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금융자본 수익 찾아 유로랜드 탈출 … 약세 지속될 듯

최근 들어 국제외환시장에서는 유로화 환율이 연일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4월28일 현재 유로화 환율은 유로당 0.91달러대를 기록해 유로화 출범 이후 약 30%에 가깝게 떨어지고 있다.통상적으로 한 나라의 통화가치가 그 나라의 경제실상을 반영하는 얼굴이라는 기존의 인식에서 바라볼 때 최근의 유로화 약세는 이해가 안가는 현상이다. 무엇보다 유로랜드의 경제성장률은 금년 들어 3%대로 90년대 이후 최고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그러면 최근의 유로화 약세는 어디에 원인이 있는가. 90년대 이후 세계경제는 금융자본의 크기가 실물경제 규모보다 훨씬 크다. 총투자 가능한 자금까지 감안한다면 그 비율이 4대 1이 될 정도로 금융자본이 훨씬 크다. 자금성격도 실물과 연계된 과거 80년대 자금과 달리 단순히 금융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자금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대표적으로 헤지펀드만 하더라도 전세계적으로 3천여개의 펀드들이 3천억달러의 투자원금을 운용하고 있다. 현재 이들 펀드들의 레버리지 비율(증거금대비 투자가능 금액)이 평균 15배에 이르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최대 투자 가능한 금액은 4조5천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한 때는 8조달러에 이른 적도 있었다.물론 이러한 상황에서는 환율 금리 주가와 같은 가격변수는 실물경제 여건보다는 국제간 자금의 향방에 따라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최근에 유로화 가치가 약세를 보이는 것도 ‘유럽경제 호조’ 라는 실물경제 여건과 관계없이 유럽내 자금들이 유로랜드 밖으로 이탈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외국인 투자 차별, 이탈 부추겨현재 유럽기업들은 유로랜드 밖에서 인수·합병(M&A)이 활발하다. 포트폴리오 자금도 투자제도상에 있어 외국인에 대한 차별적 요소로 기존에 유입됐던 유럽내 자금들이 이탈하고 있다. 더욱이 최근 유럽통화동맹(EMU)에 대한 실패우려가 해소되자 당면한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럽중앙은행(ECB)이 의도적으로 유로화 약세를 방치하고 있다.최근에 수정전망치를 내놓고 있는 세계 예측기관들은 금년 하반기 들어 유로화 가치는 회복세를 보이기 시작해 금년말에는 1.12∼1.15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물론 하반기에도 3~3.5%의 성장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실물경제의 여건을 주된 근거로 삼고 있다.그러면 과연 세계 예측기관들의 전망대로 금년 하반기 들어 유로화 가치가 회복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분명한 것은 현재 유럽투자제도에서 국제간 자금흐름을 제약하는 요소가 제거되지 않을 경우 이러한 전망은 의외로 맞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지난 4월27일만 하더라도 유로화 가치가 너무 떨어짐에 따라 유럽중앙은행이 기존의 입장에서 벗어나 유로화 가치안정 차원에서 기준금리를 0.25% 포인트 인상했다. 그 후 유로화 환율은 당초 기대와는 달리 오히려 추가적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이후 세계 예측기관들의 유로화 환율전망이 계속해서 빗나간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앞으로 유로화 약세가 지속될 경우 국제금융시장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주요 통화가 경제여건과 크게 괴리되어 움직이게 된다는 점이다. 최근에 유럽경제 호조와 달리 유로화가 약세를 보이고 있다. 동시에 유럽내에서 이탈된 자금이 일본으로 유입됨에 따라 경기부진이라는 일본경제 여건과 관계없이 엔화가 모든 통화에 대해 강세를 보이고 있다.이러한 상황에서 시장참여자들의 심리가 급변할 경우 급격한 자본이동과 환율변동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4월 중순에 발표된 국제통화기금(IMF)의 ‘2000년 세계경제 전망’에서 미국경제의 붕괴가능성과 함께 이 요인을 세계경제 양대 불안요인으로 지목하고 있다.우리 경제에는 유럽에 대한 수출차질과 환차손 부담이 우려된다. 특히 지난해초 유로화가 출범할 당시 대부분 한국은행과 국내기업들이 유로화 강세를 예견해 유로화 보유비중을 늘려 놓은 점을 감안하면 최근 유로화 가치급락에 따른 환차손이 의외로 클 것으로 예상된다.특히 최근 금리인상 논쟁과 관련해서 최근의 유로화 폭락현상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지금까지 국제저금리 기조가 지속돼온 상황에서는 국제간 자금흐름은 주식시장의 기대수익률에 의해 주도돼 왔다.그 결과 환율 금리 성장률과 같은 모든 경제변수가 주가에 의해 좌우돼 왔다. 문제는 최근 들어 이러한 조짐이 흐트러지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 주가의 과열우려가 제기되고 있고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금리인상에 나서면서 그동안 주가상승에 가장 큰 요인인 국제유동성마저 위축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채권시장 기대수익률이 국제 자름흐름 결정그렇다면 앞으로 국제간 자금흐름은 무엇에 의해 결정될 것인가. 아직까지 뚜렷하게 부각되고 있지 않지만 채권시장의 기대수익률에 의해 좌우될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 특히 단순히 금융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국제투자자금의 속성상 국제간 자금흐름의 결정요인으로 단기채권시장의 기대수익률이 기존의 주식시장의 기대수익률을 대체할 가능성이 높다.그래서인지 최근 들어 선진국을 중심으로 장단기 금리운용에 있어서 새로운 변화조짐이 눈에 띄고 있다. 이미 미국은 장단기 금리가 역전돼 ‘단고장저’가 된지 오래다. 여타 선진국들도 단기금리를 올려 장기금리와의 스프레드를 최대 2% 이내로 줄여 놓은 상태다. 대만과 싱가포르와 같은 경쟁국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반면 우리나라는 단기금리는 5%대로 억제되고 장기금리는 10%대가 유지되는 상황이 1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금융시장에서는 단기부동자금이 증가하고 기업을 중심으로 자금조달과 운용상의 부조화(mis-match) 현상이 심화되면서 갈수록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대외적으로도 여타 국가와의 단기금리차가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지금까지 주식시장에서 제공해 줬던 투자메리트를 외국인에게 제공해 주지 못할 경우 향후 외화운용에 있어 상당한 차질이 예상된다. 특히 금년 들어 무역수지가 악화되는 상황에서 자본수지마저 악화될 경우 한동안 그럴듯해 보이던 경제에 어느 순간 위기감이 확산될 우려가 있다.따라서 정책당국에서는 현재 인플레 우려가 없다고 해서 저금리를 계속해서 가져가는 정책기조는 한번쯤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 최근에 세계경제는 고성장하에 저물가라는 신경제 국면이 확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종전처럼 금리정책에 있어 인플레를 중시했다가는 자칫 잘못하면 정책을 실기(失機)할 우려가 있다.오히려 물가가 안정됐다 하더라도 효율적인 자원배분 차원에서 장단기 금리와 대내외 금리차간의 적정수준을 유지하는 데에 금리정책의 중점을 둬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현재 장단기 금리차가 5% 포인트 이상 벌어진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도 금리인상을 검토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