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SW에 원예 접목, 수목기르기 만끽 … 연 5천억엔시장 공략

소득이 높아지고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취미 생활에서 또 다른 만족을 찾는다. 스포츠, 여행, 레저 등 자신의 욕구를 실현시킬 수 있는 여가활동이 대표적인 예다.정원을 가꾸거나 화초, 분재 등으로 집안을 장식하고 그 안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 역시 어느 나라에서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보편적 취미 생활중 하나다.하지만 토끼장처럼 좁은 집이 많고 자신만의 공간을 갖기 어려운 일본에서 일반 서민이 화초, 분재 등에 쏟는 관심은 유별나다. 손바닥만한 틈이 있어도 꽃 한송이를 심어놓거나 현관 앞을 자그마한 화분으로 장식하는 집이 수두룩하다는 데서도 일본인들의 원예에 대한 열기와 짙은 향수를 짐작할 수 있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이 주부들을 대상으로 지난달 하순에 실시한 앙케트에서도 원예는 가장 하고싶어하는 취미 생활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만큼 높은 지지를 받았다.일본의 동북지방 모리오카시에 본사를 둔 JFP(사장 누리하라 다케오)는 이같은 서민들의 잠재욕구와 시장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상품에 반영시켰다는 점에서 매스컴의 주목을 받는 업체다. 이 회사가 판매중인 상품의 이름은 ‘버추얼 가드닝(virtual gardenning)’으로 실제 눈으로 보거나 만질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브랜드 네임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일종의 소프트 웨어다.그러나 이 상품은 현실에서와 같이 소비자들이 컴퓨터 그래픽 화면에서 화초와 나무를 심고 기르거나 수목의 생육과정에서 보람을 찾을 수 있게 만들어졌다. 말하자면 컴퓨터업계의 첨단 소프트웨어 개발기술과 원예부문의 노련한 경험, 풍부한 데이터가 접목돼 만들어진 ‘대리만족’상품인 셈이다.JFP는 원래 원예와 관련된 사업을 하는 업체가 아니었다. 알프스전기가 생산하는 프린터의 제어소프트 등을 개발하는 소프트웨어 전문회사였다. 이 회사가 버추얼 가드닝의 상품화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은 본사가 자리잡은 모리오카의 지역적 특징과 일본 특유의 시장 상황을 주목했기 때문이었다.일본의 다른 어느 곳보다 산림이 풍부하고 자연환경이 오염되지 않은 모리오카에는 첨단 하이테크 기술을 보유한 중소 벤처기업이 즐비하다. 산업계에서는 이러한 기업들이 몰려 있는 모리오카 일대를 미국의 실리콘밸리에 빗대어 ‘포레스트 밸리(forest valley)’라고 부를 정도다. 이같은 환경 속에서 자란 JFP는 도전정신과 창의력으로 무장하고 원예와 관련된 시장의 돌아가는 상황을 눈여겨 보았다.◆ 수목 생장 관찰이 최대 매력가드닝으로 불리는 일본의 원예관련 비즈니스는 묘목, 비료, 도구, 각종 외장재 및 관련서적 판매 등을 포함해 연간 약 5천억엔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90년대 초반부터 수요가 본격 확산된데다 산토리 등 대기업들이 신품종 화초의 개발, 판매에 뛰어들자 초보자들의 관심도 높아져 그동안 고성장을 지속해 온 결과다.하지만 관련상품의 핵심 취급경로인 홈센터(집안을 가꾸는데 필요한 각종 도구와 DIY용품 등을 중점 취급하는 할인점형태의 대형판매점)가 고객확보를 위해 가드닝사업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왔다.