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업체 공격ㆍe-비즈니스 약세 등 국내 수성 역부족...선진 경영시스템 구축도 과제
“불과 수년전만해도 자부심을 느끼며 다녔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왠지 자신이 없습니다. 많은 젊은 직원들이 회사를 떠날 궁리를 하고 있습니다.” 현대자동차에 다니는 6년차 모 대리의 말속에는 현대의 고민이 그대로 배어있었다. 대우차의 해외매각, 세계적 업체의 잇단 줄서기, e-비즈니스 열풍. 이 가운데 하나도 현대가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 것이 없다. 21세기 과제 가운데 하나도 해결하지 못한 현대는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현대의 고민과 21세기 생존전략을 짚어본다.◆ 국내 업체의 해외매각현대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 가장 큰 요인은 역시 세계적 업체의 한국진출이다. 단순한 수입판매가 아닌 국내 생산을 통한 한국시장 공략. 대우와 삼성자동차가 해외매각될 경우 현대의 경쟁자는 GM, 포드, 크라이슬러, 르노가 되는 것이다. 70%에 육박하는 내수시장 장악을 통한 안정적 성장이라는 현대의 기반은 일거에 사라질 것이라는 견해가 일반적이다.대우차를 GM이나 포드가 인수하고 르노가 삼성차를 인수하는 것이 현대에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즉 현대가 이윤을 많이 남기고 있는 중형차 부문은 르노와의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르노가 닛산의 차를 라인에 투입해 르노의 목표대로 15%의 시장을 장악한다면 이는 현대의 채산성에 심각한 압박요인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우를 인수한 업체가 대우 공장을 이용해 값싼 가격에 소형차를 공급할 경우 현대는 양쪽의 압박을 견뎌내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현대도 지난해 내부 보고서에서 ‘현대가 넛크래킹 상태에 있다’는 진단을 내린바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렇게 되면 기아와 합쳐 시장점유율이 70%에서 50% 아래로 떨어지는 것은 순식간이다.현대는 대우차 인수를 통해 이같은 위기 상황을 극복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삼성은 르노에 내줄지라도 대우를 인수해 내수시장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별반 탐탁지 않은 반응을 보이고 있고 여론도 독점에 대한 우려 때문에 만만치 않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 게다가 과연 대우를 인수할 돈이 있는가 하는 문제도 남아 있다. 대우차 인수여부는 현재로서는 매우 불투명하다.◆ 세계적 업체 줄서기에서 소외이미 세계적 업체들의 짝짓기는 막바지에 이르렀다. 엄청난 개발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 부족한 라인업을 보완하기 위해서 제휴합병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GM은 피아트 스즈키 사브 이스즈를 자신의 우산 아래 넣었다. 포드는 볼보에 이어 영국의 랜드로버를 인수키로 했다. 다임러크라이슬러는 미쓰비시와 제휴를 추진중이며 상반기중 소형차 파트너를 선택하겠다고 밝힌바 있다.이밖에 폴크스바겐은 럭셔리 브랜드 롤스로이스 부가티 벤틀리와 아우디-세아트-슈코다로 이어지는 라인업을 구축했다. 남아 있는 업체는 혼다와 BMW 정도가 고작이다.현대는 이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돼 있다. 뛰어난 기술력을 갖고 있지도 않으면서 풀라인업 체제를 구축한 어정쩡한 포지션 때문이다. 또 오너가 경영권을 완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해외업체의 접근도 쉽지 않았을 것이란게 일반적 분석이다.현대도 최근 해외업체와의 전략적 제휴에 나서기 시작했다. 공식적으로 제휴의사를 표명했고 두개 업체와 제휴를 추진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선진기술을 도입하고 마케팅에서의 시너지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란 것이 현대의 설명이다. 그러나 이들 업체에 한국시장을 제외하고는 뚜렷이 내줄만한 것이 없다는데 현대의 고민이 있다.◆ 선진적 경영시스템구축 부담현대는 지난해 엄청난 인사홍역을 치렀다. 정몽구 회장체제가 구축돼 가는 과정에서 과거 경영진 인맥으로 분류된 인사들은 대부분 자리바꿈을 하거나 좌천됐다. 또 박세용 회장이 현대차 사장으로 왔다가 3일만에 인천제철로 밀려가는 일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하의상달식 의사결정을 고사하고 말조심하지 않으면 다칠 수 있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는 것이 현대차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아직도 철저한 오너중심의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결론이다. 따라서 현대가 경영선진화를 이뤄내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밀려오는 e-비즈니스 열풍도 현대는 부담스럽다. 포드 GM 등 세계적 메이커가 앞다퉈 e-비즈니스에 뛰어드는 판에 변변한 인터넷 판매도 실시하지 못하고 있다. 뒤늦게 인터넷 사업을 총괄하는 팀을 만들었지만 인식의 변화가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과연 이같은 흐름에 쉽게 적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현대의 대책현대는 대우차 인수가 이 위기를 극복하는 관건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선진 경영시스템 구축은 하루아침에 해결되지 않더라도 당장 내수시장을 내주고 생존의 위기를 초래하지 않기 위해서다. 또 대우자동차를 인수하면 국내에서는 독점적 사업자가 되기 때문에 한국에 진출하려는 업체는 현대와 손을 잡지 않을 수 없다는 논리다. 현대는 이를 위해 엄청난 규모의 대우차 실사단을 구성하고 자금 마련에 들어갔다. 이 계획이 실현되면 현대는 21세기 생존을 위한 기반을 구축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 세계 메이커와 제휴할 카드 있나중국동동 진출ㆍ내수 일부 양보 강점“세계적 메이커와의 제휴를 위해서는 우리의 강점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해외업체와 전략적 제휴를 추진중인 현대자동차 고위 관계자의 발언이다. 즉 상대가 매력으로 느낄수 있을 만한 무언가를 준비하고 이를 토대로 제휴를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가 내줄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일단 중국시장을 꼽을 수 있다. 21세기 최대의 시장인 중국으로 진출하는데 한국만한 생산기지를 찾기 힘들다. 뿐만 아니라 중국정부가 새로운 자동차공장 건설을 규제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대는 2003년까지 연산 30만대 규모의 승용차 공장허가를 받아놓고 있는 상태여서 이것이 장점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70%를 점유하고 있는 한국시장도 현대가 내줄 수 있는 제휴의 매개다. 연간 1백50만대로 예상되는 시장에 현대와 제휴를 통해 무임승차할 수 있다면 이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또 현대가 대우를 인수할 경우에는 더 이상의 말이 필요없다. 물론 현대가 해외업체의 차를 팔아주는 등의 방법으로 시장 일부를 내주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최근 세계적 제휴의 추세가 지분교환을 중심으로 이뤄진다는 점에 이르면 문제는 달라진다. 현대와 제휴를 맺는 업체도 어김없이 현대의 지분을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의 우호지분은 30%가 약간 넘는데 이 가운데 10∼20%를 내주면 경영권 문제가 생길수도 있다. 현대가 이 지분을 내주고도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는 방도는 무엇일까. 현대의 전략적 제휴에 있어 가장 큰 숙제다.©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