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원확보·회원국 보유금 처분 등 개편문제 현안 대두 … 근본개혁 목소리 높아
지난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IBRD) 춘계회의를 계기로 IMF 개편안에 대한 논의가 재개되고 있다. 앞으로 세계 각국들이 IMF 개편문제에 대해 어떤 식으로 결론을 내느냐에 따라 향후 국제금융시장을 읽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줄 것으로 예상된다.본래 IMF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바로 직전연도인 1944년에 국제금융시장의 안정을 기할 목적으로 창설됐다. 그후 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세계 어느 국제기구보다 주어진 역할을 잘 해온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이제까지 국제간 자금흐름은 독일과 일본의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분과 중동의 오일머니가 국제금융시장에 재환류되는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했기 때문이다.대부분 이들 자금은 실물과 연계된 자금임에 따라 한국과 같은 개도국에 유입된다 하더라도 유입국내의 투자환경 변화와 관계없이 오랫동안 머물렀다. 이에 따라 개도국의 경제발전에 상당한 도움을 주었다. 당연히 이런 환경하에서 IMF는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었다.문제는 90년대 들어 국제간 자금흐름의 성격이 바뀌면서 IMF는 점차 무기력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90년대 이전까지 국제간 자금흐름을 주도했던 실물과 연계된 자금은 2선으로 후퇴했다.독일은 동서독 통합과정에서 화폐의 교환비율을 잘못 설정함에 따라 그때까지 경상수지흑자국이 적자국으로 전락했다. 일본도 버블이 해소되는 과정에서 국제금융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자금여력이 부족했다. 중동의 오일머니는 유가 자체가 떨어진 데다 90년대 이후 경제개발에 나서면서 많은 재원을 필요로 했다.대신에 헤지펀드를 비롯한 투기자금들이 국제금융시장 전면에 등장했다. 본래 헤지펀드는 1949년에 미국인 알프레드 존스에 의해 처음으로 설립됐다. 그후 국제금융시장에서 두각을 내지 못하다가 90년대 들어 정보통신의 발달로 국제금융시장이 단일화되면서 크게 활성화됐다.헤지펀드가 가장 기승을 부리던 98년8월 러시아 모라토리엄 당시 헤지펀드수는 4천7백여개, 투자원금이 4천억달러에 이르렀다. 이들 펀드들의 레버리지 비율(증거금대비 최대투자가능 금액)이 평균 20배인 점을 감안하면 최대 8조달러까지 투자가 가능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IMF 추가재원 확보 미국 미온적 태도헤지펀드는 단순히 금융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투자자들의 기금(fund)이라는 점에서 이전의 자금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다시 말해 헤지펀드는 자신을 믿고 맡긴 투자자와의 신뢰유지를 위해 ‘투자이익 극대화’ ‘비용 최소화’ ‘투자위험 민감화’라는 3대 원칙으로 자금을 운용할 수밖에 없다.자연히 헤지펀드는 투기적이며 군집성을 띠면서 시장교란적인 성격으로 변했다. 이에 따라 특정국가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하면 곧바로 인접국가로 확산됐다. 금융위기가 범세계성을 띠게 됐다. 그만큼 IMF가 제기능을 다하기 위해서는 과거보다 많은 재원을 확보해야 가능했다.반면 냉전 종식 이후 국제관계가 세계 각국의 경제실리 추구에 의해 좌우됨에 따라 재원확보가 어려워졌다. 97년 하반기 아시아 외환위기 과정에서 IMF의 추가 재원을 확보하는 문제에 대해 미국이 보여준 미온적인 태도는 이같은 사실을 단적으로 입증해 주었다. 더욱이 90년대 들어 멕시코, 한국과 같은 개도국들의 금융위기 과정에서 잇따른 자금지원으로 있는 재원마저 고갈됐다.이런 환경에서 IMF가 무기력 증세를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때부터 IMF의 개편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지금까지 논의된 IMF 개편안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크게 두가지 방향으로 요약해 볼 수 있다.하나는 IMF가 관장하는 현실이 변화됐기 때문에 차제에 IMF를 해체하자는 급진적인 방안이다. 대신 새로운 환경에 맞게 세계금융기구(WFA)를 창설하자는 것이다. 한때 이 방안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검토되기도 했으나 무엇보다 IMF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의 반대로 현재는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최근에는 헤지펀드를 비롯한 단기성 자금에 대한 효과적인 규제책을 마련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재원을 확충하고 앞으로 재원지출에 있어서는 단기긴급지원에만 국한시켜서 IMF의 기능을 보완하자는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는 상태다. 특히 미국이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그동안 헤지펀드를 비롯한 단기성 자금을 규제하는 방안으로는 미 달러화를 법화(法貨)로 채택하자는 달러라이제이션과 차제에 아예 결제통화를 없애 버리자는 대안경제론, 환율변동에 상하 제한폭을 설정하는 목표환율대(target zone)를 차기 국제통화제도로 도입하자는 안이 거론됐다.IMF의 재원을 확보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보유금을 처분한다든가, 추가출자분을 확보하는 방안이 거론됐다. 실제로 IMF 회원국들이 보유금 처분에 나서면서 한때 국제상품시장에서 금값이 크게 폭락한 바 있다. 앞으로 이 문제는 IMF 개편문제에 있어 핵심적인 사안이다.이번 위싱턴 총회를 계기로 앞으로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IMF 개편안도 이같은 각도에서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면 앞으로 IMF는 국제금융시장 안전판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헤지펀드 등 국제투기자금 활동 지속세앞으로 국제간 자금흐름은 두가지 커다란 줄기가 형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나는 헤지펀드를 비롯한 국제투기자금들의 활동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다른 하나는 지식과 정보, 인적자원까지 구체화(embodied)된 이른바 젤리형 자금(jelly money)이 시간을 갖고 국제간 자금흐름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된다.국제금융시장에서 젤리형 자금이 주도되면 세계 경제는 경기순환 주기가 짧아지고 진폭이 줄어들면서 외형상으로는 안정성장을 구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부분 지식형 상품들은 라이프 사이클이 짧고 기존의 상품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상품들이 쉽게 개발될 수 있기 때문이다.반면 이 자금을 수혜하느냐 여부에 따라 국가간 혹은 한 국가내에서 계층간의 빈부격차는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 21세기 세계 경제 최대현안으로 남북문제를 꼽고 있고 냉전체제를 대체할 새로운 이념(ism)으로 70년대 유행했던 새로운 형태의 종속이론이 등장할 것이라는 예상은 이런 각도에서 이해된다.결국 외형상으로는 세계 경제나 국제금융시장이 그럴 듯해 보인다 하더라도 세부적으로 들여다 보면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요인이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그동안 주로 거시적인 측면만 다뤄온 IMF가 이런 환경에서 제 역할을 다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현시점에서 IMF의 보다 근본적인 개혁이 요구되는 것도 이런 연유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IMF가 어떤 방향으로 개편안을 모색하든 간에 향후 국제금융시장은 커다란 변화를 겪을 것이라는 점이다.©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