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일본의 다이이치간쿄 닛폰코교 후지 등 3개 은행이 ‘미즈호파이낸셜그룹’으로 통합한다고 발표했다. 질세라 올 3월에는 산와 도카이 아사히은행 등의 합병계획 발표가 이어졌다.이같은 ‘일본판 금융빅뱅’은 금융지주회사라는 제도를 매개로 이뤄진다. 금융지주회사라는 지붕아래 대기업위주 도매금융, 중소기업 소형거래부문, 투자·국제업무부문 등 기능별 자회사를 두고 인력정리를 포함한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구상이다.‘1997년 외환위기 이후 은행권 부실정리에는 일본보다 앞섰지만 합병 등 구조조정을 통한 경쟁력 강화에는 밀리고 있다는 느낌’(이헌재 재경부 장관)을 국내 금융계 인사들이 갖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2차 금융구조조정의 시급성을 누구나 인정하면서도 올들어 총선이라는 정치일정이 구조개혁의 발목을 잡아왔던게 사실. 때문에 금융계는 각종 ‘설(說)’만 무성한 채 투자자들의 혼란만 부채질했다. 추락하는 금융주는 끝을 몰랐고 은행권에 쏟아부은 막대한 공적자금을 회수해 2차구조조정의 재원으로 삼겠다는 정부의 거듭된 발표도 공허함만 더했다.총선 후 2차 금융구조조정의 열쇠는 금융지주회사에서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강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일본의 움직임도 이런 주장에 힘을 더해주는 요소.지난 18일 총선후 언론(중앙일보)과 첫 단독 면담한 이용근 금융감독위원장은 금융지주회사법을 서둘러 제정해 금융구조조정의 속도를 붙이겠다고 말했다. 이위원장은 산업 기업 수출입 등 정부은행과 조흥 한빛 등 공적자금 투입으로 정부가 대주주 위치에 있는 은행들을 금융지주회사로 묶어 도매금융과 소매금융, 투자부문, 국제업무 등 기능별 자회사로 개편하겠다고 말했다고 보도됐다.◆ 겸업화·대형화 앞당기는 기폭제이튿날 이위원장의 발언이 파문을 일으키자 김영재 금감위 대변인은 “정부는 금융지주회사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국회가 열리는 대로 입법화할 계획”이라면서도 “그러나 정부가 특정한 구조조정의 픽처(그림)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며 여러가지 밑그림들을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해명했다.총선전 국민·주택은행간의 합병설 등으로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지만 금융지주회사를 축으로 한 은행권 재편이 2차 금융구조조정의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주장은 이미 제기된바 있다. “금융지주회사에 공적자금 투입은행의 지분을 넘겨 자회사 형태로 만든 뒤에 시간을 갖고 합병을 추진하는 것이 유일한 대안”(위성복 조흥은행 행장)이라는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금융연구원도 단순한 은행간 합병보다 금융지주회사를 통해 자회사간 업무영역과 협력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보다 큰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조흥 한빛 외환은행 등도 자체적으로 금융지주회사를 설립해 개인 기업 카드 투자 사이버 등의 부문으로 개편하는 안을 검토중이다. 금융지주회사를 통한 은행권 빅뱅의 이니셔티브를 쥐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금감위는 금융지주회사법 초안을 마련해 놓은 상태. 다만 금융지주회사를 통한 구조조정이 불러올 파괴력때문에 신중한 입장이다. 주주 노조 경영진 고객 등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금융지주회사의 탄생은 금융권의 겸업화 대형화를 앞당기는 기폭제로서 일반인의 상상을 뛰어넘는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금감위 고위 관계자)다음달중 청문회를 통한 마지막 의견수렴을 거쳐 늦어도 6월께는 입법과정을 통해 금융지주회사가 제도화된다. 막이 올랐을 때 무대에 등장할 주인공이 되기 위해 금융권의 물밑 경쟁은 이미 치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