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ㆍ바이오테크 투자 '덤 머니' 나스닥 돌풍 주역...프로 투자자도 투자전략 U턴

월가의 증권계에서는 갖가지 은어와 조어가 판친다. 우량주를 의미하는 보통 명사로 사전에까지 등재된 '블루칩' 이 대표적인 월가 언어다. 월가에서 통용되는 은어 중에는 '스마트 머니'란 말도 있다. 직역하자면 '똑똑한 돈'이라는 뜻이어야겠지만, 우러가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투기 목적의 돈'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수익 극대화를 겨냥해 '돈이 될만한 주식'을 골라 옮겨 다니는 뭉칫돈들을 주로 지칭한다. '주식 투자의 교과서'로 불리는 월가의 전설적인 투자 귀재 워런 버핏이나 '해지 펀드의 천재'로 불리는 타이거 펀드의 줄리안 로비트슨이 스마트 머니를 운영하는 대표적인 인물들이다.그러나 이들이 굴리는 돈에 더 이상 '스마트 머니'라는 이름표를 붙이기는 곤란한 지경이 됐다. 주식 투자로 운영하고 있는 자금이 수익을 내기는 커녕 큰 폭의 마이너스 실적을 내고 있기 대문이다. 버핏이 운영하는 버크셔 해서웨이사의 주가가 최근 1년도 안되는 사이에 48%나 곤두박질친 것이 단적인 예다. 한때 월가의 투자자들로부터 '초우량 펀드의 대명사'로까지 불렸던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가가 이렇게 맥없이 무너진 까닭은 뭔가. '한물 간' 구(舊)경제 주식들에 매달린 탓이다.버크셔사가 대규모로 보유하고 있는 몇몇 주요 주식들의 주가 흐름을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면도기 회사 질레트사의 요즘 주가가 피크때에 비해 51% 떨어져 있는 것을 비롯해 코카콜라는 47%,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는 27%씩 각각 하락해 있는 상태다.◆ 구경제 주식 고집 투자자 '큰 솔실 입어'버핏은 인터넷과 바이오테크 등 '신(新)경제' 주식들을 언젠가는 거품이 꺼지고 말 '포말(泡沫)주식'으로 간주하고 눈길도 주지 않아왔다. 대신 이들 구경제 주식들에 변함없는 애정을 쏟아부었다. 그 대가를 요즘 톡톡히 치르고 있는 것이다. 타이거 펀드의 로버트슨도 마찬가지다. 그 역시 구경제 분야의 전통 우량주들을 위주로 한 투자 포트폴리오를 고집한 대가로 타이거 펀드의 주가가 지난해 19%, 올 1월 한달 동안 다시 6% 하락하는 수모를 겪었다.버핏이나 로버트슨은 투기 성향이 짙은 펀드를 운영하면서도 나름의 '정석'을 지켜왔다. 그러나 그런 정석이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렇게 의미가 바래진 '스마트 머니'를 대신해 요즘 월가의 전문가들 사이에 신조어가 등장했다. '덤(dumb) 머니'라는 말이다. 곧이곧대로 직역하자면 '멍청한 돈'이 되겠지만, 실제 월가에서 통용되는 뉘앙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시류를 좇아 테마주식에만 몰려 다니는 돈'을 지칭한다.'덤 머니'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뭘 잘 몰라서 용감한' 신출내기 누자자들이다. 그런데 바로 이들 '덤 머니'를 굴리는 신출내기들이 버핏이나 로버트슨 같은 월가의 쟁쟁한 '대(大)프로'들을 녹다운시키며 '대박 성공담'을 양산하고 있다. AT&T에서 퇴직한 뒤 중소기업체를 경영하며 '심심풀이 삼아' 주식 투자에 본격 손을 대기 시작한 호세 피미엔타같은 사람이 단적인 예다. 피미엔타는 작년 이맘때쯤 '직감이 있어서' 웰스파고은행과 AT&T등 '구경제 우량주'들을 처분하고는 시스코 시스템즈와 오라클, 루슨트 테크놀로지, 어플라이드 머티리얼 등 15개 신경제 주식들로 바꿔치웠다. 그 결과는 지난 1년간 투자 수익률 35%를 기록한 것으로 돌아왔다.사립학교를 운영하면서 주식 투자를 하고 있는 미네소타주의 론 에팅거라는 사람도 최근 '덤 머니로 돌아선 덕분에 성공한 사례'로 월 스트리트 저널에 소개됐다. 그는 몇달 전 까지만 해도 투자 대상을 보잉, 노스웨스트 항공, 클로락스 등 '안전한' 구경제 주식들로만 국한시켰다. 그러나 작년 10월 휴가지에서 경제 뉴스를 찬찬히 추적하다가 '언뜻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어서' 정보통신 등 분야의 신경제 주식들로 투자 종목을 바꿨다. 덕분에 반년도 안되는 사이에 19%의 수익륙을 내는 개가를 올렸다.이처럼 '덤 머니'들이 '스마트 머니'를 밀어내고 우러가의 주인공 자리를 꿰어참에 따라 프로 투자자들도 전략을 바꿔나가기에 이르렀다. '투기의 귀재' 조지 소로스가 운영하는 간판 투자 회사인 퀀텀 펀드의 경우 지난해 일지감치 기술주들에 손을 댄 덕북에 34%의 수익률을 냈다. 이 회사의 스탠 드러큰밀러 투자전략실장은 "신경제 시대에 구경제 주식을 고집하는 것은 공룡으로 남겠다는 얘기와 마찬가지로 무모할 뿐"이라고 강조한다.