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는 것으론 부족 … 아예 질리게 만들자” 소비자 상상초월 엽기적 광고 난무

옛 속담에 ‘뒷간과 사돈집은 멀수록 좋다’는 말이 있다. 뒷간이 가까우면 냄새가 몹시 나고, 사돈집이 가까우면 들리는 말이 많으므로, 가까이 하면 그만큼 문제가 있었다는 뜻이다. 부분적으로 맞는 말이다. 요즘에야 예전처럼 고된 시집살이가 많지 않고, 또 남편보다 목소리 높은 부인들도 많아졌지만, 여전히 사돈집이 가까이 있어 좋을 것은 없다는데 대부분 동의하지 않을까 싶다.그러나 뒷간 얘기는 좀 다르다. 요즘 세상에 화장실이 멀리 있기를 바라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물론 여기에는 기존의 ‘푸세식’ 화장실이 ‘수세식’ 화장실로 바뀐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어쨌든 요즘 사람들은 화장실이 집안에, 그것도 안방에까지 있는 것을 오히려 자랑으로 여긴다. 편안함과 안락함의 상징이니까.화장실이 비록 집안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 내용물, 즉 ‘똥’에 대해서는 달갑지 않게 생각해오던 것이 우리네의 정서였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니, 더러워서 피하지’라는 또 다른 속담에서처럼 ‘똥’은 세상의 온갖 더러움, 멀리해야 할 어떤 것의 상징이었다. 심지어 점잖은 언론에선 ‘똥’이라는 단어를 지면에 쓰는 것조차 꺼려왔다.그러던 똥이 요즘 상종가를 치고 있다. 똥 모양의 열쇠고리, 핸드폰 줄 등 각종 액세서리에서부터 똥모양의 재떨이, 찻잔까지 나왔다. 물론 똥을 대화의 소재로 삼는 것도 예사가 됐다.◆ 기괴함 넘어 촌티·무식까지 총칭 ‘디지털 문화코드’똥으로 대변되는 기존 가치관의 파괴는 바로 요즘 젊은이들, 특히 신세대 네티즌들이 가장 널리 사용하는 키워드 ‘엽기’의 일부다. 신세대들에게 엽기는 단순히 끔찍하거나 더러운 것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괴이하고, 메스껍고, 촌스러운 것, 그러면서도 우스꽝스러운 것’이 모두 ‘엽기적이다’라는 말로 표현된다. 신세대들이 기존에 즐겨 사용했던 용어들 “골때린다, 깬다, 썰렁하다”를 포함해 재미있고 색다른 것은 무조건 “엽기적이다”라는 하나의 단어로 통하고 있는 것이다.따라서 ‘엽기적이다’를 조직폭력배의 끔찍한 살인사건을 표현하는 말로 주로 기억해온 기성세대들에겐 ‘엽기’란 말의 의미풀이에서부터 세대차이가 생길 수도 있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 엽기는 이제 신세대 젊은이들의 의식세계를 반영하는 키워드이자 하나의 문화코드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신세대들의 이런 의식을 반영한 ‘엽기마케팅’도 그래서 인기다. 우선 인터넷을 보자. 인터넷 검색엔진에서 ‘엽기’를 입력하면, 수백개가 넘는 엽기 웹사이트들이 줄을 잇는다. 인터넷이 엽기의 전도사로 활약하고 있는 셈이다. 이들 엽기사이트 대부분은 또 ‘똥’을 소재로 하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오동렬씨의 홈페이지 ‘똥여리랑 영이 홈’(http://w7.to/dung)이 대표적인 사례. 웹사이트 첫페이지에 제목을 ‘똥구디 속으로…’로 붙인 오동렬씨는 똥에 관한 각종 상식과 일화에서부터 자신이 직접 그린 그림, 직접 촬영한 사진, 해외의 재미있는 똥관련 만화 등을 실어 사이트를 찾는 이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 지리멸렬(담배 세대 피울동안 용만 썼는데 손톱만한 것이 달랑 나올 때), 오호통재(들고 있는 화장지가 변기통안에 빠졌을 때), 과대포장(방귀소리만 요란하고 뒤따라 나온 것이 보잘 것 없을 때), 진퇴양난(문고리는 고장났고, 잡고 있자니 앉은자리가 너무 멀 때) 등 똥을 중심으로 한 사자성어 패러디도 기발하다. 