시장이 초기진입 단계를 넘어서면서 아마추어 수준을 넘어선 고객들이 크게 늘어났는데도 홈센터들은 구태의연한 상품만을 취급했고 업체간의 가격경쟁은 양질의 서비스와 상품취급을 가로 막았다. 이에 따라 매장면적당 가드닝 상품의 이익은 크게 떨어지고 홈센터 점원들의 자질 및 상품지식 부족을 탓하는 비판의 소리도 끊이지 않았다.가드닝 시장에 몰아닥친 역풍에 주목한 누리하라사장은 역시 모리오카에 위치해 원예부문 연구에 강점을 갖고 있는 이와테 대학 공학부와 손을 잡았다. 그리고 시장상황과 소비자들의 마인드변화를 역으로 이용할 수 있는 상품개발에 힘을 쏟아 버추얼 가드닝을 탄생시켰다.버추얼 가드닝의 최대 매력은 고객들이 컴퓨터 상에서 여러 가지 화초와 수목들을 심고 시간이 흐르면서 이들이 생장해가는 모습을 관찰하고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고객들은 한그루 한그루의 나무와 화초에서 잎과 가지가 자라고 퍼지는 것을 시간과 속도에 맞추어 자신이 계산하고 이를 실제 형태로 만들어 볼 수 있다.이뿐만이 아니다. 공급해 주는 비료와 물의 양에 따라 나무와 화초의 생육이 어떻게 달라지는가 등의 여러 가지 변화를 화면을 통해 쉽게 알 수 있다. 잎과 가지에 햇빛 비치는 시간이 미치는 영향도 계산해 놓고 있기 때문에 계절에 따라 나뭇잎의 색이 점차 변해가는 모습도 지켜볼 수 있다. 정원이 없어도, 하다 못해 손바닥 한뼘만한 땅을 갖고 있지 않아도 자연과 친해질 수 있고 나무와 화초를 기르는 기쁨을 책상 앞에 앉아서 누릴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올 한해 5천만엔 추가매출 기대이 회사는 이 소프트웨어를 우선 인터넷상에서 판매하기 시작했다. 사이버 상에서 다운로드를 통해 전달하는 판매방식이다. 가격은 하나에 8천8백엔. 단돈 몇백엔 정도면 살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수두룩한 사이버 시장에서 이 정도의 돈을 지불하라는 것은 상당히 먹혀들기 어려운게 사실이다.그런데도 이 소프트웨어는 발매에 들어간 올해 초 이후 매달 60~70개의 주문이 꾸준히 들어오고 있다. 누리하라사장은 “구매자의 대다수가 40대 이상의 사람들”이라고 밝힌 후 “중년 이후의 소비자들에게 이처럼 높은 인기를 누리는 소프트웨어는 극히 드물다”며 앞으로의 성공을 자신하고 있다.JFP는 지난 6월부터는 버추얼 가드닝을 일반 서점과 가전 양판점에서도 판매하기 시작, 오프 라인 유통망의 개척에 본격 나섰다.이에 앞서 조경업자와 건축설계 사무소 등으로부터 업무용 수요가 줄을 잇자 그래픽상의 수목 표시를 보다 정교하게 나타내 주는 소프트웨어를 ‘디지털 랜스케이프’라는 브랜드로 내놓았다. 이 소프트웨어는 수목의 생장을 시뮬레이션으로 보여주는 것뿐 아니라 나무를 멀리서 보았을 경우의 가상화면까지도 멋지게 처리해 줄 정도로 뛰어난 기술력을 갖고 있는 제품이다. JFP는 1개에 1백만엔을 호가하는 디지털 랜스케이프가 조경업자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졌는데도 실제로는 방송국에서 더 많이 문의가 온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누리하라 사장은 이제 걸음마에 불과한 사업초기이지만 이 두가지 소프트웨어만으로 본업 외에도 올 한해동안 5천만엔의 추가매출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아울러 미국 수출 길에도 나설 이 소프트웨어가 할리우드 등에서 모리오카 포레스트 밸리의 명성을 떨칠 날이 곧 올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yangsd@hankyung.com알림: 한국경제신문 양승득 도쿄특파원이 새로 부임함에 따라 이번호(245호)부터 ‘도쿄리포트’는 ‘재팬프리즘’으로 꼭지명을 바꿔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