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전 IMF사태로 온 나라가 돈 가뭄에 허덕일 때, 소위 ‘땅 부자’로 불리던 기업들은 더 깊은 속앓이를 해야 했다. 틈날 때마다 땅이며 건물이며 각종 부동산을 매입해 덩치를 키웠지만 정작 어려운 시기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도움은 커녕 팔리지도 않고 값만 떨어져 가는 통에 애물단지가 따로 없었다. ‘이 때다’하고 들어온 외국계 큰손들에게 헐값으로 넘겨진 대형 물건도 적지 않았다.보다 못한 정부가 손을 썼다. 1998년 9월 「자산유동화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부동산의 증권화 또는 유동화로 표현되는 자산유동화증권(ABS)과 주택저당채권 유동화증권(MBS)을 도입했다. 고액에 처리가 쉽지 않은 부동산을 채권이나 수익증권 형태로 만들어 여러 사람에게 나눠 판다는게 기본 개념이다.이 제도를 통해 부동산 소유자는 ‘묻혀있는 돈’을 캐내 활용할 수 있고, 투자자는 소액으로 부동산에 간접 투자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또 본격적인 의미의 부동산뮤추얼펀드인 부동산투자신탁(REITs)제도의 도입을 위한 법률이 올해 안에 제정돼 내년부터 시행될 예정이다.지난해 부동산증권화 상품 중 가장 먼저 도입, 시행된 것은 ABS. 부동산 뿐 아니라 각종 채권, 유가증권 등 모든 자산을 근거로 삼을 수 있어 도입 1년여만에 총 18조원이 넘는 물량이 발행됐다. 금융기업, 공기업 등도 금융채나 회사채 발행 대신 ABS 발행으로 자금조달을 꾀하는 추세다.◆ ‘묻혀있는 돈’ 캐내 활용 효과이 가운데 자산관리공사(옛 성업공사), 토지공사, 주택은행 등은 간간이 토지 및 주택연계채권을 담보로 ABS를 발행해 왔다. 이들 ABS는 고액 상품이라 주로 연기금, 보험사 등 기관투자가가 매입해 갔다.하지만 앞으로는 1백만원 안팎 단위의 부동산 담보 ABS 발행이 늘어나 개인투자자들의 재테크 수단으로 각광받을 전망이다. 이미 토지공사가 기업구조조정용 토지를 자산으로 5천5백억원 규모의 ABS를 발행하면서 이중 1천2백억원어치를 개인투자자에게 배정한 바 있다.실제로 수익률이 은행 정기예금 금리보다 1~2% 높고 신용평가기관으로부터 AA이상 우량등급을 받은 ABS는 안정적인 중장기 투자상품으로 권할 만하다는 평이다.지난 4월7일에는 한국주택저당채권유동화(주)(KoMoCo)가 4천억원 규모의 MBS를 처음으로 발행했다. MBS제도는 흔히 전세보증금도 안되는 돈으로 ‘내집’을 마련할 수 있는 선진국형 주택금융으로 알려져 있다.그러나 이 제도가 정착돼 은행, 주택할부금융사, 보험사 등이 장기 저리의 주택금융상품을 풍부하게 내놓기까지는 적어도 5년 정도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소득에 비해 집값이 지나치게 비싼데다 채권 금리마저 높은 편인 우리나라 실정에서는 장기 저리로 돈을 빌려주는 금융기관이 쉽게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즉 미국식 모기지제도에서 본을 떠왔지만 한국화에는 시행착오가 뒤따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LG건설 임신영차장은 “부동산시장이 개방되면서 외국의 선진 주택금융기법을 도입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나 정책 및 도입 전략 측면에서 한국화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정착이 빠를 것”이라고 지적했다.한편 부동산뮤추얼펀드로 불리는 리츠(REITs)는 시행을 앞두고 관련업계의 최대 관심사로 떠올라 있다.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모집해 부동산에 투자하고 그 개발이익이나 시세차익을 배분하는 원리는 기존의 주식형 뮤추얼펀드와 투자 대상만 다를 뿐 거의 유사하다. 금융계, 부동산신탁업계에서는 이미 전담팀이 꾸려져 있고 국민은행, 토지신탁 등에서 리츠 형식의 금전신탁 상품 발매를 준비하고 있다.◆ ABS 발행, 신용평가 기준이 걸림돌이같은 부동산증권화 상품들은 부동산의 유동성을 높여주고 투자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는데 큰 기여를 한다. 하지만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높은 상태다. ABS의 경우 발행이 급증하는 만큼 신용평가기관의 평가기준문제가 도마 위에 올라 있는 상태다. MBS제도는 ‘한국 부동산시장의 특성에 과연 적합한가’하는 원론적인 의문이 심심치않게 제기되고 있다.특히 리츠제도는 사이비 부동산뮤추얼펀드 출현과 이에 따른 피해, 부동산 경기 과열까지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제도 전반의 인프라가 확실히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도입 자체가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 박헌주 국토연구원 토지연구실장의 지적이다.★ 부동산증권화 상품 풀이●자산유동화증권 (ABS·Asset Backed Securities)기업이 재무구조 개선이나 자금회전을 쉽게 하기 위해 각종 채권이나 유가증권, 부동산을 담보로 발행하는 증권이다. 지난 98년 자산유동화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지난해부터 발행되기 시작해, 지금까지 총 18조3천억원어치가 발행되었다. 주로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하는 고액 채권형태로 발행되었으나 최근들어 개인투자자를 위한 소액 부동산 담보 상품이 발매되기 시작했다.●주택저당채권 유동화증권(MBS·Mortgage Backed Securities)은행 등 금융기관이 주택을 구입하고자 하는 고객에게 해당 주택을 담보로 대출해 준 채권을 중개회사가 사들여 이를 담보로 발행하는 증권이다. 이 증권은 자본시장에서 투자자들에게 매각되고 매각자금은 당초 대출을 취급한 금융기관에 돌아감으로써 주택자금 대출 재원으로 사용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집값의 20~30%만 있으면 장기 저리로 주택자금을 융자받아 집을 마련할 수 있게 뒷받침하는 제도로 이해하면 된다. 최근 한국주택저당채권유동화(주)(KoMoCo)가 국민주택기금이 보유하고 있는 채권 8만계좌를 기초로 4천억원 규모의 MBS 9종을 발행한 바 있다.●부동산투자신탁(REITs·Real Estate Investment Trusts)금융기관이나 자산운용기관이 다수의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모아 각종 부동산, MBS, 부동산관련 대출 등에 투자한 뒤 그 수익을 투자자에게 배분하는 상품을 말한다. 흔히 ‘부동산뮤추얼펀드’라고 부르며 크게 회사형(주식형), 신탁형으로 구분된다. 건설교통부는 올해중 부동산투자회사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제정해 오는 9월 정기국회에 상정, 통과시킨 뒤 내년부터 시행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