(eMarket places)의 급속한 발달로 인해 B2B시장의 성장세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점치고 있다.이같은 전자상거래 시장의 가속적인 발달로 가장 큰 영향을 받게 될 분야는 컴퓨터와 전자, 물류 및 창고업, 공공산업 등. 이들 분야는 전자상거래 시장을 통해 전체 거래의 70%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또한 기업들이 전자상거래 시장에 더욱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역동적인 거래 시스템을 채택함에 따라 기존의 사업 관행 및 공급망은 분해되며, 대신 그 자리를 e-비즈니스 네트워크라는 새로운 시장 구조가 차지할 것이라는게 포레스터의 예측이다.포레스터의 이같은 보고서가 아니더라도, 최근 기존 업종의 ‘구(舊)경제’ 기업들이 전자상거래 시장 구축에 속속 뛰어들고 있는 것은 B2B 시장의 잠재력이 얼마나 큰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난달 25일 제너럴 모터스(GM), 포드, 다임러 크라이슬러 등 세계 자동차 업계의 이른바 ‘빅 3’가 자동차 부품 공급업체들을 위한 공동 온라인 교역 사이트를 구축키로 하는 계획을 발표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월가 전문가들은 자동차 산업의 전자상거래 시장이 조만간 인터넷 최대 사업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들 자동차 부품의 공용 조달을 위한 사이트의 매출액이 오는 2002년 69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전문가들은 또 이들 사이트가 상장될 경우 시가총액이 1천억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점치고 있다.자동차 회사들 외에도 각 업종마다 B2B 관련 웹 사이트 개설을 선언하는 기업들이 줄을 잇고 있다. 지난달 28일 시어즈 리벅사와 프랑스 소매업체 까르푸는 연간 8백억달러 규모의 인터넷 소매 교역시장을 설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시어즈의 아머 마티네 사장은 “다른 누군가가 이 시장에 뛰어들기 전에 우리가 먼저 기회를 잡을 것”이라고 B2B 진출 배경을 설명했다. 다른 인터넷 비즈니스들이 대개 그렇듯 ‘시장 선점’이 향후 치열하게 전개될 기업간 경쟁에서 절대 우위를 보장해줄 것이라는게 기업들의 판단이다.지난 1일 카길, 듀폰, 세넥스 하비스트 등 농·화학 관련 기업들이 농업 허브 사이트 구축 계획을 발표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이외에도 허니웰에서부터 쉐브론까지 기존의 거의 모든 간판급 기업들이 화학, 항공부품, 정유 및 가스 등의 전자상거래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B2B 시장이 이렇게 대어급 기업들을 속속 끌어들이면서 눈부시게 성장 가도를 질주하는 것은 그만큼 비즈니스로서의 ‘매력’이 넘치기 때문이다. 우선 많은 구매자와 판매자들을 하나의 가상공간으로 쉽게 끌어모으는 인터넷의 특성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인터넷을 통한 신속한 커뮤니케이션은 거래 비용을 최고 60%까지 절감시켜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기업들이 새로운 고객과 제공업체들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라는게 기업들의 판단이다.뒤집어 말하면 B2B 산업의 혜성과 같은 출현으로 인해 기존의 시장 질서가 순식간에 무너지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실제로 새로운 전자상거래 시장은 수십년간 지속돼온 사업 관계와 방식을 빠르게 붕괴시킬 수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월마트, 시티그룹 등과 같은 대형 회사들이 시장내 선두 자리를 지키는데 발판 역할을 한 규모 및 기술적 기교의 중요성을 얼마든지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이렇게 보면 기업들이 빠른 속도로 B2B 분야에 진출하는 이유가 보다 분명해진다. 자칫하다가는 시장에서 뒤처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기업들을 사정없이 B2B 산업으로 내몰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소비자 인터넷 부문에서 기회를 놓친 대다수 대형 기업들이 B2B 전자상거래 시장에서 만큼은 결코 한 발도 물러설 수 없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어 진출 경쟁이 더욱 뜨겁게 달궈지고 있다.◆ 공정거래당국 ‘부당 경쟁 행위’ 주시그러나 월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B2B 열풍’이 누구에게나 ‘복음’을 안겨주지는 않으리라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우선 미국의 공정거래 당국이 B2B 붐이 초래할 부작용 가능성에 대해 경계의 눈초리를 늦추지 않고 있다.전자상거래 시장이 모두에게 혜택을 제공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소형 제조업체에서부터 대형 유통업자까지 공급업체들은 잠재적 고객들에게 노출됨으로써 혜택을 누릴 수 있을 뿐 아니라 판매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게 사실이다. 그러나 오히려 가격 압력으로 수익률이 하락하는 등의 부작용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일부 공급업체들이 시장점유율을 확대하기 위해 공격적인 가격정책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전자상거래 시장은 산업계의 통합 열풍을 더욱 가속화시켜 취약한 기업들은 도태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점쳐진다. 많은 전문가들은 각 산업부문에서 한 두 개 업체만이 살아남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일례로 야후와 아마존 등 경쟁업체들보다 한해 일찍 출발한 e베이사가 소비자 경매시장의 약 70%를 점유하고 있는게 단적인 예다.이와 관련, 포레스터사는 전자상거래 시장에 대한 기업들의 전반적인 준비 정도에 대해서는 아직 유보적인 결론을 내리고 있어 주목된다. “비록 대부분의 기업들이 전자상거래 시장에 참여해야 된다는 점을 알고 있으면서도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않고 있다. 분명한 점은 대기업들이 전자상거래 시장 참여를 전략적인 관점에서 다뤄야 하며 공급업체들도 역동적인 시장 상황에 맞는 새로운 대비책을 세워 나가야 한다”는게 포레스터의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