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장이 변하고 있다. ‘부킹은 하늘의 별따기’라며 그야말로 손님들 위에 군림해온 골프장들이 눈높이를 낮추고 있다. 입구의 수위로 상냥한 여성을 배치하는가 하면 친절한 캐디 양성을 위해 아낌없는 투자를 하는 등 톡톡튀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골프장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이처럼 골프장들이 체질개선(?)에 들어간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 골프장을 보는 내장객들의 시각이 많이 달라졌다는데 있다. 예전같으면 골프장이 아무리 불합리한 규정을 만들고 제멋대로 운영해도 손님들은 군소리 한마디 할 수 없었다. ‘부킹된 것만 해도 어딘데…’하며 제 돈내고 치면서도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하지만 이제는 서비스 개선없이 더 이상 골프장을 운영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현실로 다가왔다. 지금도 부킹난은 상존해 있지만 골퍼들은 서비스 좋고 코스관리가 뛰어난 곳을 선호한다. 캐디가 불친절하고 시설이 낙후된 골프장은 아무리 거리가 가까워도 외면대상이다. 특히 회원임에도 불구하고 부킹이 안되는 골프장들은 이제 퇴출대상 리스트에 오르내리고 있다.◆ 경영자 대폭 교체 ‘변신 가속화’이같은 현상은 골프회원권 시세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부킹이 어렵고 불친절한 골프장의 회원권 가격은 계속 하향세를 그리고 있다. 반면 자체적으로 시설을 개·보수하고 서비스 개선에 노력하는 골프장들은 내재가치를 높게 평가받으면서 상승세를 타고 있다. 이러한 양극화 현상은 갈수록 심화될 전망이다.골프장 경영자들이 대폭 교체된 것도 골프장의 변신을 가속화했다. 사실 그동안 골프장 사장은 거의 대부분 관공서에서 은퇴한 퇴직공무원들이 낙하산으로 내려온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항상 접대만 받아온 사람들이라 다른 사람을 위해 무엇을 한다는 것이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골프장 개선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하는 일 없이 골프만 치는 소일을 해왔다. 그러나 요즘 일선 기업체 등에서 온 사람들이 경영자로 부임하면서 많은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경기도 여주CC는 얼마전 골프담당 기자들을 초청, 골프장의 이미지 쇄신을 위한 아이디어를 직접 묻기도 했다. 여느 골프장에서 볼 수 없는 경영자의 노력이 참으로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여주CC 사장은 자신의 골프장에 대해 갖고 있는 일반사람들의 생각중에 부정적인게 많다며 개선방안을 찾고자 여러 경로를 통해 의견을 수렴중이었다. 차제에 옛 이미지를 완전히 버리고 새로운 골프장으로 거듭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최근 몇 곳은 골프장 이름 자체를 바꾸며 완벽한 변화를 시도했다. 청주CC는 그랜드CC로 이름을 바꾸고 회원들에게 각종 숙박시설 이용혜택을 부여하면서 명문골프장 이미지 심기에 들어갔다. 충주CC도 임페리얼레이크CC로 개명하며 새로운 탄생을 선언했다.골프장이 ‘손님을 손님으로’ 대하기 시작하면서 나타난 또 하나의 변화의 물결은 최근 붐이 일고 있는 ‘골프+숙박’형 골프장의 등장이다. 즉 숙박을 하면서 골프를 즐기도록 하는 골프장이 늘고 있는 것. 지난해 1월말 ‘체육시설의 설치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의 개정으로 골프장도 숙박시설을 지을 수 있도록 허용되면서 골프장들이 여기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단순한 투어 형태의 관광이 시들해지고 테마형 투어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처럼 콘도와 골프의 결합은 가장 궁합이 잘 맞는 관광상품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레이크힐스CC는 골프와 호텔을 합쳐 ‘골프텔’이라는 신개념을 도입, 국내와 호주 6개 지역에서 골프를 즐길 수 있는 회원권을 분양중에 있다. 