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 경영감시 의무 소홀 비판 속 주가하락 상장사 문책요구 관심

12월 결산법인의 주총을 앞두고 기관투자가들의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과거처럼 관행적으로 경영진의 손을 들어줄 것인지 아니면 주가하락을 이유로 경영진 문책을 요구할 것인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기관투자가들은 일반적으로 대규모 자금을 주식 채권 파생상품 등에 집중 투자하는 전문투자 집단을 말한다. 이들은 일반투자자들보다도 정보수집 능력도 뛰어나고 대규모 펀드운용에 따른 규모의 경제효과를 누린다. 또 CAPM(자본자산 가격결정이론), 블랙-숄즈모형 등 첨단 투자 이론을 통해 위험과 수익률의 적절한 조화를 꾀한다. 국내에서는 법인세법 시행령에 은행 보험회사 투자신탁회사 증권투자회사 증권회사 종금사 국민연금 등 거의 모든 금융기관을 기관투자가로 규정하고 있다.투신(운용)사 등 기관투자가들은 또 전문성이 부족한 소액 개인투자자들의 자금을 모아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선량한 자산관리자로서의 의무(Fiduciary Duty)를 갖고 있다. 항상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는 자본시장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따라서 자본시장 안정과 주주의 권익보호를 위한 경영감시활동은 이들의 본래적 의무인 셈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기관투자가들은 적어도 증시의 안전판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경영감시 활동을 거의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자산운용회사들, 경영진에 공격적최근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한 상장사에 대해 경영감시 활동을 강화하겠다는 일부 기관투자가들의 다짐도 있었다. 그러나 실질적인 경영감시 활동을 펼칠 것이라는 기대는 포기해야할 듯하다.“주가가 떨어졌다고 경영진을 경질할 수는 없다. 과거 경영활동이나 향후 경영비전에 대해 충분히 검토한 후 경질여부를 결정하겠다.”(대한투자신탁 성무경 부장)“주가 하락만으로 경영진의 경질을 요구하기는 힘들다. 가급적 경영권을 언급하지 않는게 회사방침이다.”(현대투자신탁운용 이병완 운용관리팀장)주가가 크게 떨어진 상장사들에 대해서도 수급이 문제라는 시각이지, 이들 기업의 경영이 기업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문제의식은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기존 투신(운용)사들에 비하면 자산운용 회사들은 보다 공격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 주가하락의 원인을 따져본 후 책임을 추궁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구재상상무는 “실제 영업성과가 나빠 주가가 하락했거나 또는 양호한 경영성적에도 불구하고 IR 등이 부족해서 주가가 오르지 않으면 책임을 물을 것이다. 후자에 대해 책임을 추궁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경영활동중 하나인 IR활동능력이 부족하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밝힌다.리젠트자산운용도 유사한 입장이다. 오성식 주식운용팀장은 “단순히 주가가 하락했다고 경영진 교체를 요구할 수는 없다”면서도 “경영실패로 주가가 하락할 경우에는 입장이 달라진다”고 말한다.즉 정상적인 영업활동에도 불구하고 시장차별화로 주가가 하락한 경우에는 특별히 문제삼지 않겠지만 디지털 경영환경에 적응하는데 실패하여 주가가 하락했다고 판단되면 경영진 교체 등 다각도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이같은 기관투자가들의 태도에 장하성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장은 “기관투자가들도 점차 소액주주와 이해를 같이 하는 측면이 많아졌다”면서도 “일부 투신(운용)사들은 투자자들의 이익보다는 여전히 경영진이나 펀드매니저의 입장만을 고려한다”고 비판한다. 특히 장위원장은 기관투자가들에게 “말로만 주주권익 보호와 경영의 투명성 제고를 주장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행동으로 보여달라”고 주문한다.그는 기관투자가들이 펀드에 투자한 일반투자자의 이해를 대변한다면 삼성전자와 대립하고 있는 참여연대를 지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재 참여연대는 특정인의 사외이사 선임과 스톡옵션 부여를 반대한다는 의견을 피력한 상태다.이사회의 역할이 무엇보다 강조되는 시점에서 전직 관료나 전직 정치인들이 사외이사로 선임되는 것은 시대적 조류에 역행한다는 것이 참여연대의 입장이다. 또 삼성전자가 지난 2년간 이사회에 한번도 참석하지 않은 계열사 사장에게 스톡옵션을 부여해서 막대한 시세차익을 올리도록 하는 것은 주주중시 경영과 동떨어진 것이라고 주장한다.그러나 기관투자가들사이에서는 장위원장의 주장에 대해 미묘한 입장 차이가 나타난다. KTB자산운용의 안영회 이사는 “참여연대의 주장이 합리적인 내용이라 주권을 위임하는 것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언급한다.그렇지만 현대투신운용과 대한투신은 “새로 선임될 사외이사의 경력을 볼 때 회사경영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찬성할 계획”이라고 밝힌다. 