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흐름 왜곡 등 각종 병목현상 제거 필요 … 구조조정후 성장 대체산업도 육성해야

한동안 국제금융시장에서는 미국경제의 향방이 화두(話頭)가 될 것같다. 물론 미국경기 논쟁은 세계경기의 명암과 맞물린 중대한 현안이다.일부에서는 금년에 5%에 달한 미국경제 성장률이 내년에는 2% 내외로 급락할 것으로 보고 있다. 만약 이런 예상이 현실화된다면 미국경제는 경착륙(hard-landing)이다. 반면 미국경제는 시간을 갖고 잠재수준인 3.5%로 안착해 연착륙(soft-landing)을 무난히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현재 미 연준리(FRB)의 공식적인 견해는 후자에 가깝다. 최근에 열렸던 상하원 위원회에서 그린스펀 의장은 지난해 6월말 이후 근 1년간 지속된 금리인상 효과가 미국경제가 연착륙 국면에 진입하고 있음을 시사한 바 있다.한 나라의 경기가 연착륙될 것인가 경착륙될 것인가는 크게 두가지 기준에 의해 판단된다. 하나는 성장의 질(質)이 얼마나 건전한가 여부다. 현재 미국경제는 ‘고성장-저물가’로 상징되는 ‘신경제’와 ‘고성장-저물가-저실업’으로 특징지어지는 ‘골디락스 경제’로 불릴 만큼 건전하다.다른 하나는 새로운 성장동인을 대체할 수 있는 능력이다. 미국경제의 장기호황국면을 성장동인별로 구분해 보면 제1기(91년 3월∼95년 3월)에는 구조조정 성과가, 제2기(95년 4월∼98년 8월)에는 강한 달러화 정책이, 제3기(98년 9월∼현재)에는 인터넷과 같은 첨단기술업종이 성장을 주도해 왔다.보는 시각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으나 이미 제4기에 미국경제를 이끌어 갈 성장동인으로 바이오 산업을 모색해 놓고 있다.결국 이런 점은 앞으로 미국경제가 연착륙될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해 주는 대목이다. 문제는 최근처럼 개방화되고 ‘미국중시의 질서(america -oriented society)’가 형성된 상황에서는 미국경제가 연착륙된다 하더라도 여타 국가들은 경착륙에 가까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경제 연착륙돼도 여타 국가 경착륙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미국의 수입은 매년 세계교역 증가율의 2배에 가까운 12%씩 증가해 세계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반면 미국경기가 둔화될 경우 미국의 수입은 성장둔화폭보다 더 떨어졌다. 미국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국가일수록 대미 수출이 급격히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최근 싱가포르 개발은행(DSB)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경제가 완만하게 둔화될 경우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와 아세안의 대미 수출은 미국경제가 둔화되기 시작한 첫분기에는 18% 감소하고 2001년 중반까지 약 12%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국제외환시장에서는 미국경기가 둔화되면 엔화, 유로화를 중심으로 달러화 가치의 약세가 예상된다. 이 경우 여타 국가들은 수출경쟁력 약화를 초래해 추가적인 경기둔화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동아시아 국가처럼 대부분 수출상품이 환율에 의존하는 국가일수록 심한 타격이 예상된다.결국 이런 점을 감안하면 대미 수출의존도가 낮으면서 품질, 디자인, 기술과 같은 가격이외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고 미국증시의 영향을 덜받는 국가일수록 미국경기 둔화에 따른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다.우리나라는 어떤가. 금년 들어 5월까지 대미 수출증가율이 33%에 달해 미국의 10대 수입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앞으로 미국경제가 둔화될 경우 대미 수출이 급감해 우리 경제가 크게 어려움을 당할 가능성을 시사해 주는 대목이다.앞으로 미국경기가 둔화될 경우 기업수익 감소로 주가하락이 예상된다. 국내 증시는 98년10월 이후 동조화 계수가 0.85∼0.9에 이를 만큼 미국 증시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 대내적으로도 주가를 상승시킬 만한 대체요인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현재 우리 국민들의 자산소득 비율, 자산소득의 한계소비계수를 감안할 때 주가가 10% 하락하면 0.4% 포인트 성장둔화효과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연초 이후 주가 하락으로 이미 1.2% 포인트의 성장둔화 효과가 발생된 셈이다. 여기에 부동산 경기마저 얼어붙어 경제성장에 도움되지 못하고 있다.우리나라와 같은 국제통화기금(IMF) 체제국가들은 초기에 성장을 이끌었던 수요측 성장엔진이 꺼질 경우에는 구조조정과 성장대체산업 육성을 통한 공급측 성장엔진이 마련돼야 경기급락없이 안정적인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다.물론 보는 시각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으나 대부분 전문가들과 국제금융기관들은 지금까지 추진해 왔던 구조조정이 아직까지는 성장엔진으로 연결되지 않고 있다는 시각이다.특히 재벌을 중심으로 기업의 구조조정이 추진되지 않고 있는 점을 최대불안요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영국의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 최신호에서는 ‘지금까지 기업구조조정은 피상적인 수준에 불과할 뿐’ ‘경쟁력 제고나 성장엔진과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하고 있다.현정부는 출범 이후 벤처산업을 새로운 성장산업으로 육성해 왔다. 이 과정에서 자본과 인력이 몰리면서 전통적인 성장엔진이었던 제조업이 홀대를 당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벤처기업도 최근에 자금난 심화, 투자가들로부터 신뢰상실이 겹치면서 표류하고 있다. 오히려 초기에 ‘벤처 붐’을 타고 출발했던 무늬만 벤처인 기업들이 정리되는 과정에서 추가적인 부담이 우려되는 상황이다.물론 현시점에서 단순히 성장률이 떨어지는 것이 반드시 나쁘다고는 볼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지속 가능한 성장기반을 마련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구조조정을 마무리하고 성장대체산업을 육성하는 것은 불가피한 과제다.문제는 구조조정과 같은 공급측 성장엔진은 단기적으로는 성장둔화 효과가 있음을 감안하면 수요 측면에서 여유가 있을 때 마련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그 기간을 6개월에서 1년으로 못박고 있다.이런 각도에서 단기적으로는 수요측 성장엔진이 급격히 꺼지는 것을 방지하는 데에 정책의 주안점을 둬야 한다. 현재 재정수지적자, 저금리 정책으로 신규로 성장급락을 방지할 수 있는 여지가 없는 상태다.◆ 구조조정 효과 가시화 불가피다행히 자금흐름 구조왜곡과 같은 각종 병목현상을 제거할 경우 수요측 성장엔진이 급격히 꺼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동시에 미국경제 둔화와 같은 대외환경 변화를 흡수할 수 있는 완충능력도 확보해 놓아야 한다.대신 공급측면에서 성장엔진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우선적으로 구조조정의 효과를 가시화시키는 일이 급선무다. 여러 대안중에서 최근처럼 ‘IMF 3년차 증후군’이 나타나고 구조조정이 표류하는 듯한 상황에서는 국민들로부터 도덕적 합의(moral sussion)를 구하는 것이 최선의 대안이 될 수 있다.새로운 성장대체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균형잡힌 산업정책이 요구된다. 벤처산업은 옥석을 가려서 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벤처기업은 집중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벤처산업으로의 과도한 자원집중 현상을 방지할 수 있고 제조업도 우리 경제의 성장엔진으로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분명한 것은 이러한 과정이 순조롭게 이루어지지 못할 경우 우리 경제가 언제든지 급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