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그룹 계열 대기업 대리인 박종철(33)씨. 결혼한지 2년째인 그는 부인과 5개월 된 딸이 있다. 현재 매달 보험료로 18만원 가량을 낸다. 그는 자신이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이라 남보다 많은 보험에 가입했다고 생각한다. 국내 S보험에 본인의 생명보험(월 보험료 약 2만원)과 암보험(3만원), 간보험(2만원)등 건강보험을 들었다. 박씨는 “모두 보험설계사를 하는 이웃의 권유에 따라 강요 반, 필요 반으로 가입했다”고 말했다.7개월 전에는 친구가 일하는 D생명에 부인의 여성질병보장보험(5만원)을 들었지만, 이 친구가 설계사를 그만두었기 때문에 곧 해약할 생각이다. 1개월 전에는 갓 태어난 딸을 위해 회사에 늘 찾아오는 S 생명의 설계사 아주머니를 통해 어린이보험(3만5천원)에 추가로 가입했다.그러나 최근 친구의 죽음을 접하자 지금 들어있는 보험만으로는 보장이 충분치 않다고 느껴, 보험을 다시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자신의 건강보험과 생명보험 등 3개의 보험을 해약하고 월 보험료가 28만원인 외국계 P사의 종신보험에 가입계약을 했다. 박씨 스스로 먼저 보험 판매인을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차와 관련해서는 H해상의 자동차 종합 보험과 운전자 보험(월 2만원)에 들어있다. 자동차보험은 전에 근무하던 직장내 중계인을 통해 가입했다. 하지만 최근 인터넷으로 자동차 보험에 가입하면 보험료를 싸게 해준다는 광고를 보았다. 그래서 이달로 만기가 끝나면 회사를 바꿔 재가입할 생각이다.보험은 은행과 함께 대단히 보수적인 금융회사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보험업도 이제 더이상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폭풍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무풍지대가 아니다. imF이후 타 금융기관과 마찬가지로 극심한 환경의 변화를 겪으면서, 그리고 다국적 보험사들의 한국 진출이 꾸준히 이어지면서 예견돼 왔던 변화들이 하나 둘 현실화되고 있다.생명보험협회 집계에 따르면 국내 생명 보험시장은 1960년부터 경제 위기중이던 98년을 제외하고는 39년간 플러스 성장을 계속해왔다. 연평균 40%라는 기록적인 성장률을 나타냈으며, 1999년 현재 전국의 가구 중 75%가 하나 이상의 보험에 가입해 있다. ‘냉장고 보급률만은 못해도 이만하면 생필품’이라는 표현이 무색하지 않다. 99년 SwissRE사가 발간한 ‘시그마’잡지의 세계보험시장현황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보험시장(수입보험료 기준)은 세계 6위 규모(손해보험 12위, 생명보험 6위)에 이른다.그러나 각종 지표는 ‘이제 좋은 시절이 갔다’ 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시장은 포화 상태에 이르러 성장률은 계속 둔화되고 있다.(표 참조)◆ 국내사 인수 혹은 진출회사 줄이어imF로 촉발된 구조조정으로 보험업계는 이미 한차례 홍역을 치렀다. 태양 BYC 국제 고려 등의 생명보험사가 시장에서 퇴출됐고 동아 태평양 한덕 조선 등 6개사는 공개 매각됐다. 대한생명은 3조에 가까운 공적자금을 투입, 국영보험사로 변신했다. 손해보험에서는 대한화재에 공적 자금이 투입됐으며 현대해상과 LG화재가 그룹에서 분리했다. 여기에 구조조정의 충격이 완전히 가라앉기도 전에 자본력을 앞세운 외국계 보험사의 공세가 시작돼, 보험업계를 뒤흔드는 지진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독일계 다국적 금융그룹 알리안츠는 제일생명을 인수한 뒤 최근 공격적인 행보를 계속하는 중이다. 하나은행 지분을 인수, 대주주가 된데 이어 자산운용사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이 회사의 미셸 깡뻬아뉘 사장은 수차례 국내 화재보험사를 인수할 의사를 표시했다. 알리안츠와 호주의 보험사 HIH가 대한화재 인수를 놓고 물밑 접촉을 벌이는 것으로 알려졌다.해동화재의 주인도 바뀌었다. 6월16일 영국계 리젠트 퍼시픽 그룹이 8백66억원을 증자, 85%의 지분을 소유한 대주주가 됐고 ‘아이리젠트’라는 지주회사를 설립했다. 해동화재는 사명을 리젠트화재로 변경했다. 아이리젠트는 자동차 인터넷 보험에 특화, 보험료를 8%인하한 인터넷 전용 자동차 보험을 판매해 가격 경쟁에 불을 붙여 업계를 긴장시키고 있다.한국 시장에 새로 진출하는 보험사들도 줄을 잇는다. 영국계 보험사인 로얄 앤드 선얼라이언스는 7월1일부터 인가를 받아 기업 손해보험 영업을 시작했다. 이밖에 프랑스계 방카슈랑스 전문 보험회사인 카디프, 텔레마케팅 전문회사인 미국의 페니사도 올해 한국 시장에 진입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외국사의 한국 보험사 M&A설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이미 국내에서 영업을 하고 있는 푸르덴셜 ING 메트라이프 등의 외국사들도 영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내에서 50년 가까이 영업을 해왔지만 시장 점유율이나 인지도 면에서 열세를 면치 못했던 AIG는 최근 사명을 변경하고 공격 영업에 나설 뜻을 밝혔다.갓 진출한 회사는 물론, 국내서 영업중인 다국적 보험사들의 규모는 아직은 미미한 상태다.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외국 보험사로 꼽히는 푸르덴셜과 ING생명의 전체 시장 점유율(수입보험료 기준)은 1999년 기준 각각 0.4,0.5%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들의 성장 속도만큼은 기록적이다. 