또한 스톡옵션 부여에 대해서도 “회사 기여도에 따라 스톡옵션을 주는 것은 당연하다”고 얘기한다. 이 두 회사는 또한 “투신사는 참여연대와 주주권익을 옹호한다는 측면에서는 동일한 이해관계를 갖지만 단기투자자(소액주주)와 장기투자자(기관투자가)라는 입장차이가 있다”고 설명한다. 참여연대와 일정 거리를 두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투자기간의 차이에서 오는 시각의 차이를 인정하더라도 그동안 국내 기관투자가들의 경영감시 활동이나 주주권익 보호 활동은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경영진들이 기관투자가들을 자신의 우군으로 생각할 정도이다. 기관투자가들이 기업합병 인수나 사업양수도때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사례는 드물다. 특정 안건에 나타난 찬반비율대로 의결권을 행사했을 뿐이다.무엇보다 투신(운용)사 보험 증권 등이 4대그룹 계열사라는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이들 금융기관들은 고객의 이익보다는 그룹 사주나 계열사의 이익대변에 치중해 왔다.예를 들어, 삼성생명은 지난해 6월말 기준으로 37조2천억원의 총자산중 2조5천억원을 주식으로 운용하면서 계열사 주식을 1조1천억원이나 사들였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씨는 에버랜드를 통해 삼성생명의 주식을 21% 소유, 사실상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다.삼성전자 LG전자 SK텔레콤 등 기관투자가들에게 자금운용을 맡기는 고객들이 주요 그룹 계열사라는 것도 기관투자가들의 의결권 행사를 제약한다. 이들 자금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해당 그룹 계열사 경영진의 손을 들어줘야 한다. 장위원장은 “상장기업들은 기관투자가들에 맡기는 여유자금을 미끼로 투신 은행 보험 등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인다”고 분석했다.기관투자가들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를 법적·제도적으로 제한해온 것도 소극적인 의사피력에 머물러 온 주된 이유중 하나다. 리젠트자산운용의 오팀장은 “지난 98년 증권거래법 개정 이전까지는 기관투자가들이 적극적으로 경영감시 활동을 벌일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가 미흡했다”면서 “이같은 분위기에 펀드매니저들이 익숙해져 경영감시 활동에 무관심해 졌다”고 분석한다.◆ 1년 미만 단기투자 집착 … 경영감시 뒷전국내 기관투자가들이 단기적인 수익률에 집착하는 포트폴리오 투자패턴을 갖고 있는 것도 경영감시 활동에 무관심한 이유중 하나로 작용한다. 홍완선 하나은행 신탁자금팀장은 “미국의 연기금처럼 장기투자를 하는 것이 아니라 1년 미만의 단기투자를 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장기자산 운용기관인 연기금이나 보험사 등도 단기수익률에 연연하기 때문에 경영진 교체 등 중장기적인 기업가치 제고방안에 관심을 기울일 여력이 없다는 분석이다. 기껏해봐야 보유주식을 매도하는 것으로 반대의사를 나타낸다. 대표적인 예가 삼성생명투신이다. 이창훈 주식운용1팀장은 “기업실적이 나쁘거나 실적에 비해 저평가된 종목들은 시장에서 내다 팔면 된다. 특정 사외이사의 선임이나 경영진의 경질을 요구할 필요가 없다”고 밝힌다.이처럼 주식매도로 경영진에 대한 반대의사를 나타내는 월가법칙(Wall street’ rule)에 충실한 것이 국내 기관투자가들의 한계이다.그러나 기관투자가들도 앞으로 이같은 현실은 개선해 나가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갖고있다. 무엇보다 국내 증시에서 기관투자가들의 비중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반면 개인투자자들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표1 참조) IMF체제의 후유증으로 98년 일시적으로 보유비율이 줄어들었지만 지난해 증시호황으로 다시 20%대를 넘었다. 또한 국민연금 등 장기성 자산운용 기관도 자산운용 규모가 급증하는 추세다. 1월말 현재 국민연금은 주식에 1조4천7백억원을 운용하고 있다. 간접투자상품도 1조4천억원에 달한다. 2009년이면 전체 운용자산이 2백조원에 달한다. 이중 10%만 주식에 투자해도 20조원이 넘는다.정부도 기관투자가의 역할을 새롭게 인식하고 있다. 소규모의 지분을 갖는 지배주주의 전횡을 방지하는 장치로 기관투자가들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를 유도하고 있다. 투자신탁협회 김철배 법규제도팀장은 “일반 소액투자자는 기업감시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기관투자가들로 하여금 소규모 지분을 갖는 지배주주의 독단을 감시케 하는 것이 증권거래법 개정의 근본 취지”라면서 “앞으로 기관투자가들의 경영감시 목소리는 더욱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여기다 투신 은행 보험 등 기관투자가들의 수익률 경쟁이 격화되면 경영감시 주주권익 보호 등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하나은행 홍팀장은 “지금까지 문화적 제도적 한계로 적극적인 경영감시 활동에 나서지 못했지만 수익률 경쟁이 격화되면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이라고 주장한다.이제는 국내 기관투자가들도 투명경영을 요구하고 소액주주를 보호하는 합리적 투자(Rational Investing)를 통해 경영진을 감시하는 역할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