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메네질도 제냐’라는 이름을 잘 모른다고요? 물론 우리 회사의 옷은 대중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제냐는 80년대 말부터 한국 유통업체들을 통해 최고급 원단을 공급해왔습니다. 순모 일색이던 한국 정장 원단에 ‘캐시미어’를 소개한 것도 바로 제냐입니다.”‘에르메네질도 제냐’사의 CEO(원단사업부문 본부장) 파울로 제냐는 패션 명가의 후손다운 자신감을 내보이며 한국 시장과의 인연을 강조한다.“2000년은 제냐 그룹에 매우 중요한 한 해가 될 것입니다. 특히 한국 시장에 대한 투자를 대폭 늘립니다. 올해 롯데백화점과 청담동에 매장을 연데 이어 5월에는 방배동에 세번째 매장을 엽니다. 한국이 제냐의 세계 시장중 여덟번째로 큰 시장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파울로 제냐 사장은 단독매장으로는 첫번째인 청담동 매장 오픈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방한했다.◆ 1백년 전통 이탈리아 명품브랜드에르메네질도 제냐는 글자 그대로 ‘유구한’ 명성을 자랑하는 이탈리아의 남성 정장명품 브랜드다. 1909년 창립, 1백년의 전통을 갖고 있다. 창립자 에르메네질도 제냐는 아버지의 원단 가게를 이어받아 회사를 설립했다. 이탈리아와 해외에서 명성을 얻기 시작한 것은 60년대부터. 유럽 명품들이 흔히 그렇듯 제냐의 사업도 가업으로 이어졌다. 창립자의 아들대에 이르러 원단 사업에 이어 기성복 시장에 진출했고, 1999년 기준 전세계에 9천70억리라(약1천3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전세계 고급 남성복 시장의 30%를 점유하고 있다.“제냐는 ‘수직 통합 체계’라는 독특한 관리 방식을 구축했습니다. 울, 캐시미어, 실크 등 옷감의 재료 구매와 원사·원단 제조, 디자인과 옷 생산에서 유통·판매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본사가 직접 관리하는 것입니다.”파울로 제냐 사장은 1백년 동안 변함없는 명성을 지키며 성장을 거듭할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철저한 품질관리를 꼽았다. 제품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는 것이다.그는 구체적인 사례로 자신이 맡고 있는 원단 사업 부문의 투자를 들었다. 제냐는 자사가 소비하는 원료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소재인 울의 품질을 위해 해마다 호주의 양모 생산업체들에게 그 해 최고의 울을 선정, 상을 준다. 또 연구를 거듭해 매 시즌마다 수백여종의 새로운 원단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렇게 해서 생산된 신소재는 자신의 회사제품에 사용함은 물론 경쟁 남성복 회사들에게도 공급하고 있다고 소개했다.파울로 제냐는 창립자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4대손으로 현재 사촌인 질도 제냐와 함께 공동 CEO를 맡고 있다. 아시아지역 판매를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일년에 두세차례는 한국을 찾는다.“15년전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남성들의 옷은 한결같이 울 소재의 곤색 수트에 실크 넥타이를 맨, 정말 천편일률적인 스타일이었습니다. 여전히 딱딱한 옷을 고집하기는 하지만 요즘은 전보다는 많이 다양해졌음을 느낍니다.”그는 한국 남성들의 패션 스타일에 변화를 가져오는데 제냐도 나름대로 기여한 점이 많다며 청담동 단독매장 오픈을 계기로 다시 한번 그 바람을 일으키고 싶다는 의지를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