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사 운임인하로 '한명이라도 더 태운다' 선전포고... 신칸센 타개책 고심

항공사들의 고객확보 싸움은 신칸센을 상대로 한 것뿐 아니라 동종업체간에도 치고 받는 운임인하 경쟁이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어 신칸센을 더욱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긴 건 기차, 기차는 빨라, 빠른 건 비행기….”30대 이상의 성인들이라면 어린 시절 적어도 한 두번씩은 흥얼거렸을 법한 노래의 한 구절이다. 코흘리개 장난꾸러기 때의 향수를 자극하는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기차와 비행기의 싸움이 팽팽하게 벌어지고 있다. 그것도 바로 이웃나라인 일본에서 양측의 공방전이 하루 24시간 불을 뿜고 있다.일본 열도에서 맞붙은 기차, 비행기의 대결은 몇가지 점에서 흥미롭다.우선 싸움의 주인공중 하나인 기차가 보통 기차가 아니라는 점이다. 일본을 대표하면서, 한국인들 대다수의 귀에 익은 ‘신칸센’열차가 싸움의 한 축이다. 신칸센이라는 이름은 후지산과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고유 명사로 한국인 여행자들의 뇌리에 깊이 박혀 있다. 그래서 제3자 입장에서도 싸움을 지켜 보는 것이 그만큼 더 흥미롭다.또 하나는 싸움을 건 주체다. 선전포고를 낸 건 속도에서 뒤진 기차가 아니라 비행기다.하늘 시장을 독점해 온 비행기가 신칸센 열차에 ‘한번 싸워 보자’고 도전장을 던져서 생긴 맞대결이다.◆ 신칸센 선로따라 잠식 양상 상반돼마지막으로 양측이 싸우고 있는 이유다. 신칸센과 비행기의 싸움은 노랫말에서와 같은 빠르기 경쟁이 아니다. 손님을 놓고 벌이는 힘겨루기다. 어느 쪽이 손님을 한명이라도 더 태워 1엔이라도 수입을 더 올리느냐에 대결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신칸센이라는 단어를 접할 때 대다수 한국 관광객들은 흔히 도쿄-오사카간을 잇는 고속열차를 머리에 떠올린다.아주 틀린 답은 아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핵심에서 크게 비켜간 상식이다.우선 신칸센은 열차 이름이 아니다. 우리 나라에서 현재 시공중인 고속철도와 같은 선로를 일컫는 말이다. 그리고 그 위를 달리는 열차는 신칸센이 깔려 있는 지역과 운영회사, 그리고 빠르기에 따라 무수히 많은 이름을 갖고 있다.고다마, 히카리, 노조미에서 맥스, 야마비코, 아사히 등…. 열차 이름만도 일일이 다 외우기 벅찰 정도다.신칸센이 한국의 철도와 다른 결정적 차이점 중 하나는 바로 운영 주체다. 일본에서 신칸센으로 돈을 벌어 먹고 사는 것은 일본 정부가 아니다. 80년대 후반 국영기업에서 민간회사로 간판과 체질을 바꾼 3개 철도회사(JR서일본, JR동해도, JR동일본)다. 이들 회사는 혼슈의 경우 지역에 따라 8개 노선을 분할해 갖고 있다. 아울러 각기 다른 명칭의 선로와 열차로 손님들을 한명이라도 더 실어 나르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신칸센과 비행기의 싸움이 일본 전역에서 같은 양상을 보이는 것은 물론 아니다. 도쿄를 중심으로 태평양 연안을 따라 오사카를 거쳐 규슈로 내려 가는 선로(JR동해도와 JR서일본이 나누어 운영중)에서는 철도회사들이 비행기의 공세로 전전긍긍하고 있다.반면 도쿄에서 서북쪽 방면이나 북쪽으로 이어지는 선로(JR동일본)에서는 철도 회사가 비행기의 고객을 잠식해 들어가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는 지리적 특성에 따른 것으로 태평양 연안을 따라 남쪽으로 달리는 신칸센(한국인 여행자들이 많이 이용하는 선로)은 거리와 탑승시간이 길어 비행기와의 경쟁에서 취약한 반면 다른 신칸센은 반대 입장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운수업계 관계자들은 비행기와 신칸센의 싸움이 촉발된 1차 원인을 98년 가을부터 시작된 이코노형 셔틀비행기의 등장으로 꼽고 있다. 가격파괴형 비즈니스로 일본 여행업계에서 돌풍을 일으킨 H.I.S가 설립한 국내선 전용의 소형 민항회사가 도쿄-오사카간에 비행기를 띄우면서 기존 운임의 절반 정도만 받는 초염가 전략을 들고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H.I.S는 항공기 수가 얼마 되지 않는데다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미미해 신칸센의 큰 적수는 되지 못했던게 사실이었다.◆ JAL, ANA, JAS 대형 민항 3사 가격 경쟁그러나 JAL, ANA, JAS 등 대형 민항 3사가 지난 7월부터 운임을 파격적으로 내린 셔틀기를 일제히 투입한 후 사정은 크게 달라지고 있다. 핵심 노선인 도쿄-오사카 간의 경우 비행기 요금이 신칸센 티켓 값을 밑도는 경우가 속출하면서 철도역에서 공항으로 발길을 옮기는 승객이 계속 늘고 있다.JR동해도는 종전까지 항공사를 신칸센의 경쟁상대로 보지 않았었다. 도쿄-오사카간의 연간 수송인원은 기차가 2천9백만여명에 달하는데 반해 비행기는 5백만명에 불과, 신칸센이 압도적 우위를 지켜 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카사이 다카노 JR동해도 사장은 “7월부터 항공사들의 영업전략이 고객들에게 먹혀 들면서 우선 당장 연간 운임수입의 1%에 해당하는 1백억엔대의 매출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본다며 대책마련에 부심중”이라고 말하고 있다.항공사들의 고객확보 싸움은 신칸센을 상대로 한 것뿐 아니라 동종업체간에도 치고 받는 운임인하 경쟁이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어 신칸센을 더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항공사들의 운임경쟁은 일본 매스컴에서도 (팔다 남은 것을 신선도가 망가지기 전에 헐값에 처분하는)‘바나나 싸게 팔기’ 전쟁으로까지 비유되며 운수업계의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하지만 신칸센 운영회사들의 최대 고민은 벼랑에 몰리면서도 현재로는 별다른 대책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데 있다.최대 피해자인 JR동해도의 경우 현재 1시간에 2편인 노조미(도쿄-오사카 간을 가장 빠르게 달리는 고속 열차)를 7편으로 늘리는 계획을 당초 목표시기인 2003년 말에서 가을로 앞당길 방침이다. 또 회수권과 입석제 등을 도입하는 한편 중간 정차 역을 늘려 저가전략으로 한사람이라도 더 태울 계획이다.운수업계 관계자들은 그러나 이같은 카드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노조미가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고객이 지불하는 실질 운임이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 사이에 항공사들이 운임을 추가 인하하면 경쟁력이 더 약화될 것 아니겠느냐는 분석이다.일본 열도를 북에서 남으로, 그리고 동에서 서로 이으며 달러박스 소리를 들어 왔던 신칸센이지만 이제는 오히려 위기상황을 타개할 대응전략이 일본 매스컴의 주목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