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사정 따라 결제금액 융통 이용고객 급증 , 은행들 앞다퉈 서비스 도입

광고대행사에 근무하는 박준기 부장(36). 그는 작년 9월부터 ‘리볼빙 카드’를 사용하고 있다. 연봉이 4천만원 가량 되는 그가 카드로 사용하는 금액은 한달 평균 1백만원 이상으로, 평소 카드를 자주 쓰는 편이다. 리볼빙 카드를 쓰기 전에는 종종 연체를 하곤 했다. 잊어버릴 때도 있고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을 경우도 있다. “카드 사용금액이 들쭉날쭉해 특히 많이 쓴 달에는 부담이 됐지요.” 지금은 한달에 전체 잔액의 5%만 결제한다. “일반 카드보다 이자율이 높기는 합니다. 그러나 필요할 때 현금 서비스를 받는다고 생각하면 이자율도 큰 차이가 없고 또 현금 서비스 받는 것보다는 훨씬 편리하니까요.” 물론 여유가 있는 달에는 전화를 걸어 1백%를 모두 낸다.요즘 박부장처럼 새로운 결제 방식을 채택한 ‘리볼빙 서비스’카드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국내 은행과 카드사들도 앞다퉈 리볼빙 서비스를 시작하는 추세다.리볼빙 서비스란 카드 회원이 전체 결제금액 중 정해진 비율의 최소 금액 이상만 이자와 함께 갚아가는 방식이다. 개인별로 신용한도가 있어 그 범위 안에서는 얼마든지 쓰고 돈은 일정 비율로 분할 상환한다.예를 들어, 이번 달에 카드로 일시불 1백만원어치를 쓰고, 3개월 할부로 90만원짜리 물건을 샀다고 하자. 결제 비율을 10%로 정했다면 이달에는 40만원과 할부이자를 지불하면 된다.(1백만원의 10%+할부금액) 그 다음 달에는 일시불 카드 사용액이 60만원이라면 이자를 제외한 지불 금액은 45만원(60만원의 10%+ 90만원의 10%+ 할부금액)이다.◆ 외환·씨티·신한은행서 첫선리볼빙 서비스가 국내에 처음 선을 보인 것은 지난해. 외환 씨티 신한은행 등이 한 발 앞서 출발했지만 처음에는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그러나 올해 들어 사정이 달라지기 시작했다.가장 앞서나가고 있는 곳은 외국계인 씨티은행이다. 99년4월부터 리볼빙 카드만 취급하기 시작, 올들어 국내 카드 업계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98년말 1만5천명이던 카드 가입자가 3월말 현재 7만여명으로 늘어났다.지난해 월평균 가입자 증가수는 2천5백명이었으나 올해 들어 매달 1만명씩 늘어나고 있다. 전체 카드가입자 중 실제로 리볼빙 방식 결제를 이용하는 사람은 35%인 2만5천명 정도다. 신한은행도 올해 1월부터 꾸준히 늘기 시작해 3월말 현재 1만 3천명이 이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일각에서는 우리나라에서는 별로 긴요치 않은 서비스라고 보기도 한다. 미국 등 신용 거래가 활성화된 나라에서는 리볼빙 수수료가 카드사 수수료 전체 수익의 70∼80%를 차지할 정도로 일반화되어 있다. 그러나 한 카드업계 관계자는 “미국에서 리볼빙 서비스가 일반적인 것은 할부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같이 할부제도를 널리 이용하는 곳에서는 효용이 적다”고 지적한다.신용평가 시스템의 미비도 문제다. 한 은행 카드업무 담당자는 “삼성 LG 국민 등 카드사들도 같은 서비스를 하고 있으나 빛을 보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은행 신용 평가 시스템보다는 처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씨티은행 마케팅팀 김동욱 차장은 “씨티은행은 오랫동안 이 서비스를 실시해온 본사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이 서비스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개인별 신용정보를 완벽하게 파악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홍보가 잘 되지 않고 카드 이용자들의 인식이 부족했던 것도 그간 널리 이용되지 않았던 이유로 꼽힌다.