제주도 등에 콘도를 보유하고 있는 풍림콘도와 곤지암그린힐 신안 관악CC 등을 소유하고 있는 신안그룹 등에서도 이같은 사업을 추진중에 있다.◆ ‘진짜 대중화’, 정부 맞장구 필수문제는 이같은 골프장들의 변신 노력이 정부의 골프대중화 정책과 맞아 떨어지고 있는가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김대중 대통령의 골프대중화 발언 이후 골프계는 ‘이제야 골프가 제대로 대접을 받겠구나’하는 기대로 꿈에 부풀었다. 골프장에 대한 특별소비세도 인하하고 대중골프장도 여러 곳에 신설하겠다는 정부의 청사진도 제시됐다.그러나 골프대중화는 아직도 정부나 골프장측 양쪽 다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지적이다.정부는 김대통령의 발언이후 많은 움직임을 보여왔다지만 ‘용두사미’격이다. 일례로 지난 7월1일자로 시행된 18홀 대중골프장의 특소세 면제만 보더라도 정부가 골프장에 대해 어떠한 시각을 갖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재경부는 퍼블릭코스에 대한 특소세를 완전 폐지하면서 어떠한 홍보활동도 하지 않은채 7월1일자 관보에만 살짝 그 내용을 담았다. 심지어 대상 골프장에서는 시행일 며칠이 지나도록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정도였다. 어떤 곳은 스스로 시행내용을 파악해 그린피를 내렸다. 어떤 골프장은 정부에서 특소세 면제 사실을 조용히 시행하라고 ‘주문’했다고 실토(?)하기도 했다.골프대중화를 부르짖은 정부가 왜 이처럼 쉬쉬한 것일까. 정부는 퍼블릭과 회원제 골프장의 차이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퍼블릭골프장에 대해서만 특소세를 면제하면 회원제 골프장에서 반발할까봐 은밀히 시행했다고 한다.물론 근거없는 얘기는 아니다. 레이크사이드CC만해도 회원제인 서코스를 뺀 동·남코스는 모두 퍼블릭이지만 이곳에서 골프를 치는 사람의 대부분이 이곳이 퍼블릭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무리 회원제골프장의 반발을 우려한다고 해도 비밀리에 정부정책을 시행하려는 자세는 문제가 있다는 시각이다. 오히려 정부가 특소세 면제사실을 통해 골프장의 그린피 인하를 촉구하면서 회원제 골프장들도 이에 동참토록 독려했어야 옳았다.골프장들도 골프대중화에 뒷짐지기는 마찬가지다. 어느 한곳이 그린피를 올리면 무슨 도미노 현상처럼 너도 나도 그린피를 올려버린다. 지난 6월말 한 회원권거래소가 그린피 인상현황을 조사한 결과 지난해 말과 비교해 90% 가량이 동시다발로 그린피를 기습인상했다. 코스관리나 시설개선 등에 투자한 골프장들은 그래도 좀 낫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곳까지 덩달아 올린 것은 심했다는 지적이 뒤따랐다.최근에 신설되고 있는 골프장들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존재한다. 특급호텔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최신식 클럽하우스는 대다수 골퍼들에게 사실 이질적이다. 신설골프장의 지나친 고급화로 인해 골프장은 돈많은 사람들만 가는 곳이라는 인식을 씻기 어려울 수 있다.진정으로 골프대중화를 원한다면 골프장들이 보다 저렴한 가격에 골프를 즐길 수 있는 퍼블릭 코스나 파3 코스를 많이 조성해야 할 것이다.그러나 골프대중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부의 실질적인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모처럼 불고 있는 골프장의 변신 노력이 보다 많은 사람이 골프를 즐길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정책적인 배려가 절실하다. 규제에만 급급한 골프대중화 정책은 골프장을 더욱 더 ‘부유층만을 위한 배타적인 놀이터’로 고립시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