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화합·작업 공정 세세히 챙겨 라인 풀가동 … GM·포드 ‘약진’, 일본업체는 ‘뒷걸음질’

“생산 효율을 높이는 지름길은 로봇이나 그 어떤 자동화 시설도 아닌, 좋은 경영(good management)과 노사 화합.” 일본 기업들의 높은 생산성을 따라 잡기에 절치부심해 온 미국 자동차업체들이 20여년간의 각고 끝에 최근 내린 결론이다. 포드, 제너럴 모터스(GM), 다임러 크라이슬러 등 ‘빅 3’는 이같은 경험칙에 의거해 ‘좋은 경영’에 심혈을 기울였고, 그 결과로 10여년전 두배로까지 벌어졌던 미·일 자동차업체간 생산성 격차가 거의 대등한 수준으로까지 좁혀졌다고 최근 발표된 한 보고서가 밝혔다.미시간주에 본사를 둔 컨설팅업체 하버 & 어소시에이츠사가 최근 발표한 미국 자동차 산업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포드사의 애틀랜타(조지아주) 공장이 사상 처음으로 일본계 자동차 공장을 제치고 ‘북미에서 가장 생산 효율이 높은 공장’으로 선정됐다. 미국 자동차업체들의 ‘생산성 약진’은 전반적인 성적표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자동차업계의 노동 생산성은 ‘자동차 한대를 만드는데 하루 평균 투입되는 인력의 숫자’로 비교된다.하버 & 어소시에이츠사가 주요 자동차업체들에 대해 이 수치의 지난 4년간 변동치를 조사한 결과 미국계 3사는 큰 폭으로 향상된 반면, 일본계의 주요 3사 가운데 2개사는 생산성이 오히려 뒷걸음질한 것으로 나타났다.지난 95년 자동차 한대를 만드는데 3.64명을 투입했던 GM의 경우 작년에는 3.04명으로 향상폭이 가장 컸고, 포드사는 95년의 3.11명에서 작년에는 2.97명으로 일본 자동차업체들과 거의 어깨를 나란히 했다. 다임러 크라이슬러사도 같은 기간중 3.41명에서 3.20명으로 개선됐다. 반면 일본계 메이저 자동차업체들중에서는 혼다만이 2.53명에서 2.46명으로 나아졌을 뿐, 도요타(2.62명→2.73명)와 닛산(2.09명→2.52명)은 생산성이 하락했다. 평균치로 따지면 여전히 일본계 자동차업체들의 생산성이 미국계 회사들을 압도하고 있지만, 몇몇 미국계 자동차 공장의 생산성은 오히려 일본계를 능가할 정도로 괄목할 변화를 보이고 있다.미국계 회사들의 이런 변신은 대일(對日) 생산성 격차가 절망적인 수준으로까지 벌어졌던 10여년 전에 비하면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미국 자동차회사들은 자동차 한대를 만들기 위해 일본계 회사들보다 배 이상 많은 근로자를 투입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21~46%만 더 투입하면 되는 수준으로 생산성이 개선됐다.◆ 노사 안정 주력 …높던 결근율까지 낮춰또 첨단 자동화 설비를 가동한다고 해서 꼭 생산 효율이 높아진다는 보장도 없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강도높은 육체 노동이 필요하거나 위험한 공정은 로봇 등 자동화 설비에 맡기는게 일반적인 추세지만, 이를 관리하기 위한 인력 비용이 만만치않게 소요되는 탓이다. 일례로 북미에서 가장 자동화 설비가 잘 갖추어져 있다는 미쓰비시자동차의 일리노이주 노말시 공장의 경우 지난해 북미지역 자동차 공장 가운데 노동 생산성이 가장 열악했던 것으로 조사됐다.그렇다면 생산 효율을 높이는데 가장 결정적으로 작용하는 요소는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좋은 경영’이라고 하버 & 어소시에이츠사의 로널드 E 하버 사장은 말한다. ‘좋은 경영’이란 무엇인가. 생산 공정의 세심한 부분까지 잘 챙겨서 불필요한 소모가 없도록 하는 것이 ‘좋은 경영’의 출발점이라는게 이어지는 설명이다. 