이에 대해 방명록에 기록된 네티즌들은 언뜻 더럽게 보이지만 재미있다는 반응들.매일 똥을 주제로 새로운 카드를 선보이는 해외사이트 ‘두디’(www.doodie.com)처럼 똥 관련 엽기는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인의 대표적인 엔터테인먼트 요소이자 문화코드가 되고 있다.또 ‘엽기하우스’(www.ggame.net)란 이름의 한 엽기사이트는 엽기갤러리, 엽기동양상, 엽기CF, 엽기게임, 성인엽기 등 엽기에 관한 모든 것을 표방하고 있는데, 다양한 그림과 자료가 특징이다. 단무지(www.danmoozi.co.kr)는 ‘단순, 무식, 지랄’을 표방하는 엔터테인먼트 엽기사이트. 엽기미팅, 엽기투어, 엽기삼행시, 엽기유머게시판 등을 통해 네티즌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일상의 부조리 대항 메시지 담겼다” 분석도최근에는 ‘엽기 인재 양성’을 내건 엽기사이트도 등장했다. ‘엽끼즌(www.yupkizen.com)’은 엽기기사제보, 엽기백일장, 엽기카피극장, 엽기창작유머, 엽기포토제닉, 엽기당대비평, 엽기아이디어 등의 이름으로 기자·문학작가·사진작가·카피라이터·발명가·비평가 등 7개 분야에 걸쳐 ‘엽기 자격증’까지 발행하고 있다.이런 추세에 걸맞게 신세대를 주 타깃으로 한 광고에서도 어김없이 엽기가 판을 친다. 평범한 광고보다 색다르고 기괴한, 이른바 엽기적 광고가 젊은이들에게 먹혀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모 경매사이트는 ‘골 때리게 재미있다. 엽기적으로 싸다’는 카피와 함께 망치로 골(腦)을 때리는 그림을 보여주고 있다. 소비자의 상상을 뛰어넘는 전혀 의외의 방법으로 제품을 광고하는 것도 엽기적 광고에 속한다. 요즘 한창 뜨고 있는 한통프리텔 016의 ‘나(Na)’광고나 한통엠닷컴의 018 틴틴 러브레터가 대표적인 사례들. 한국통신 ‘나’ 광고의 경우 미래 첨단통신 광고를 하면서 70년대를 연상시키는 뒷골목을 배경으로 무명모델들을 활용해 “아버지, 나는 누구예요” “나는 공짜가 좋아”를 외치게 함으로써 색다른 재미를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이 광고는 인터넷 엽기사이트에서 대표적인 엽기광고로 패러디되고 있다. 또 018 틴틴 러브레터 광고는 러브레터를 강조하기 위해 복싱을 배경으로 했다는 점, 맞는 사람이 남자가 아닌 여자라는 점, 얼굴이 찌그러지도록 두들겨 맞으면서 더 날려달라고 애원하는 점, KO 당하면서 행복해하는 모습 등이 상식을 뛰어넘는 ‘엽기광고’로 지칭되고 있다.이처럼 엽기가 젊은이들의 주요 문화코드이자 마케팅 기법으로까지 쓰이게 된 데는 사회비판과 패러디를 내건 ‘딴지일보(www.ddanzi.com)’의 영향이 컸다. 딴지일보는 그 시작부터 기존사회에 대항하는 새로운 가치관, 발상의 전환, 주류의 전복, 발랄한 일탈을 기치로 내걸면서 국회의원의 몸싸움 등 기성세대의 우스꽝스런 행동들을 ‘엽기적인 것’으로 내몰았다. 또한 원색적인 용어사용과 엽기의학부, 엽기국방부, 엽기문화부 등에서 보듯 그 존재방식 자체가 한마디로 ‘엽기적’이다.제일기획 제작본부 김홍탁차장(카피라이터, 광고평론가)은 “엽기는 한마디로 기존 가치관에 대한 대항문화”라고 말한다. 겉으로는 예쁘고 바르고 합리적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더럽고 거짓투성이인 이중적 가치관을 풍자함으로써 비록 겉으로 추해 보이지만 진리일 수밖에 없는 본질을 드러내 보이자는 것이다. 김차장은 그러나 “별난 것, 재미난 것을 추구하는 신세대 감수성에 맞춰 엽기만을 좇는 것은 소모적”이라고 지적했다.