푸르덴셜생명의 경우 1993년 6천2백건이었던 보유계약이 97년 6만2천9백건, 98년 9만7천7백건, 99년 14만건 등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또한 국내에 진출한 회사의 규모는 보잘것없다 해도 본사는 막강한 자본력을 자랑하는 세계적 금융그룹이다. 국내 시장에서 절대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국내 보험사들이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외국계 보험사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 생명보험협회 신이영 상무는 “요즘 보험사들 간에 영문 이름을 붙이는 것이 유행이다. 전에는 서로 국내사라고 불러달라고 아우성이더니 요즘에는 합작사도 외국사를 자처한다”며 이같은 분위기를 전했다.◆ 시장원리만이 ‘게임의 법칙’다국적 금융사들이 유럽 미국 일본 등 해외 시장에서 성공을 일구어낸 노하우, 소위 ‘선진 서비스’가 미칠 파장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을 통한 판매 등 다양한 판매 기법도 이들이 들여오는 변화 중 하나다. 판매 기법의 변화는 가격 경쟁으로 직결된다. 보험사가 가입자로부터 거두어들이는 보험료에는 ‘사업비’가 포함되어 있어, 어떤 방식을 택해 판매하느냐에 따라 보험료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가입자의 돈을 받아 운용하는 방식도 이들이 한 발 앞서 있다.이들은 규모를 중시하는 전략을 택하지 않는다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이제까지 국내 보험사들은 ‘시장점유율이 얼마인가’ ‘업계에서 몇위 회사인가’등을 성공 판단의 잣대로 삼았다. 그러나 외국계 회사의 임원들은 이같은 질문에 어리둥절한 표정부터 짓는다. AIG 손해보험의 장광명 부사장은 “투자 대비 이익 규모, 즉 수익성이 가치 판단의 척도일 뿐”이라고 말한다.이같은 외국계 바람은 디지털 혁명과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보다 철저한 시장원리를 ‘게임의 법칙’으로 만들고 있다.★ 인터뷰 / AIG 마케팅 부사장AIG 아시아지역 마케팅·커뮤니케이션 부사장“한국시장, 규모 비해 발전 늦은편”‘아메리카 생명’ ‘아메리카 홈 어슈어런스’는 최근 사명을 각각 ‘AIG생명’과 ‘AIG손해보험’으로 변경하고 한국 시장에서 적극적인 마케팅에 나설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이같은 전략을 실행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AIG아시아지역 부사장들에게서 한국 보험시장에 대한 견해를 들어봤다. 개별질문에 대한 두 부사장의 답변을 종합 정리했다.▶ 최근 한국 보험시장에서는 다국적 금융그룹들의 진출이 잇따르고 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는가.우리와 마찬가지로, 지금이 진출 적기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우리가 1968년부터 한국에 진출하기는 했지만 활발하게 영업하기에는 제약이 많았다. 전에 한국은 닫힌 시장이었다. 소비자 운동 등 외국 기업의 영업에 대해 적대적이었고 규제도 많았다. 지금은 이 모든 것이 사라지고 있다. 정확한 수치는 기억나지 않지만 시장조사결과에 따르면 한국 소비자들이 외국 기업의 상품 중 보험에 대해 상당한 호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시장의 구체적인 매력은 무엇인가.가족에 대해 책임감이 강한 한국 문화의 특성상 보험 구매동기가 강하다. 또 규모가 세계 7위에 이를 정도로 크고 시장 규모에 비해 발전이 늦다. 소비자는 다양한 방식의 상품 구매, 다양한 보장, 다양한 생활 양식에 따른 종합 재정 계획 등을 원하는데 비해 보험사들은 이같은 서비스를 충분히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소비자의 수준이 보험회사를 앞서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아시아 시장 진출의 교두보로 삼을 수 있고, 북한 진출도 생각할 수 있다.▶ 외국사들의 진출이 활발한 만큼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이다. 대응 전략은.경쟁을 반긴다. 많은 외국사가 들어오면 오히려 영업이 수월해진다고 본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우리의 경쟁상대는 외국사가 아니라 삼성같은 한국회사다. 우리는 일부 상품에 특화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영역의 상품을 취급한다는 전략을 갖고 있다.▶ 한국에서 50년 가까이 영업을 한데 비해 인지도가 극히 낮은데.일본에서도 똑같은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일본 시장에서 97년8월에 인지도 조사를 했을 때 1%미만에 불과했다. 하지만 2년 동안 대대적인 마케팅을 한 결과 보험 가입자가 4만명이 됐다. 한국과 일본 시장은 성격이 지극히 유사하다. 마찬가지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한국회사를 인수할 의사가 있는가.매력적인 인수 상대가 있다면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다. 그러나 인수 합병을 통해 성장하는 것은 우리의 주요 전략은 아니다. 우리는 인프라를 구축해 조직 자체가 유기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