특히 조간(組間) 교대를 할 때 생산 라인이 중단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그러나 GM과 포드, 다임러 크라이슬러 등의 경우 근무조들이 교대를 할 때마다 오랫동안 생산 라인이 작동을 멈추기 일쑤였다. 상당수 근무자들이 결근을 하거나 부품 인수인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탓이다.포드의 애틀랜타 공장 경영진은 긴밀한 노사 관계를 구축하고 세세한 작업 공정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점검하고 관리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특히 노사 안정에 주력한 덕분에 공장 직원들의 평균 결근율이 2%에도 못미칠 정도로 작업장 분위기가 안정됐다.포드 애틀랜타 공장에서도 한때 위기는 있었다. 올초들어 결근율이 슬금슬금 올라가더니 3%선을 넘어섰다. 이때 ‘해결사’로 나선 사람이 스티브 트루스데일 전미자동차노조(UAW) 포드 애틀랜타 공장 지부장이었다. 트루스데일 지부장은 결근율 상승으로 인해 생산성이 떨어질 경우 이는 회사의 수익 악화로 이어지고, 결국은 인력 구조조정이라는 부메랑으로 근로자들에게 귀결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지난 4월 전조합원들에게 일일이 편지를 보내 “무단 결근이 사라져야 일자리도 보장받을 수 있다”며 “근로자들은 책임감을 갖고 생산 라인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다임러 크라이슬러사의 캐나다 온타리오주 윈저 공장도 ‘세심한 경영’으로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킨 경우다. 모델 교체기때 흔히 되풀이됐던 장기간 동안의 생산 공백을 ‘준비된 경영’으로 크게 줄인 것이다. 예컨대 지난 95년에만 해도 이 공장에서 생산하던 미니 밴 모델을 교체했을 당시, 무려 석달 동안이나 라인을 멈춰야 했다. 그러나 올들어 모델을 다시 한번 바꾸었을 때는 공장 한 켠에 미리 신모델 설비를 설치해 놓는등 철저하게 준비한 결과 공장 폐쇄기간을 단 2주일로 대거 단축했다. 그러나 이 정도로 충분하다고 할 수는 없다. 일본계 자동차회사들은 단 하루만 공장문을 닫는 것으로 모델 교체의 공백 문제를 해결해내고 있다.◆ 사람 소중히 여기면 생산성도 높다십수년에 걸쳐 쌓이고 얽힌 문제점을 한 걸음에 풀어낼 수 없다는 점을 전제한다면, 미국 자동차회사들이 최근 보이고 있는 효율 개선의 속도는 매우 빠른 편이라고 할 수 있다.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북미에서 가장 비효율적인 자동차회사라는 소리를 들었던 GM의 경우도 최근 공정 단순화 등의 노력 덕분에 생산성을 끌어 올리는데 성공했다. 이전에는 자동차 한대를 완성하는데 문짝과 지붕, 후드 등의 부분품을 모델별로 제각각 다른 주물에 찍어서 조립했지만 지금은 주물 모델을 6가지로 단순화, 그만큼 생산성을 높이게 됐다.물론 혁신 과정에서 ‘일자리 상실’을 우려한 일부 근로자들의 반발 등 만만치 않은 홍역이 뒤따랐다. GM의 경우 지난 98년 미시간주 플린트 공장의 근로자들이 고용 안정 등을 요구하며 대대적인 파업을 벌이는 바람에 20억달러가 넘는 생산 차질이 빚어지기도 했다.그러나 이 과정에서 노사 양측은 서로에 대한 이해를 보다 넓히는 등 소득도 있었다. 파업 당시 노조측과의 협상 책임을 맡았던 조셉 스필만 주물 담당 부사장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람이며, 공장은 우리들 모두의 생활 공간이라는 점에 노사가 인식을 같이 하게 된 것은 매우 큰 소득”이라고 말한다.“생산성 향상의 지름길은 사람을 소중히 다루고 세세한 부분까지 관심을 갖고 챙기는 ‘좋은 경영’에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됐다.” 스필만 GM 부사장의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