◆ 투자자까지 '기술주 투자하라' 압력일부 펀드 매니저들이 "첨단 기술주들을 운영 대상으로 대거 편입시키지 않으면 즉각 탈퇴하겠다"는 가입자들의 점증하는 압력에 굴복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플로리다주의 개인 펀드 매니저인 레인 존스씨는 최근 한 60대 투자자들로부터 압력성 방문을 받았다. "분명히 신경제 시대가 시작됐다. 그런데도 기술주들을 마냥 외면한다면 우리는 지나가는 버스를 놓친 것과 똑같은 신세가 될 것이다." 투자자들은 이런 식의 압력을 계속해서 집어넣었다. 마침내 그는 펀드 운영금액의 일정 부분을 기술주들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는 대부분 기술주들에 잔뜩 거품이 끼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고객이 왕이다. 그들이 기술주 매입을 강력히 원하는 한 말을 듣지 않을 도리는 없다." 존스씨의 고백이다.월가 프로들이 아니더라도 상당수 기술주들이 기업 규모나 재무제표, 사업성 등에 비해 턱없이 고평가돼 있다는데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한다. 대표적인 예가 베리사인(VeriSign)이라는 인터넷 업체의 주가 구조다. 최근 나스닥 증시의 조정과정에서 조금 내려앉기는 했지만 이 회사는 이달 중순까지도 하루에 최고 18%이상 주가가 치솟는 등 급상승 가도를 달려 왔다.그러나 주가수익비율(PER)이 무려 6.779배에 달하고 있다. PER는 특정 기업의 주가가 적정한지 여부를 재는데 쓰이는 대표적인 잣대다. 전형적인 '구경제 전통 우량종목'인 듀폰의 PER가 단 7배인 것과 비교하면 '거품'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다.신경제 주식들의 거품이 이상(異狀) 수위를 치닫고 있음은 이미 수년전부터 여러 전문가들에 의해 숱하게 경고돼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술주를 잡아야 한목 벌 수 있다"는 투자자들의 고아적인 믿음은 별로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나스닥 지수가 지난 10일(5048.62)을 피크로 지난 20일에는 4610으로까지 하락, 불과 열흘 사이에 8.7%나 조정되는 등 홍역을 치르기는 했다. 그러나 21일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 금리가 0.25% 포인트 추가 인상되는 선에서 매듭지어진 이후 다시 상승세를 되찾고 있다. 한동안 나타났던 조정 국면은 금리 인상 조치를 앞두고 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매물이 대거 출회됐던데 따른 일시적 현상이었던 것으로 판명나고 있다.기술주들의 돌풍이 투자자들의 일시적인 광기(狂氣)에만 힘입고 있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적지 않은 전문가들이 인터넷과 정보통신 등 신경제 기업들이 예전에는 상상조차 힘들었던 내용과 속도로 사회 전반을 진보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최근 투자 종목을 구경제 주식 위주에서 정보통신 관련 주식으로 대거 바꾼 한 펀드 매니저는, 신경제의 발전 속도가 얼마나 눈부시게 빠른지를 자신의 가정에서 지난 1년 남짓한 사이에 일어난 몇가지 변화로 설명한다. 1년전까지만 해도 한 대도 없었던 휴대폰이 지금은 대학생이 된 딸에게 입학 기념으로 선물한 것을 포함, 네대에 이른다는게 첫 번째 예다. 다음은 컴퓨터. 지난 94년 그가 MBA(경영학 석사) 과정을 마쳤을 때만 해도 그의 집에는 컴퓨터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것 역시 네대나 있다.◆ 신경제주식 거품 경고에도 기술주 급부상이처럼 짧은 기간 동안 급속도로 시장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는 신경제 주식들에 대해 몇년 전의 가치관과 잣대로 주가의 적정성 여부를 계산해내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게 그의 지적이다.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대표적인 것이 대공황 직전인 20년대와 요즘의 상황에 대한 비교론이다. 20년대 당시에도 자동차와 라디오 등의 '첨단 기술산업'이 세계 경제를 획기적으로 진보시킬 것이라는 믿음이 투자자들을 사로 잡았고, 그에 힘입어 라디오 코프(Redio Corp)와 제너럴 모터스 등 '신경제' 주식들이 천정부지로 치솟았었다. 이들 첨단 산업이 세상을 바꾼 것은 그후 사실로 입증됐지만, 이들 주식은 멀지 않아 붕괴되고 말았다. 보다 점잖게 월가 투자자들의 '테크 드림'을 꼬집는 전문가들도 있다. 1백년 전 자동차와 항공기 산업이 출현햇을 당시 이들 업종에 대한 투자자들의 열광을 업고 많은 기업들이 출현했지만, 궁극적으로 살아남은 기업은 손에 꼽을 정도일 뿐 대부분이 흔적도 없이 스러졌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