◆ 연체자 회원이탈 방지에도 한몫또다른 은행 카드업무 담당자는 서비스 자체에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낸다. “리볼빙 카드는 발급 기준이 엄격해 신용이 좋은 고객들에게만 발급한다. 자금 사정이 넉넉한 사람들은 이를 이용할 필요를 느끼지 않으니 애초에 모순이 있다.”그러나 국내 은행들은 뒤질세라 리볼빙 서비스를 시작하고 있다. 3월에는 조흥 한미 서울은행이 시작했고 한빛 하나 기업은행 등이 속속 참여하고 있다. 또 신한, 외한 등 이미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는 곳도 더 많은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다음 달부터 발급 기준을 완화할 계획이다.외환카드 마케팅팀의 홍성원 대리는 “고객이 연체자로 분류돼 카드 회원에서 이탈하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은행들이 앞다퉈 도입하는 것 같다” 며 “이미 카드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러 신규 수요를 창출하기 어렵기 때문에 은행들이 앞다퉈 서비스에 나서고 있기도 하다”고 분석했다.씨티은행 김차장은 “자신의 금융 계획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사람, 수입이 고르지 않은 사람이라면 매우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라고 말했다. “일반 카드의 경우 사용금액이나 가맹점에 따라, 또는 해외에서 사용할 때 할부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 또 현금 서비스를 받은 후에는 대금 결제일에 서비스 금액과 사용일수에 따른 이자 수수료를 한꺼번에 상환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그러나 리볼빙 카드의 경우 금액과 가맹점, 해외 사용 등에 상관 없이 모든 거래를 할부형식으로 조금씩 상환할 수 있다.”그러나 편리하다고 방심해서는 안된다. 김차장은 “리볼빙 서비스 가입자들은 가입 초기 3개월 동안 카드사용이 급격히 늘어났다가 이후로는 안정적인 소비 성향을 보인다”고 말한다. 처음 사용하는 사람들이 자기 자금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데 익숙지 않다는 증거다. 스스로 통제를 하지 못하면 과소비를 할 위험이 크다.리볼빙 서비스의 장점을 잘 살려 편리하게 이용하려면 무엇보다 자신의 소비를 합리적으로 계획 관리할 줄 알아야 한다. ‘이 돌을 빼서 저 기둥에 괴는’ 식으로 여러 개의 카드를 돌려 가며 사용해온 사람이라면 아예 발급받지 않는 것이 좋다.★ 이자율 꼼꼼히 따져봐야리볼빙 서비스는 이자율, 사용한도, 적용 대상 등에서 은행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지난해부터 이를 실시해온 씨티 외환 신한은행의 서비스 내용을 소개한다.◆ 외환카드국내외에서 일시불로 사용한 금액이 리볼빙 대상이다. 현금서비스 및 할부 사용분은 리볼빙 대상에서 제외된다. 표준과 단기 두가지 종류가 있다. 표준코스는 결제 비율이 10% , 단기코스는 20%이다. 사용금액이 5만원 미만이면 한꺼번에 결제된다. 이자율은 16.5%.◆ 씨티은행씨티은행에서 발급하는 모든 카드는 리볼빙 결제가 가능하고, 기존 거래자가 아니라 새로 가입해도 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다. 그러나 발급 기준이 타 은행보다 까다로운 편이다. 일시불 구매뿐 아니라 현금서비스도 리볼빙 대상이다.결제 비율을 5∼100%까지 고객이 선택하고, 매달 이 비율을 다르게 지정할 수도 있다. 고객이 특별히 지정하지 않았을 경우 5% 비율이 적용된다. 이자율은 연 19.5%로 가장 높다.◆ 신한은행신용불량자를 제외한 신한 비자카드 회원은 누구나 이 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다. 회전결제 신청 및 약정서를 작성, 가까운 영업점에 내면 된다. 일시불 구매만 리볼빙 대상이며 결제율은 10%. 이자율은 14%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